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크의 책들

미완의 천국, 하버드

미완의 천국, 하버드 / Halfway Heaven: Diary of a Harvard Murder

지은이: 멜라니 선스트롬(Melanie Thernstrom)

옮긴이: 김영완

분야: 사회·문화·민속·교육

발행일: 2003-08-05

ISBN: 89-88903-04-8-03840

페이지수: 300쪽

판형: 신국판변형

가격: 12,000원

이 책은 제3세계의 학생이 하버드에서 아웃사이더로서 느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독과, 그가 공부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적응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건을 저지른 시네두는 에티오피아에서 '모범생'이었고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에티오피아에 남아 있는 시네두의 생활기록부와 성적표, 가족 이야기에서는 살인과 자살의 전조를 발견할 수 없다. 철저한 고독과 위화감에 시달리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하버드라는 거대한 위력에 무참히 휘둘린 희생양 시네두. 이 책은 하버드에 대한 비난이자 고발이며, 애착, 강박관념, 여성들 간의 우정의 본질 그리고 고독의 파괴력에서 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제 1 부 쌍둥이
제 2 부 시네두
제 3 부 트랑
제 4 부 하버드
제 5 부 죄인은 누구인가
제 6 부 천국의 길목

하버드대 졸업식을 며칠 앞둔 1995년 5월의 어느 날, 기숙사에서 에티오피아 학생 시네두 타데스가 룸메이트인 베트남 학생 트랑 푸옹 호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시네두는 잠들어 있는 트랑을 칼로 마흔다섯 번이나 찌른 후 욕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이들은 2년 동안 같은 방을 썼지만 트랑이 다음 학기부터 시네두와 한 방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놀라운 사실은,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시네두가 자신의 범죄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학생신문사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짧은 편지를 익명으로 보냈다. "이 사진을 잘 보관하세요. 곧 이 사진 속 인물에 관한 아주 짜릿한 이야기가 생길 거예요."
이 사건은 사건의 장소인 하버드, 제3세계에서 온 여학생, 뚜렷하지 않은 살인 동기 때문에 전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왜 시네두는 장밋빛 미래를 눈앞에 두고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문화적 분석과 심리학적 연구를 함께 담아낸 이 책을 통해 지은이는 살인/자살 사건의 충격 뒤에 숨은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살인자의 일기와 편지,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지은이는 섬뜩하도록 자의식이 강하고, 고립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필사적으로 도움을 원했던 한 소녀의 내면세계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 무서운 범죄의 진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낸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그곳에서 네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될 거야. 왜냐하면 하버드는 단순히 한 대학의 이름이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건 마법이고, 부, 우아함, 기쁨, 자랑스러운 고독이야. 마치 넘쳐나는 책더미 속에서 황금 같은 부분만 쏙쏙 골라 읽는 것과 같다고 할까. 카이로나 다마스쿠스처럼 아주 황홀한 이름이야." (p.115)

하버드 대학교는 단순히 미국의 한 대학의 이름이 아니다. 그곳은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며, 그곳을 졸업한 후에는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치열한 경쟁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하며, 때로는 즐겁게 받아들인다. 지적인 충만감, 사회적 지위와 부를 모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하버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세례는 강인한 의지와 뛰어난 능력으로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수준 높은 학문의 길에 오른 사람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살인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시네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에티오피아에서 시네두는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러나 하버드에 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 있던 시네두에게 하버드의 수업방식은 큰 혼란을 안겨주었다. 이제 시네두는 성적이 시원찮은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또한 미국 문화에 적응하는 데 큰 곤란을 겪었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힘들었다.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져든 시네두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녀는 낯선 사람들과 인터넷에 편지를 띄웠다. 자신을 제발 도와달라고. 그러나 그녀의 편지는 오히려 편지를 받은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시네두는 학교 보건소에도 도움을 청했다. 그녀의 증상은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했지만, 그곳에는 의사가 아닌 교육학 박사가 있었다. 고독과 절망, 혼란 속에서 트랑에게 의지했지만, 트랑은 점점 시네두가 부담스러워졌고, 마침내 룸메이트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사건이 터진 것이다.
시네두 개인의 성격적 결함, 문화적 충격에서 온 정신적 혼란, 최고의 자리에서 추락한 사람의 절망감 등이 사건의 원인이 되었지만, 지은이는 또 하나의 존재에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다. 바로 하버드이다. 한 학생이 물었듯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어른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는가? 대학에는 학생들뿐이었는가?" 시네두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사례를 통해 지은이는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고 평판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하버드의 이면을 낱낱이 밝혀낸다. 결국 하버드도 이 비극의 공범자였던 것이다.
시네두와 트랑의 비극적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해외유학 비용으로 1조원이 들어가고, 매년 30만 명씩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 조기유학생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많은 부모들과 유학생들은 질 좋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공부만이 유학생활의 전부는 아니다. 친구를 사귀고, 선생님과 적절한 관계를 맺고, 일상 생활의 문제들을 모두 혼자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 자기정체성을 잃고 심리적 불안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다가 자살하는 한국인 유학생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항상 초긴장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 외국생활이지만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이 같은 문제는 모두 개인의 부담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정체성을 뒤흔들지도 모르는 내·외적 문제들을 자신의 내면에서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랑은 그것이 가능했지만 시네두는 불가능했다.
한 소녀의 절망과, 그것이 불러온 두 소녀의 비극적인 운명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을 따라가던 눈길이 우리에게 되돌아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 또는 우리의 자녀들은 시네두일까, 트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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