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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의 무대 뒤
등록일 2009.09.18 조회수 1934    
왜 메이지유신의 ‘무대 뒤’인가
 
▶메이지유신의 의미
일본의 역사와 정치사에서 ‘메이지유신’이란 도쿠가와막번체제를 붕괴시키고 천황제 통일국가를 형성하여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된 정치·경제·사회적 변혁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의 역사·정치적 성격을 ‘개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혁명’으로 볼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또 메이지 국가가 지향한 근대 일본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메이지유신이 일본을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전환시킨 대변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 시작과 끝이 언제까지인지, 다시 말해 어느 시기의 어떤 변화를 가리켜 메이지유신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주장이 있다.
메이지유신은 가장 넓은 의미로 1830년대의 덴포개혁부터 1889년 또는 1890년 메이지 헌법체제가 성립할 때까지를 포함한다.
중간적 관점으로는 1853년 페리제독의 내항을 메이지유신의 시작으로 보고 그 마무리를 1871년 폐번치현이나 지조개정 또는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와의 서남전쟁에서 메이지정권 세력이 승리한 시기까지로 보기도 한다. 
좁은 의미로는 도쿠가와막부가 붕괴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가 성립하는 과정을 메이지유신이라 칭한다. 1867년의 대정봉환과 왕정복고의 선포, 다음 해 1월 도바·후시미전투에서 도막군이 승리하여 1868년 3월 14일 메이지천황이 「5개조의 기본방침」을 발표할 때까지를 가리킨다.
 
▶왜 제목이 ‘메이지유신의 무대 뒤’인가
『메이지유신의 무대 뒤』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는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면서 메이지유신사가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되는 1864년부터 도쿠가와막부의 종말을 의미하는 1868년 4월 에도성을 넘겨줄 때까지이다. 이 시기야말로 메이지유신의 특징인 국내적인 움직임과 국제적인 움직임의 관련이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정국은 메이지유신사의 빠른 변화 속에서 가장 급격하게 흐름이 전개되었고 막부 타도를 향해 줄달음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었으며 아침의 양이운동은 저녁녘에는 개국운동으로 변모했다. 책 제목을 『메이지유신의 무대 뒤』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점을 고려한 것이다. 
저자는 제1판에서 이 책 제목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정국의 막후에서는,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크게 책동하면서 일본인을 조종하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와 같은 외국인의 움직임을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필자가 이 책을 저술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었다. 이와 함께 막부 측과 반막부 측을 불문하고, 지사라 불리고 호걸이라 불리는 지도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광분했는지를 외국 측의 책동과 관련시켜 밝히고자 노력했다. 
지난날의 유신사에서 대의명분적인 관점에서 날조된 메이지유신사의 ‘표면적 측면’만이 알려져 왔을 뿐이었다. 더욱이 오늘날 ‘새로운’ 메이지유신사에서도 아직 그 경향이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는 것 같다. 필자는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메이지유신사의 참된 실상을 밝혀내기 위해 그 숨어 있는 ‘이면’을 들추어내려고 노력했다.”
 
이 책의 특징과 내용 

저자 이시이 다카시가 『메이지유신의 무대 뒤』에 쓴 서문에 따르면, 일본근대사의 출발점인 메이지유신은 세상 사람들의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고, 일본 역사에서 가장 활발한 논쟁이 펼쳐진 분야이다. 사람들의 관심에 호응하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몇 가지 개설서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저서가 세상에 나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면적인 화려함만을 보고, 곧 이 방면의 연구가 실질적인 발전을 이룩했다고 말할 수 없다.
메이지유신사에 관한 주요 개설서에 서술된 내용들은 왕정복고사관에 입각해 유신사가 제공하는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데 머물러 있고, 새로운 사실은 아무것도 발굴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들 기존 연구가 표면상 다소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다만 지금까지의 사실에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거나 새롭게 표현하려고 애쓴 것에 불과하다. 
메이지유신은 국내의 움직임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메이지유신이 촉진된 데는 국제적임 움직임이 큰 역할을 했다. 국내·국제적 움직임이 서로 엉켜가면서 정국이 격류를 이루어 숨 가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메이지유신 정치과정의 특색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메이지유신사 연구에서 많이 부족했던 점은 그 정치과정을 국내적 움직임과 국제적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관련시켜 추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메이지유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국내적 움직임과 국제적 움직임의 관련이라고 생각하고 『메이지유신의 국제적 환경明治維新の國際的環境』(1957)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국내적 움직임과 국제적 움직임을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메이지유신에 관한 정치사에서 새로운 측면을 나타내 보였다. 이후 그러한 의도를 좀더 발전시키기 위해 『메이지유신의 무대 뒤』를 집필했다.

지은이 이시이 다카시
1909년 일본 도치기 현에서 태어나 1933년 도쿄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도호쿠대학교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옮긴이 김영작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4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도쿄대학교 법학부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대일본학회·한국정치외교사학회·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이며 일본 호세이대학교 법학부 국제정치학과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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