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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 오군, 사아이거호 ― 강화도에서 보는 정묘호란·병자호란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 ― 강화도에서 보는 정묘호란·병자호란

지은이: 이경수

분야: 역사·철학·종교

발행일: 2022-01-30

ISBN: 978-89-337-0798-2 03910

페이지수: 272쪽

판형: 신국판 변형

가격: 19,000원

잊을 수 없는 혹독한 두 번의 겨울

 

17세기 조선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 두 번의 호란을 겪었다. 호인(胡人), 즉 만주 사람이 일으킨 난리라고 해서 호란(胡亂)이라고 한다. 이 전쟁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두 번 다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가 재위하던 때 일어났다. 두 번째, 이름만 달라졌을 뿐 같은 나라에서 쳐들어왔다. 세 번째, 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에 일어났다.

 

제1대조인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두 번째 왕으로 즉위한 홍타이지는 조선을 자신의 아래로 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인조가 즉위하기 전인 광해군 때도 후금은 시시때때로 조선을 공격했으나 홍타이지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장자가 아닌 그가 모두를 제압할 황제가 되기 위해선 더 많은 업적과 큰 힘이 필요했다. 주변 국가들의 인정을 받아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고, 가뭄 등으로 불안했던 경제와 민심을 다스리고자 했던 그에게 해결책은 전쟁이었다. 그러니 명 정벌에 앞서 명과 사대 관계에 있는 조선을 공격하는 건 당연했다.

 

1627년 1월, 후금이 쳐들어오자 인조는 그들을 피해 강화행궁으로 피신했다. 수도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택했던 도피 생활은 약 3개월 만에 끝나는데, 워낙 후금이 화친을 재촉하기도 했거니와 인조가 더 큰 피해를 원하지 않아서였다. 명을 받들었던 기존의 관계를 배신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에 자괴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인조는 고민 끝에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었다. 이대로 끝나겠거니 하고 안심한 것도 잠시, 9년 뒤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었고 1636년 12월, 조선시대 강화 제일의 관문이었던 갑곶나루를 기어이 뚫고 짓쳐들어왔다. 앞으로 자신을 형이 아닌, 상전으로 받들어 모시라며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다. 예상보다 더 빠르고 깊게 들어온 청군의 기습에 조선은 당황했고, 인조는 허둥지둥 남한산성으로 피했지만 길게 버틸 수 없었다. 그리고 47일 만에 청에 항복했다. 1637년, 칼바람이 볼을 에는 날씨에 청과의 두 번째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吾君, 吾君, 捨我而去乎)” 마치 라틴어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즉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말의 뜻은 “우리 임금님, 우리 임금님,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로, 인조실록 34권에 적혀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때, 기댈 곳 하나 없는 백성들의 간절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제발 우리를 살려 달라고, 굽어살펴봐 달라는 애타는 마음. 그러나 인조는 그러지 못했다.

 

1637년 1월 30일, 청에게 항복문서를 미리 보낸 인조는 황제한테 인사를 올리라는 명을 받았다. 조선 왕은 죄인이니 성의 정문인 남문이 아니라 서문으로 나오라는 말에 인조는 자신을 기다리던 청 황제, 홍타이지한테 삼배구고두례를 올렸다. 몇몇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과장되게 이마에서 피가 나오도록 머리를 찧진 않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필경 마음으로는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백성들은 오랑캐한테 항복하고 성을 떠나는 임금을 향해 언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인조는 끝내 그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창경궁으로 돌아갔다.

 

 

호란으로 말미암은 수많은 사람의 각기 다른 선택  

 

강화도에서 나고 자란 역사 교사 출신의 저자 이경수는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강화도에서 보는 정묘호란 병자호란》에서 호란이라는 다소 묵직한 주제를 옛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듯이 술술 풀어냈다. 저자는 승패나 시시비비를 일일이 가리지 않는다. 다만 왜 조선이 불가피하게 호란을 겪어야 했는지, 그리고 호란을 겪으면서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이 사태에 대처했고, 또 전쟁이 다 끝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동안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행동과 태도를 취했다. 체찰사 김류와 그 아들인 검찰사 김경징처럼 사리분별을 못하거나 제 욕심을 차리기에 급급한 관료도 있었고 예조판서 김상헌처럼 청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비분강개하는, 그야말로 대쪽 같은 성정을 지닌 충신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청과의 화친을 도모하자는 이조판서 최명길 같은 신하도 있었다. 백성이 덜 고통받게 하려면 윗사람이 먼저 고통을 감내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그는 청에 끌려간 조선 사람들의 몸값인 속(贖)을 치르고 구해오는 데도 열심이었고, 억지로 잡혀갔던 부녀자들을 내쫓지 말고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장서서 화친을 주장했다는 명목으로 평생을 비난당했다. 오히려 상대가 명이든 청이든 제 나라와 백성을 팔아버리는 진짜 변절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숨겨버렸다. 

 

순수한 충심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들 또한 많았다. 그러나 부질없이, 혹은 ‘명예’라는 이유로 자살을 강요받은 자들도 많았다. 특히 조선 사회는 여인들에게 정절이라는 큰 짐을 지웠고 이 멍에는 대책 없이 늘어나는 열녀문과 목숨 걸고 돌아온 고향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환향녀로까지 이어졌다. 호란이 끝나고 청군에게 끌려간 사람 중에서 운이 좋으면 속을 치르고 돌아오거나 도망에 성공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리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난리통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도 있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가족과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겁이 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했을 수도 있고, 얼마 안 남은 가족을 악착같이 지키기 위해 살아남겠다고 결심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저승에서라도 볼 낯이 없는 일은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은 열심히 살았다. 병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한 김만기와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쓴 김만중 형제를 길러낸 어머니 해평 윤씨도 그런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나라를 향한 충정으로 성균관 동학들과 함께 목숨을 끊은 남편을 따라갔다면, 오늘날 그녀의 자식들이 일궈낸 유산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

 

전쟁은 지긋지긋하다. 특히 나라끼리 치르는 전쟁에서는 누구 하나가 먼저 멈추자고 하지 않는 한 승부가 날 때까지 자웅을 겨룬다. 그리고 마침내 한쪽이 지면 승자는 패자한테 여러 가지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패자는 말 못 할 수치심과 비애감을 느끼고 제각각의 선택을 한다. 끝까지 싸우는 자,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며 탄식하고 목숨을 버리는 자, 조국을 팔아먹고 호가호위하는 자. 이 다양한 모습 가운데 이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들은 후세에 선대의 이야기를 전하고 어떻게든 버텨나간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도 그렇다. 처절한 역사와 치열하게 산 사람들의 명맥과 유지를 이어받아 현재의 우리가 있고, 슬픈 역사가 잠든 섬을 기억할 수 있다. 본서를 읽으며 느끼는 감상은 제각각이겠으나 그래도 중요한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다 보면 삶은 계속된다. 단순하되 가치 있는 깨달음이다.

들어가는 글 

 

빛나는 물길이 다다르는 곳

왜 강화도인가 / 여진에서 만주로 / 광해군 가고 인조 오고 / 갑곶나루 

 

정묘호란

후금은 왜 조선을 침략했을까 / 고려에서 했던 것처럼 / 궁궐, 궁궐, 또 궁궐 / 형 죽이고 아우도 죽이니 /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더라면 / 아이고, 모문룡 / 오자마자 화친 카드 / 화친은 항복인가 / 정권 안보, 국가 안보 / 용골산성이 있었다 / 백성의 사늘한 눈빛 / 그래, 죄는 내게만 물어라 / 조약 맺은 장소는 연미정이 아니다 / 위로가 필요해 / 과거를 시행하다 / 유수부가 되다 / 강화·강도·심도 / 교동도를 주목하다 / 짚어 보아야 할 호패법 / 백성은 사족의 그림자라

 

병자호란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 / 삼배구고두례 / 그동안 조선은 무얼 했나 / 무엇이 문제였을까 /

왜, 또? / 어찌 강화도가 떨어졌단 말인가 / 공유덕이? / 광성진이 아니었다 / ‘아빠 찬스’ / 검찰사, 그 모호한 직책 / 구원일·황선신·강흥업 / 삼충사적비 / 위대한 항명이 필요했다 / 불 속에 몸을 던져 / 송해수·정명수·김자점 / 청군의 만행 / 여자이기 때문에 / 충렬사 / 충렬사 사람들 / 나는 여기서 죽는다 / 죽지 못한 남자, 죽지 않은 여자 / 1636년, 남한산성 일기 / 1637년, 남한산성 일기

 

떠나간 이들과 이 땅에 남은 것

사대·명분·의리 / 성리학이 보는 세상 / 척화를 생각함 / 인조의 소원 / 그리워라, 내 고향 / 또 다른 맹약 / 황손무의 편지 / 실록과 역사 

 

주 

정묘호란·병자호란 전후 연표

도움받은 자료

지은이 이경수

 

나고 자란 강화도에 산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였다. 지금은 학교를 나와 읽고 쓰고 답사하고 가끔씩 강의도 한다. 역사는 공부할수록 오히려 자신감이 떨어지는 학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역사 공부는 자만을 버리고 겸허를 익혀가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에세이집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2015), 한국사 교양서 《한국사 키워드 배경지식》(2019), 김포 역사서 《김포역사 인물산책》(2019) 등을 냈고, 강화도 역사를 다룬 《강화도, 근대를 품다》(2020), 《강화도史》(2016), 《숙종, 강화를 품다》(2014), 《왜 몽골제국은 강화도를 치지 못했는가》(2014), 《역사의 섬 강화도》(2002) 등을 출간했다.

 

한국 대외교류의 역사

김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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