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보도자료
그림속의 의학
등록일 2007.05.03 조회수 1903    

 

한성구 지음|2007.3.30|크라운판 변형|344쪽|23,000원


의사가 읽어낸 ‘그림 속 의학’

관념과 품격을 중시하던 동양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회화에 비해 서양회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재현하려고 노력해왔으며, 그 결과 서양의 미술 속에는 현실 생활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의학과 관련이 있는 그림은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의료 현장을 직접 묘사한 그림뿐만 아니라 의사의 초상화도 있고, 화가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린 모델의 모습에서 질병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면 삶과 죽음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는 그림 등 실로 무궁무진하다.
이 책에서 ‘중년의 내과 의사’인 지은이가 보여주려는 그림, 보고 있는 그림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지은이는 아름다운 비너스의 모습에서,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의 모습에서, 화폭에 담겨진 화가 자신의 모습에서 매일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의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의사와 환자의 모습을, 그림 속 주인공을 통해서 그리고 그림과 관련된 일화들을 통해서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림을 ‘읽은’ 의사, 환자와 사람으로 만나다

의료 현장을 직접 다룬 그림으로는 스텐의 〈진료실의 임산부〉같이 말 많은 환자를 다룬 유머러스한 그림부터 피카소의 〈과학과 자비〉처럼 과학화되어가면서 점차 온기를 잃어가는 의학의 변모를 뛰어나게 형상화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모델의 모습에서 질병의 징후를 찾다보면 마치 탐정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유방암의 논란이 있는 렘브란트의 〈밧세바〉나 왼쪽 가슴이 작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독특한 외모의 난쟁이가 등장하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작자 미상의 〈백내장 수술의 결과를 발표함〉처럼 어떻게든 유명해지고 싶은 의사를 통렬하게 야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환자가 느끼는 삶에 대한 애착을 절절히 묘사한 그림도 있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인간 본성의 여러 원형이 녹아 있는 그림들을 통해 화가와 의사, 환자를 만난다. 경우에 따라 과장되게 묘사하거나 거칠게 표현되어 있는 그림들도 있지만 모든 그림에는 사랑, 질투, 절망, 복수, 회의, 이기심과 자기희생 등 인간의 다양한 내면세계가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우리의 인성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직업을 택한 이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의 하나다. 환자를 인간으로 대해야 하는 의사들에게는 특히 중요한 덕목이면서, 날마다 접하는 환자들의 내면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

1  흔들리는 삶에서는 렘브란트의 〈밧세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그림 속 주인공에게서 질병의 증후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화가 자신의 육체적ㆍ정신적 고통들을 그려낸 그림들도 살펴본다.
2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서는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는 화가 자신의 질병을 찾아보고, 육체적 결함 때문에 평생을 서럽게 살아야 했던 그림 속 주인공들을 만나본다.
3  떠나는 자와 남는 자에서는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다양한 대응 방식이 표현된 그림들을 감상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이 절절하게 표현된 여러 그림들을 살핀다.
4  의사의 길은 험난해에서는 의과대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들과 함께 나름대로 겪고 있는 고충들을, 지은이의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5  화가, 의사를 발가벗기다에서는 화가를 치료한 의사들이 주인공이 된 그림들을 살펴본다. 이와 함께 때로는 존경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멸시와 질타를 받기도 하는 그림 속 의사들을 만난다.
6  유명해지고 싶은가요?에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 중시하는 그림 속 의사들을 찾아보고, ‘의학’에 관한 그림들을 통해 의사가 가져야 하는, 의료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들을 생각해본다.



지은이 소개

한성구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레지던트를 수료했다. 1986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은 후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교육, 수련 담당 교수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 담당 부학장, 서울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 분과장을 역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실기 평가 위주의 미술 교육에 흥미를 잃어 미술에서 과락 점수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미술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1990년부터 2년 동안 미국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립미술관을 드나들면서 미술 감상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어 『의사신문』에 ‘Medicine in art’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써두었던 글들이 쌓여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책 속으로

피카소의 〈죽음의 자화상〉은 피카소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마지막 자화상이다.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크레용으로 쓱쓱 그린 이 자화상은 그러나 녹록치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먼저 동공 크기가 서로 다른 두 눈이 인상적이다. 신경과나 신경외과 의사가 보면 뇌 속에 병변이 있다고 할 소견이지만, 사실 불안하고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이 짝짝이 눈동자는 흔들리고 분열된 자아를 표현한 것이다. 이 대단한 천재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뒤에는 흔들리고 있다. 이 흔들림은 뭉개진 분홍색 머리카락,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얼굴에 비해 턱없이 좁게 그려진 어깨, 깊고 유난히 뚜렷한 검은 콧구멍에서도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죽음의 자화상」(134쪽)

프라 안젤리코의 〈팔라디아를 치료하는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아누스〉를 보면 환자의 집을 나서는 의사에게 환자 가족이 감사의 표시로 금품을 내밀고 있는데, 의사는 한 손으로 사양의 표시를 하고 있지만 다른 한 손으로 금품을 받고 있다. ‘의술을 펼치는 대가로 어떠한 금품도 받지 않겠다’는 스스로 한 서원을 어기고 있는, 요샛말로 ‘촌지’를 받는 장면이다.
촌지를 ‘밝히는’ 의사는 곤란하다. 또 퇴원을 앞둔 환자가 ‘촌지’로 마음에 부담을 느낀다면 그 또한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저 의사 선생 때문에 내가 살았다’라고 생각하는 환자가 마음에서 우러나서 내미는 촌지를 무턱대고 거절하는 것 또한 어렵다. 택시 타고 가시라고 아드님이 드린 돈을 아껴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고의춤에서 꺼내 손에 쥐어주시며, “선생님이 건강해야 내가 오래 살지. 꼭 맛있는 것 사 잡숴” 라며 몇 번이나 다짐하던 할머니, 그리고 치료 후 숨이 훨씬 덜 차서 산에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직접 딴 송이버섯 몇 송이를 신문지에 싸서 어색하게 내밀던 할아버지. 의사는 이러한 촌지를 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귀가 어두운 이 분들을 위해 큰소리로 외친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이러니 의사가 개혁의 대상인가 보다.
―「의사들의 수호성인도 촌지를?」(275~276쪽)

리고의 〈루이 14세의 초상〉은 무엇보다도 화려한 옷차림과 역시 으리으리한 배경이 눈길을 끈다. 이 초상화는 루이 14세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기보다는 화려한 옷차림과 거만한 자세, 약간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위풍당당한 지배자, 절대권력자의 위압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루이 14세의 얼굴을 세심히 살펴보면 윗니가 빠진 합죽이(무치악無齒顎)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처음에 위풍당당함에 속아 넘어가 이 뽑기 전의 초상화인 줄 알았는데 이 그림을 본 치과 선생님이 가르쳐주었다. 전문가의 눈은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절대군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돌팔이 의사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어 흥미롭다.
어느 책에서 본 유머 한 마디. 치과에서 이를 뽑고 나서 청구서를 받아든 환자가 외친다. “아니, 금세 뽑았는데 이렇게나 비싸요?” 유들유들한 치과 선생님의 태연한 대답, “원하신다면 아주 천천히 뽑아 드릴 수도 있는데…….”
―「돌팔이 의사의 이 뽑기」(305쪽)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
 패총의 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