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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여성, 신령들: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적 실천

무당, 여성, 신령들: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적 실천

지은이: 로렐 켄달(Laurel Kendall)

옮긴이: 김성례, 김동규

분야: 사회·문화·민속·교육

발행일: 2016-03-30

ISBN: 978-89-337-0707-4 93330

페이지수: 344쪽

판형: 152×224

가격: 22,000원

수상: 2017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한국 무속에 대한 선구적 문화인류학 기술지의 완역본
『무당, 여성, 신령들』은 영어권에서 활동하는 한국학자와 샤머니즘 연구자에게 한국 무속에 대하여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읽히고 있는 Shamans, Housewives, and Other Restless Spirits: Women in Korean Ritual Life의 완역본으로서, 지은이가 1970년대 말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 수년간 생활하며 그곳 여성들과 무당들의 의례 생활을 관찰한 문화인류학 기술지이다. 무속의례를 다룬 많은 연구들이 무속을 전통주의적 시각에 입각해 무속 행위 자체를 기록하는 데 집중해 왔지만, 이 책은 무속의례 자체뿐만 아니라 무속의례를 행하는 여성들의 생활과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세계관을 한국의 가족문화와 연관 지어 살펴본다. 무속 행위를 구성하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그 실천자들에게 주목한 이 책은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기술한 인류학적 무속의례 연구의 전범
정부 주도하에 경제성장을 목적으로 ‘근대화’를 몰아붙이는 가운데 여전히 폭넓게 유교적 사고방식과 전통적 관습이 존재하던 1970년대 한국. 유교의 그늘 아래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한국에서 평상시 여성들은 조용히 남편의 뒤를 따라 걸어가지만 굿이 열리는 곳에서는 전면에 나선다. 굿을 청하는 사람과 굿을 주재하는 사람, 굿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여성이다. 지은이는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행하는 굿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처럼 보수적인 유교사회에서 어떻게 굿에서는 여성들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일까?
지은이는 그 의문을 해결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인류학에서 찾았다.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여성인류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만난 지은이는 그동안 발표된 많은 민족지들에 ‘여성’이 부재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특정한 사회적 실천을 여성의 시각, 여성의 경험, 여성의 염원이라는 입장에서 본 민족지는 없었다.
당시는 ‘의료인류학’이 인류학의 하위 영역으로서 대중화되던 때였다. 사회 문제로 여겨지던 토착 치료사의 역할을 재고하고 토착 치료사/의사, 그리고 미신/과학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입장은 치료가 단순히 의학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인류학자 빅터 터너와 교류하던 연극학자 리처드 셰크너가 창안한 ‘환경연극’ 개념은 지은이가 의례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환경연극이란 축제나 거리극에서 배우와 관객이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수많은 말과 몸짓으로 서로 소통하며 즉흥적으로 극을 만들어 간다는 개념이다. 지은이는 의례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연극’처럼 그것이 행해지는 사회적 영역과 참여자들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또한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여성들이 행하는 의례가 반사회적,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마을의 사회적, 도덕적 질서를 지지하는 것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이 같은 입장들을 통해 지은이가 행한 인류학적 현지조사의 내용이 종합적으로 기술된다. 지은이는 굿의 현장을 단순히 관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수년간 그 마을에서 살고, 무당인 용수 엄마를 따라 굿과 푸닥거리를 하는 집들을 찾아가고, 다른 무당들을 소개받고 그들의 단골과도 대화하면서 마을 여성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갔다. 지은이의 주요 정보제공자인 용수 엄마는 지은이를 “달래야.”(지은이의 한국식 이름)라고 부르고 신딸로도 삼았고, 지은이는 굿에서 무감을 서고 학위를 따게 해달라고 굿을 드리기도 했다. 관찰자인 동시에 참여자로서 무당과 마을 여성들의 삶 속에서 생활했기에 굿 현장을 생생하게 서술할 수 있었고, 의례적 실천의 사회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학문적 시사점을 많이 던지는 동시에 매우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오랜 현지조사에서 축적한 구체적인 사례와 대화가 풍부하게 서술되어 읽는 재미가 있다. 특히 한국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나이 대에 따라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거나 멀지 않은 윗세대의 생활을 엿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무속 연구방법론에 새로운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계기
이 같은 연구 성과가 30여 년이 지난 2016년에 번역된 것은 많이 늦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현재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무속 연구는 무속을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의 잔존물로 보고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주류였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진정한’ 무속의례를 기록하는 수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으며, 특정한 굿과 무당이 무형문화재와 인간문화재로 등재되어 가치와 순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도 전국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굿들은 순수성을 잃어버린 진정한 굿이 아닌 걸까?
모든 무속을 ‘전통’과 ‘원형’이라는 틀 안에서 이해하는 데에서 벗어나 동시대인들이 실천하는 무속 행위를 이해하는 길을 마련하는 것. 다양한 필요로 인해 무속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당시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의례를 구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한국 무속 연구계에 제안하는 새로운 시각이다. 옮긴이들은 이 책의 번역을 계기로 무속을 보는 시선에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책 속으로

그러나 굿의 체계적인 점에 치중해서 묘사하게 되면 하나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굿 드라마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즉흥적이고 독특한 점들이 필연적으로 간과된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즉흥적이고 독특한 점들이 굿을 무속의례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한 가족이 사회적으로 처한 상황 및 초자연적 존재들과 관련된 문제들이 바로 그 가족과 무당 사이의 모든 거래와 굿이라는 드라마를 형성하고 채색하는 것이다.
-58쪽

한국의 여성의례에 대한 연구는 한국 지식인들이 토속문화를 오랫동안 불편해하고 유교 이념상 여성의 가치를 절하해 왔기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엘리트라면 여성의례를 무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국인이 겪은 복잡한 종교적 경험의 결과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활동이 한국인의 의례생활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남아 있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종교적 경험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내재한 사회적·역사적 토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그리고 그 사고방식이 현대 학문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69쪽

나는 굿에서 무감을 서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내 몸주신을 위해 장옷과 벙거지를 바치기까지 했다. 음력 7월과 설날에는 용수 엄마의 신당에서 제물을 바쳤다. 학위를 성공적으로 마치기를 기원하는 굿을 했으며, 도당신을 모신 곳에서 절을 하고 산으로 치성을 드리러 갔다. 마을을 떠날 때에는 용수 엄마의 신당에 모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마지막 제물을 바쳤는데, 여러 신령님들이 용수 엄마에게 ‘나타나’ 나에게 공수를 주었으며 불사할머니는 서운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12쪽

경기도 북부에서 내가 알고 지냈던 만신들을 사회적으로 따돌림당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편이 없기 때문에 용수 엄마의 집은 마을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임장소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용수 엄마의 집에 들러 학교 등록금, 허술한 마을 치안, 이웃마을의 계모임에 대해 수다를 떨거나 한담을 나눈다. 심지어 ‘미신’을 경멸하고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이장 부인조차 각자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수다스런 이 모임을 찾는다.
-126쪽

이것은 놀이이며, 이 놀이의 규칙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경기도 북부에서는 만신과 손님이 굿의 비용을 미리 정한다. 손님은 굿을 하기 며칠 전에 한 다발의 돈을 만신의 신당으로 가져온다. 굿을 하는 날 만신은 장구에 붙은 천 주머니에 기본 금액을 넣는다. 나머지 돈은 주부에게 돌려주는데, 주부는 굿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 돈을 별비로 삼아 끊임없이 요구하는 신령과 조상들에게 조금씩 지불한다. 주부가 이런 놀이에 전투적인 자세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 만신은 그 굿 “맛이 심심하다”고 말한다. 용수 엄마는 넌더리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저번에 안양 어디 마을에서 굿을 했는데, 그 집 안주인이 달래(로렐 켄달의 한국식 이름) 너보다도 몰라. 우리가 돈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냥 내놓더라고.”
-129쪽

어떤 여자들은 만신의 노력으로만 치료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신이 푸닥거리도 했고 또 딸이 약도 먹었어요. 그랬더니 좋아지더라고요.” 만신의 치료에 불만이 큰 손님들도 있었다. 송씨네 작은집 식구들 모두가 아들의 심각한 두통이 우환굿을 해도 낫지 않자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송씨네 주변 이웃들이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송씨네 집 아들은 몇 개월이 지난 후 서서히 회복되었다.
-148쪽

가족의 독특한 전통과 역사 때문에 가정 내에 특별히 강력한 신령들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살펴본 전씨 가족은 영향력이 강하고 요구사항이 많은 대신할머니를 모셨는데, 그 신령은 살아생전에 무당이었던 조상이다. 또 전씨 집안의 며느리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칠성신에게 빌고, 제물을 정기적으로 바쳤다. 여성들은 집 안에서 가정의 신령들을 모시지만, 집 밖에서는 절이나 만신집 혹은 명산에 가서 빌기도 한다. 성스러운 장소와의 인연이나 특정한 신령에 대한 의무는 시어머니에게 배우거나 만신의 점괘를 통해 알게 된 가정의 전통을 드러낸다.
-203쪽

경계가 명확한 몇 분의 제한된 조상들만이 제사에서 모셔지는 것과 달리 만신의 점, 푸닥거리, 굿에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조상’이 등장한다. 여성들은 제사에서 모실 수 있는 조상 집단을 구별해 주는 배타적인 부계 원리에 의문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신과 상담할 때 여성들은 가정의 제사상에서 대접받을 자격이 없는 온갖 종류의 조상들도 가족의 재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여성의 친정에서 따라온 조상과 귀신이 시댁 집안 구성원들의 건강과 재산,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출가한 딸의 혼령이 죽은 후 친정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258쪽

여성의 친족은 한국 관련 민족지들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의 친족은 여성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부분들을 채워 주며 남편 친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받기가 부적절한 위기상황에서 하나의 의지처가 된다. 양자네 가족은 양자 아버지가 감옥에 있을 때 양자 엄마의 친족으로부터 쌀을 가져다 먹었다. 이씨가 상문살을 맞았을 때에는 장모가 무당을 찾아 치료에 나섰다. 여성의 친족은 남성의례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결혼으로 인해 들고 나는 여성들을 통해 연결된 친족은 여전히 한국인의 사회생활에서 적극적인 존재들이며, 여성의 친정집에서 비롯된 신령과 귀신 그리고 조상은 살아 있는 여성의 의례에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289쪽
한국어판 서문
서문

제1장 전씨 가족의 굿
굿의 배경 / 굿의 시작 / 담장 안에서 행해지는 의례 / 집 밖으로 이동하기 / 에필로그

제2장 유교적 가장과 활기 넘치는 여성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전통 / 선비와 무당 / 학자와 무당, 20세기

제3장 영송리
영송리의 역사 / 영송리의 오늘 / 영송리와 무속 / 마을, 만신, 인류학자

제4장 신성한 관계: 만신과 단골
신령과 신당 / 신내림 / 내림굿과 학습 / 굿을 함께 하는 만신들 / 만신 집에 오는 여성들 / 1년 신수 보기 / 단골 / 가정의 전통과 여성의 일

제5장 목신동법, 귀신, 해로운 기운
죽지 말았어야 할 환자 / 만신과 의료 / 우주의 질서 안에서 표류하는 인간: 사주와 개인의 취약성 / 목신동법과 지신동법: 해롭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 바깥에서 온 해로운 기운 / 한국인의 질병 관념

제6장 가정의 신령과 양가 친족의 신령 모시기
떡고사 / 여성의례로서 가정의례 / 여성의 신령, 여성의 전통 / 강력한 신령과 가족 전통 / 무감: 만신의 신복을 입고 춤추기 / 신령한 힘의 확산 / 친척 신령의 출현

제7장 조상 모시기
남성의례 / 조상의 입장에서 보면 / 불안한 망자들 / 굿에 등장하는 조상과 ‘영산’ / 굿에 참여하는 사람들 / 여성, 귀신, 조상

제8장 여성의례
동아시아 사회 비교 연구: 가족과 가정 / 한국 사례의 재검토 / 결론

부록
옮긴이의 글
무속 용어 설명
참고문헌
찾아보기
로렐 켄달Laurel Kendall
현재 미국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인류학 분과장, 미국아시아학회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회장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God Pictures in Korean Contexts(공저,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5), Shamans, Nostalgias, and the IMF(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0), Life and Hard Times of a Korean Shaman(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8) 등이 있다.
김성례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Journal of Korean Religions(http://muse.jhu.edu/journals/journal_ of_korean_religions) 편집장이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앤아버)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2016년 하버드-옌칭 연구소 방문학자를 지냈다. 저서로 『종교와 식민지 근대』(공저, 책과함께, 2013), 『한국 종교문화 연구 100년』(공저, 청년사, 1999), 『그리스도교와 무교』(공저, 바오로딸, 1998), 역서로 『샤먼』(공역, 창해, 2005), 『문화인류학 현지조사 방법』(공역, 일조각, 1996) 등이 있다.

김동규
현재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강사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및 원광대학교 요가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샤머니즘의 사상』(공저, 민속원, 2013),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공저, 모시는사람들, 2010) 등이 있다.

한국·한국인·한국문화 ― 돌아온 인류학자의 한국살이

김중순(Choong Soon Kim)

상징으로 말하는 한국인, 한국 문화

김열규

진한시대 여성사 연구(이명화 유고집 제1권)

이명화

사회이동과 계급, 그 멜로드라마: 미국 인류학자가 만난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

낸시 에이블먼(Nancy Abel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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