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자로서의 자각이 아로새겨진 흑백사진들
이 책은 한국연구와 관련해 단연 손꼽히는 연구자인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이토 아비토 교수가 1970년대 처음으로 한국에서 현지조사를 하며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14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정리해낸 책이다.
타문화·타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이에 따라 문화인류학이 주목을 받기 시작함과 동시에 이와 관련한 이론서와 사례묶음 등은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문화인류학 관련 서적과는 좀 다른 방식이다. 어쩌면 매우 개인적이기까지 한 기록으로서 설레고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첫 현지조사에 나선 초보학자 시절을 이제는 노학자가 된 저자가 옛 기억을 되살리고, 오래된 기록과 사진을 재구성해 정리하였다. 따라서 구성이 체계적일 수 없고 현지조사 연구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다. 하지만 선생님 곁에 둘러앉아 낡은 앨범을 열어보며 설명을 듣듯이 책을 읽다보면 타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론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 무선에 열중하던 이과생이 민속학에 푹 빠져 문화인류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첫 장을 이루고, 한국연구의 첫 발을 내딛은 ‘진도’에서의 정착기와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일화들이 두 번째 장을 이룬다. 세 번째 장은 1973년과 1974년에 안동 진성 이씨 이퇴계 종가에 머물렀을 때의 기록으로 ‘한자’를 잘 알고 있다는 점 때문에 양반가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마지막 장에는 지난 40여 년간 이토 교수와 인연을 맺은 ‘한국의 친구들’이 남긴 글이 실려 있는데, 이토 교수에 대한 깊은 우정과 믿음을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