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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나라 태봉-그 역사와 문화
등록일 2009.09.18 조회수 1974    
궁예, 폭군인가 비운의 패자인가 
 
궁예 그리고 그가 세운 나라 태봉은 한국사상 최대 격변기 중의 하나였던 후삼국시대에 한때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였다. 우리 역사상 군주가 자신을 부처라고 칭한 것은 궁예가 유일하고, 국왕을 신격화하여 신정적 전제주의를 추구한 국가 역시 태봉이 유일하다. 
미륵의 이상세계를 실현하려는 궁예의 노력은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과감하였기 때문에 후대의 역사가들, 특히 유교적 이념에 충실한 역사가들은 궁예를 ‘폭군’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그러나 불만과 모순이 가득한 당대의 현실을 이상사회로 개혁하고자 했던 궁예의 모습은 ‘정사’보다는 ‘설화’ 속에서 그 생명력을 면면히 이어왔다. 비록 짧은 기간 명멸하였지만 궁예와 태봉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면으로 역사적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태봉은 어떤 나라인가 

태봉은 895년부터 918년까지 24년간 존속하였다. 14년간 유지되었던 대한제국보다는 길지만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48년보다는 훨씬 짧다. 또 태봉은 단 한 명뿐인 왕, 궁예대에서 멸망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태봉은 한국 역사상 단명하였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몰락한 왕족 출신이었던 궁예는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이후 반란군에 가담하였다가 점차 독자세력을 구축하여 마침내 후고구려(고려)를 건국하였다. 904년에는 마진으로, 911년에는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이 중에서 궁예정권의 전성기이자 그 정권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가 태봉시대였다. 
태봉은 후삼국 전 영역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영토를 차지하였던 강대한 나라였다. 사료나 연구성과에 의하면 궁예정권의 영토는 원주ㆍ영월ㆍ인제ㆍ화천ㆍ철원ㆍ양구 등지를 포함한 지금의 강원도 일대를 말한다. 그리고 양평ㆍ광주ㆍ양주 등의 경기도 일대와 홍성ㆍ공주 등지의 충청남도 일대, 청주ㆍ괴산ㆍ충주 등지의 충청북도 일대도 궁예정권의 영역이었다. 아울러 궁예세력은 진도ㆍ영암ㆍ영광 등의 전라남도 일대와 섬진강 일대까지도 미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예정권은 평양과 안변 일대 등 이북 지역에도 진출하였다.

이 책의 특징과 내용
 
『궁예의 나라 태봉-그 역사와 문화』는 태봉 철원 정도 1100주년을 맞아 강원도 철원군의 지원으로 진행된『태봉국 역사문화유적 학술조사 연구용역보고서』(2006)를 토대로 만든 책이다. 11명의 필자들은 김용선 엮은이의 의도에 맞추어 원고를 보완하고 다듬었다. 
이 책은 궁예와 태봉에 관한 각각의 주제들을 다루면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왕의 연구성과를 세밀히 검토하고 충분히 섭렵하여 누구라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다시 말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다각도로 살펴본 궁예와 태봉에 관한 최초의 개설서이자 앞으로의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종합입문서이다. 
1부에서는 궁예세력의 형성과 건국,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주로 문헌자료에 의한 전통적인 역사연구의 방법으로 검토하였다. 2부에서는 불상이나 성곽과 같은 각종 유물과 유적, 전설 아울러 문학이나 영상작품을 통하여 나타난 궁예의 자취와 모습을 분석하였다.
 
이 책을 쓴 사람들
김기덕金基德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김용선金龍善  한림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신호철申虎澈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
유인순柳仁順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유재춘柳在春  강원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이   재李   宰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명예교수
이재범李在範  경기대학교 인문학부 사학전공 교수
정청주鄭淸柱  전남대학교 문화사회과학대학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조범환曺凡煥  서강대학교 박물관 연구교수
조인성趙仁成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채웅석蔡雄錫  가톨릭대학교 인문학부 국사학전공 교수
최성은崔聖銀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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