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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
등록일 2007.05.02 조회수 1782    

 
에드워드 와그너 지음|이훈상ㆍ손숙경 옮김|신국판 양장|528쪽|30,000원


서구 한국학의 선구자, 에드워드 와그너의 연구 성과 집대성!

미국에서 한국사연구의 기조와 방향을 결정하는 데 초석을 놓은 연구자, 서구 한국학의 토대를 쌓은 개척자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한국사연구가 국내의 주류 한국사연구와는 다른 방향을 걷도록 만든 에드워드 와그너. 특히 동아시아 전체의 구도 속에서 한국사에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중국과 일본에 종속된 사회 또는 문화로 간주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종래의 선입견을 바꾸고 한국사 자체의 특성과 역동성을 부각시키려 했던 와그너의 주요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Achievement and Ascription in Joseon Dynasty』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의 신분구조와 정치사, 과거제도, 양반 지배엘리트의 성격과 위상, 중인계급의 형성과 발전, 한국의 근대화 등 조선왕조 사회 전반에 관해 와그너가 남긴 주요 논문들을 실었다. 따라서 그동안 그 의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와그너의 한국사에 관한 연구 성과들을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한국학의 각 분야를 지배하면서 현실 정치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까지 작동하고 있는 내재적 발전론 비판을 넘어서는 한국사의 새로운 구도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학의 세계화’에서 길잡이가 될 와그너의 연구 성과들

그동안 주로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내재적 발전론은 최근 들어 근현대사연구의 주요 전제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근대와 근현대로 나누어 각 시대의 연구에만 몰두하는 편협한 분위기 속에서 연구자들은 양자의 연관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근현대사 이해에도 내재적 발전론의 성과가 일방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내부 시각만을 절대시하는 국내의 주류 담론들과는 달리 비교사적 구도 아래 한국사 자체의 특성에 주목해온 와그너의 연구 성과는 조선시대는 물론 근현대사에 대한 해석과 이에 기초한 역사 과잉의 ‘현실 정치’의 향방도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특히 일찍부터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견실한 경험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와그너의 연구 성과는 비교론적 시각과 체계적인 경험적 연구에 의지해 한국사의 특성을 보다 개방적으로 드러내며, 거시적 구도와 미시적 접근을 동시에 아우르면서 균형 잡힌 서술과 풍부한 문제 제기를 보여준다. 이러한 와그너의 문제의식과 성과들은 국내 연구자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내세우거나 선전하는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학의 세계화’가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제1부 신분구조, 사회 이동 그리고 지배체제에서는 각종 방목과 읍지 등을 토대로 전통 한국사회에서 과거제도를 통한 사회 이동의 가능성과 종족제도를 통한 지배체제의 지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양자의 상관관계를 추적한다.
제2부 사화의 성격과 사림의 문제에서는 조선전기에 발생한 사화의 성격, 지배엘리트의 구성과 성격을 추적하면서, 사화는 이론적으로 무제한적이며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복종을 주장하는 군주와 왕권을 한정하고 구속하는 도구로서 유교 윤리를 사용하는 양반 귀족 엘리트 성원들 사이의 격렬한 구조적, 제도적 갈등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제3부 종족제도와 여성의 지위에서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족보를 토대로, 역사적 실체로서 친족의 다양성과 변화를 각 씨족들의 사례를 통해 풍부하게 기술한다. 그리고 1476년과 1565년에 각기 출간된 『안동권씨성화보』와 『문화유씨가정보』의 기재 양식이 조선후기의 기재 양식과 구분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조선전기와 조선후기 여성의 지위에 대한 차이점을 밝힌다.
제4부 중인 신분의 기원, 발전 그리고 근대 이후의 운명에서는 잡과방목이나 잡과-중인 가문들의 족보 등 이 집단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정량화하면서 잡과-중인 종족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근대 이후의 양상에 대해 밝힌다.
제5부 지배엘리트에 대한 연구와 한국학의 전산화 문제에서는 1967년 송준호와 함께 시작한 ‘와그너-송 문과방목프로젝트’의 경과를 정리한다. 조선왕조 전 시기 동안 진행된 748회의 문과시험 급제자 14,607명과 이들의 4조를 포함한 인맥지도를 만드는 ‘와그너-송 문과방목프로젝트’는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이라는 상반된 이념과 실제 사이의 관계를 평생 천착한 결실이다.
제6부 5ㆍ16 군사쿠데타, 근대화 그리고 한ㆍ미관계에서는 한국 전문가로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근대화의 기치 아래 경제발전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등 격동하는 당시의 한국 현실을 직시하면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지은이ㆍ옮긴이 소개

지은이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 Wagner(1924∼2001)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1941년에 하버드대학에 입학해 1943년까지 공부한 후 육군에 입대해 1946년까지 근무했다. 이어 1946년부터 1948년까지 한국에서 미군정 문관으로 외교 업무를 담당했으며, 하버드대학으로 돌아와 1949년에 졸업하고 1951년에 동아시아 지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곧 박사 과정에 입학해 1953년에서 1955년까지 일본 덴리天理대학에서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교수로부터 한국사를 지도받았다. 195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담당했다. 와그너는 35년 넘게 하버드대학에서 한국학의 개척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으며 그의 노력으로 축적된 옌칭도서관 내 한국학 자료실은 서구 한국학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하와이대학의 에드워드 슐츠와 함께 영어로 번역한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신론The New History of Korea』은 한국학에서 일종의 지표 역할도 겸하고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그는 정년 이후에도 송준호와 평생에 걸쳐 공동으로 추진해온 ‘와그너-송 문과방목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 애썼으나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2001년 11월 7일에 작고했다.

옮긴이 이훈상李勛相

동아대학교 교수. 저서로는『朝鮮後期의 鄕吏』(일조각, 1990)와 『가산오광대』(국립문화재연구소, 2004)가, 번역서로는 『전통 한국의 정치와 정책』(제임스 팔레 지음, 신원문화사, 1993), 『순수와 위험』(메리 더글라스 지음, 공역, 현대미학사, 1997),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음, 아카넷, 2003)이, 편저로는 『鄕吏의 歷史書 『掾曹龜鑑』과 그 續編을 編纂한 尙州의 鄕吏知識人 李明九 家門과 그들의 文書』(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2), 『朝鮮後期 東萊地域社會의 엘리트와 天主敎 受容者들 그리고 이에 관한 古文書』(공편, 부산교회사연구소, 1995), 『朝鮮後期 彦陽의 鄕班 昌寧 成氏 家門과 天主敎 受容者들 그리고 이에 관한 古文書』(共編, 부산교회사연구소, 1999)가 있다.

옮긴이 손숙경孫淑景

동아대학교 강사. 편저로는 『中人 金範禹 家門과 그들의 文書』(1992), 『朝鮮後期 東萊地域社會의 엘리트와 天主敎 受容者들 그리고 이에 관한 古文書』(共編著, 1995)가, 자료집으로는 『고문서집성』(경주최씨 용산서원편)이,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朝鮮後期 邊境地域의 武任組織과 武任集團, 그리고 이들의 正體性―東萊地域의 사례연구」가 있다.
 


책 속으로

무오사화에서 기묘사화에 이르는 기간은 그 본질이 조선 당쟁사의 서막이 아니라 주요 제도의 발전기라는 데 가장 중요한 의의가 있다. 관찬사료의 기록을 보면, 이 시기의 현상을 당쟁이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 분석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어떠한 정치체제라도 존속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배분과 정치적인 대립의 해소를 위한 효율적인 방식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시도한 방식은(그것이 아무리 한국 특유의 사회적, 문화적 형태를 반영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지역의 전근대사회에서 시도한 방식과 비교할 때 당쟁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에만 있는 특유한 현상도 아니요, 또 한국의 당쟁이 보다 더 당쟁적이었던 것도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앞으로의 연구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 사람들이 택한 방식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사화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왕조의 영속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크게 이바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고도로 발달한 간쟁제도가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정치사적 입장에서 본 조선시대 사화의 성격」(131~131쪽)
조선시대 기술관으로서 정부에 근무했던 중인계급 중 핵심적인 종족들의 기원과 관련하여 다른 두 과정이 동시에 작용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하나는 잡과 종족이 이미 확립된 양반 씨족들의 서자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씨족 출신이 비록 양반 씨족들처럼 중요한 지위를 확립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잡과 급제자를 배출하는 종족으로 점진적으로 변한 것이다. 조선왕조가 건국된 1392년과 바로 그 이후의 상황이 유동적이었을지라도 사회적, 이념적인 경계는 급속도로 굳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아무리 늦어도 1600년경에는 잡과-중인 종족들은 그들 자신이 배제되는 것보다 다른 이들에 대해 한층 더 배타적인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계층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양반이라는 장벽을 부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위로부터 하강했거나 또는 아래로부터 상승하기 위해 분투하려 한 이러한 종족들 덕분에 자신의 계층을 침해당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유지했던 것이다. ―「조선왕조의 중인계급에 대한 연구」(265~266쪽)
 
 
    
 근대 동아시아 경제의 역사적 구조
 그림속의 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