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보도자료
오월춘추-역주와 함께 읽는 오월상쟁의 역사
등록일 2009.09.18 조회수 1940    
춘추시대 말기 패권을 다퉜던 오월의 쟁패사를 다룬 소설 같은 역사서
‘와신상담’ ‘토사구팽’ ‘동병상련’ …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나 

『오월춘추』는 『좌전』, 『국어』, 『사기』에서 많은 사건과 소재를 따왔지만 그것들의 기록에만 얽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처 기록되지 않은 믿기조차 어려운 황당한 이야기들을 주저 없이 서술하며 과장된 묘사를 풀어내고 있다. 
이를테면 두 아들을 죽여 허리띠를 만든 전설, 합려를 떠나 초소왕에게로 간 잠로검의 일화, 수신과 싸워 이긴 초구흔의 설화, 월녀와 검술을 겨룬 원공이 원숭이로 변한 이야기 등은 탐욕과 증오로 피비린내 나는 숨 막히는 쟁패사 속에서 간간이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와 같다. 
지금의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가 전쟁하고 멸망한 역사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와신상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오왕 부차에 대한 월왕 구천의 치밀하고도 지독한 복수전이다. 충신 오자서가 없었더라면 합려와 부차는 춘추오패가 될 수 없었을 것이며, 현신 문종과 범려가 없었더라면 구천은 복수혈전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자서와 문종은 결국 ‘토사구팽’의 신세가 되고 만다. 
오자서는 ‘동변상련’으로 죄가 없는데도 죽음을 당한 조상의 원한을 갚고자 하는 백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려를 설득하여 함께 국사를 모의하였다. 
『오월춘추』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현자로 이름난 오나라 수몽의 넷째아들 계찰, 합려의 쿠데타에서 공을 세운 자객 전제, 피신하는 오자서를 위해 의롭게 죽은 어부와 빨래하는 여인, 합려의 후궁들을 상대로 병법을 시험한 손자, 부차에게 끊임없이 아첨하는 태재 백비 등의 행동, 대화, 심리를 통해 각각의 인물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룬 구천의 패업은 인정할 만한 것인지, 부차의 죽음은 패자의 처절한 결말인지. 과연 부차는 어리석고 구천은 현명한 패왕이었는지, 왕도와 패도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 『오월춘추』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의문점을 제시한다.
 
『오월춘추』, 조엽의 저작인가

오늘날 전해지는 『오월춘추』가 조엽趙曄이 저술한 『오월춘추』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엽은 애초에 『오월춘추』 12권을 저술하였으나 오늘날 전해지는 『오월춘추』는 10권이다. 진대晉代 양방楊方은 조엽의 『오월춘추』가 번잡하다며 5권으로 만들었으며, 당대唐代  황보준皇甫遵은 조엽과 양방의 『오월춘추』를 합하여 『오월춘추전』 10권을 만들었다. 따라서 오늘날 전해지는 『오월춘추』는 황보준의 『오월춘추』 10권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결국 조엽의 『오월춘추』를 저본으로 편집한 것이다.
 
『오월춘추』, 아류의 역사서인가

『오월춘추』는 잡사류雜史類, 소설가류小說家類, 이체잡기異體雜記적인 아류의 사서로 평가되었다. 『오월춘추』에서는 편년체 역사서술을 볼 수 있지만 점술뿐 아니라 두 아들을 죽여 만든 허리띠 고리 전설, 합려를 떠나 초소왕에게로 간 잠로검 일화, 수신과 싸워 이긴 초구흔 설화 등의 황당한 이야기와 과장된 묘사가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오월춘추』의 사실성과 객관성에 대한 평가를 크게 떨어뜨린 반면, 오월 양국의 쟁패를 극적으로 엮어 문학적인 가치를 높였다.
 
지은이 조  엽
『후한서後漢書』 권79 「유림열전儒林列傳」 하에는 조엽에 관한 짧은 기록이 남아 있다. 조엽의 생몰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에 의하면,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25~57년) 시 태어나서 명제明帝(58~75년), 장제章帝(76~89년) 때에 활동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조엽의 자字는 장군長君이며 회계會稽 산음山陰 사람이며 젊어서 현리縣吏가 되어 격문檄文을 받들고 독우督郵를 영접하였는데, 조엽은 이런 시종의 일을 부끄럽게 여겨 거마車馬를 버리고 떠났다. 20년이 되도록 소식을 끊고 돌아오지 않자 집안에서는 장사를 지내고 상복을 입었다. 조엽이 학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자 주州에서 불러 종사從事에 임명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유도有道로 천거되었으나 집에서 생을 마쳤다.
조엽은 『오월춘추』에서 수술數術에 관한 지식을 발휘하여 부차의 노복이 된 구천의 석방을 점치거나 오왕의 병이 회복되는 날을 예언하는 등 시일금기와 관련한 예언을 풀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부차가 고소대姑蘇臺에서 꾼 꿈을 해석하는 몽점夢占도 구사하고 있다. 『오월춘추』에서 적용되는 시일금기는 시각까지 고려되고 있어 진秦에 비해 조엽이 활동한 후한대의 시일금기는 더욱 정밀하게 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주자 이명화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 고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강사이다. 최근에는 출토문헌에 기반을 둔 가족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논문으로는 「춘추시대 오문화吳文化의 기원과 형성」, 「춘추시대 오국吳國의 패권?權에 관한 분석」, 「조엽趙曄과 『오월춘추』」 등이 있다. 역서로는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공역)가 있다.
    
 고대 브리튼,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