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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인류학을 생각한다
리처드 R. 윌크·리사 C. 클리젯 | 홍성흡·정문영 |
가격: 16,000원
쪽수: 380
발행년/월/일: 2010.04.30
크기: 145×210
ISBN: 978-89-337-0587-2 03330
머리말
옮긴이의 글
 
1. 경제 인류학: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분과 학문
논쟁과 사회과학|형식론과 실체론의 논쟁|대논쟁 이후의 경제 인류학|어떤 결론이 있을까?|주

2. 경제학과 인간 본성의 문제
경제를 정의하다|경제 인류학을 재정의하다|주

3. 이기심과 신고전학파 미시경제학
애덤 스미스와 서구 경제학의 탄생|근대 경제학의 기초|신고전학파 미시경제학|형식 경제학 비판|요약: 이기심과 비이기심을 중재하다|주

4. 사회 경제학과 정치 경제학
사회적 인간|권력과 정치|뒤르켐과 사회 유기체론|카를 마르크스: 경제에 정치를 도입하다|여러 가지 유형의 사회 경제학과 정치 경제학|요약: 구조와 능동성의 문제|주

5. 도덕적 인간: 문화 경제학
도덕, 이데올로기, 상징|도덕 경제학의 뿌리|합리성과 문화라는 문제|문화 경제학의 문제점|문화 경제학, 제2라운드|요약: 문화는 얼마만큼 결정하는가?|주

6. 선물과 교환
포틀래치에 대한 세 개의 분석|그런데 선물이란 무엇인가?|모스와 마르크스를 잇다|호혜성과 선물|선물의 가치 누적|가치를 넘어서|상호 인정과 선물|결론|주

7. 결론: 복합적이고 경제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외풍이 심한 집의 사례|설명의 문제|근본적인 쟁점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인간 본성을 다시 생각한다|결론|주
 
부록_어디를 더 찾아볼 것인가: 경제 인류학 문헌 찾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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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 인류학 입문서지만 보통의 교과서와는 구성이 사뭇 다르다. 생산, 교환, 유통, 분배, 소비 같은 경제 인류학의 개념들을 정의하고 범주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인류학을 다른 분과 학문들과 뚜렷이 구별 짓는 문제와 사상들을 검토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이론적 쟁점들을 정리하고 지금까지 진행된 이론적 흐름,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틀을 모색한다.
 경제(經濟)  「명사」
「1」『경제』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ㆍ분배ㆍ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2」『경제』=경제학.
「3」돈이나 시간, 노력을 적게 들임.
 
이는 국어사전에 나온 ‘경제’라는 단어의 정의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경제’, ‘경제적’이라 말할 때의 의미는 위의 뜻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학은 서구의 학문적 전통 위에서 시작되었다. 이 학문은 개인, 지역, 국가, 세계 단위에서 일어나는 경제 현상을 ‘합리성’과 ‘이기심’이라는 바탕 위에서 해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인류학은 인간의 문화와 기원, 그 특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만개한 시기에 서구가 ‘원시’ 부족과 사회를 만난 이래 인류학은 서구 문화와 사회의 기원을 밝히기 위하여, 지배하고 계몽해야 할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이처럼 각기 다른 길을 가던 두 학문이 만나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이다. 1915년 말리노프스키가 트로브리안드 섬 주민들의 삶을 연구하며 보게 된 것은 유럽 문화와 상반된 그들의 삶의 방식과 체계였다. 돈과 소유에 대한 집착, 이기주의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서구 사회에 반하여 트로브리안드의 사회는 “전통적인 힘, 의무와 도리, 주술 신앙, 사회적 야심과 허영 등 일련의 아주 복합적인 요소들”에 기반했다. 전통적인 서양 경제학은 자민족 중심적인 도구였기 때문에 유럽인들 외에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인류학이 자신보다 더 크고 강하며 풍요로운 학문 분야인 경제학에 이의를 제기하고 싸움을 걸기 시작하면서 ‘경제 인류학’이란 분과 학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은이들은 이 책의 첫 장을 ‘경제 인류학’을 정의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들은 먼저 사회과학이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구성물이며, 각기 다른 입장에서 시작한 이론과 파벌들이 (점잖게 말하면) 서로 논쟁하면서 (솔직하게 말하면 치고 박고 싸우면서) 나아간다고 말한다. (이는 모두 알고 있지만, 교과서에서는 말하지 않는 현실이다.) “사회과학은 언제나 객관과 주관의, 이데올로기와 진리의 합성물이며 권력과 지식 모두가 융합되어 녹아 있는 혼합물”(22쪽)이다. 경제 인류학도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지은이들은 경제 인류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이었던 형식론과 실체론의 논쟁에서부터 이 책을 시작한다.

실체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칼 폴라니이다. 그는 경제라는 것이 사회에 매립되어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아는 ‘경제’는 자본주의라는 특정 사회체계 내에서 기능하는 것일 뿐이며, 다른 사회체계에서는 경제가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그리고 공통적인 경제 원리인 호혜성, 재분배, 교환은 사회체계의 유형에 따라 달리 나타나게 된다. 형식론자들은 여기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사회체계 유형에 상관없이 모든 사회에 적용되는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극대화를 추구하는 개인의 경제적 합리성은 어느 사회에서나 어떤 종류의 행위에서나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식론과 실체론의 논쟁 이후 경제 인류학은 신마르크스주의, 생태 인류학, 개발 인류학, 농민 연구 등 수많은 방향으로 급속히 다변화했다. 모두 나름의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경제 현상을 타당하게 해석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논의들은 모든 경제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해낼 수 있을까? 여기서 지은이들은 중요한 점을 짚어낸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실상 모든 사회과학은 온전한 진리가 아니다. 진리로 우뚝 서 있는 줄기 아래에는 땅 속에 숨은 뿌리가 있다. 저자들은 그 뿌리를 찾아 나선다. 바로 경제 철학과 ‘인간 본성’의 문제이다. 개인의 합리성과 효용 추구를 중시하는 서구 미시경제학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그 밑바탕은 어떠한 사상이 떠받치고 있는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데서 출발하는 사회 경제학과 사회 구조 및 계급 간의 문제를 중심에 두는 정치 경제학은 어떠한가? 의미와 의사소통 체계를 통해 경제 현상을 해석하는 문화 경제학은? 신고전학파 미시경제학, 사회 경제학, 정치 경제학, 문화 경제학의 이론적 흐름과 배경,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을 하나씩 짚어나가면서 지은이들은 각 이론들의 장․단점과 한계에 대해 질문에 질문을 거듭한다.

만약 경제 인류학이 인간의 모든 경제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학문이라면 이러한 방법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류학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 추론하고 비교하고 대조하여, 궁극적으로 왜 인간의 생활 방식에 그토록 큰 변이성이 존재하며 왜 그토록 많은 변화의 경로들이 있는지 이해하고 싶어 한다. 동시에, 모든 문화를 함께 묶어주고 모든 인류의 경험을 통합하는 보편적 특성을 찾고 싶어 한다. 인류학자에게 경제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그 경제가 작동하는 사회 및 문화와 긴밀히 통합되어 있으며, 어떤 경제적 행위는 앞에서 살펴본 이론들 중 하나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이자 경제 인류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연구 분야가 ‘선물’이다. 부모님에게 물려받는 재산, 자기 재산을 부족민들 앞에서 태우고 나누어주는 포틀래치, 빌 게이츠의 어마어마한 자선사업, 이 모든 것이 ‘선물’의 영역에 들어간다. 선물하는 행위는 이기심의 측면, 사회 통합의 요소, 도덕 질서를 확립하거나 재확인해주는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이 모든 측면을 종합해야만 선물하는 행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인간 행위를 이해하는 데도 적용되는 관점이다.
 
이 같은 점에서 볼 때, 경제 인류학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경제 인류학자들은 대체로 다른 사회과학자들에 비해 각기 다른 인간 본성에 대한 시각을 바탕으로 한 미시경제학, 사회 경제학, 도덕 경제학, 이 세 가지 패러다임 모두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절충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적 입장, 서로 다른 수많은 도구들을 사용하면서 충실한 관찰을 통해 이론들을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무수히 다양한 사회문화적․정치경제적 환경에서 다양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인간과 인간의 행위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은이들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들이 제기한 근본 문제들을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경제 인류학의 기틀을 잡아나가는 데 있어 기초적인 인간 본성에 대해 사회과학 분과들이 서로 대화를 계속해나가는 일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되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책은 존재 이유를 다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