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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방법-문화ㆍ문명ㆍ국민국가
등록일 2007.02.28 조회수 2009    

 



니시카와 나가오 지음 | 한경구ㆍ이목 옮김 | 2006.9.20 | 신국판 | 440쪽 | 18,000원

 


“문화의 국경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문명, 문화, 민족, 국가.
우리는 매일 보고 듣고 내뱉는 이러한 일상적인 용어 속에 얼마나 크고 무시무시한 근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 『국경을 넘는 방법』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 책이다.
여기서의 국경은 정치적 국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또는 문화를 통해 만들어진 국경이다. 지은이 니시카와 나가오는 문명과 문화가 근대 국민국가의 국가통합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수없이 많은 문헌과 실례를 통해 명쾌하게 지적하면서, 현재 우리들이 얽매인 편견이나 이데올로기가, 편견이며 또한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한다. 우리가 보편적ㆍ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했던 문화가 근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라면 그러한 “문화의 국경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문명과 문화-근대 국가 프랑스와 독일의 이데올로기

“내가 태어난 나라를 왜 사랑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듯한 물음에서 시작한 이 책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을 지탱하고 있는 가치관의 대표적인 예로 문명과 문화의 문제를 든다.
문명과 문화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단어로,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문명과 문화라는 척도를 적용하여 세계를 문명-미개 또는 문화적-비문화적이라고 판단한다. 이때 이들 단어에는 흔히 보편적인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니시카와 나가오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문명과 문화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친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과 거의 때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문명과 문화는 근대의 지표指標이며 뛰어난 근대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니시카와는 바로 이 점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문헌과 실례를 인용하여 유럽에서 문명과 문화 개념의 형성사를 추적했다. 그는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점을 강조했는데 첫째, 문명과 문화는 18세기에 사용되기 시작한 새로운 어휘로 유럽의 국민국가 형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둘째, 문명과 문화는 대항적인 개념이며 문명 개념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문화 개념은 독일에서 발달했다. 그래서 문명은 유럽 선진국의 의식을, 문화는 후진국의 의식을 반영한다. 셋째, 서구는 문명 또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비非유럽세계를 나누고 판단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 외에도 문명과 문화의 또 다른 측면, 즉 이들 개념이 번역어라는 점을 우리가 잊고 있다는 또는 잊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 사실은 서구의 문명, 문화 개념과 우리의 문명, 문화 개념이 엄밀히 말하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서는 번역어인 문명과 문화가 일본사회에 정착되어가는 과정을 고찰했지만 이것을 우리 사회에 대입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둘러싼 역사 또는 국민국가 스스로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문명, 문화라는 용어나 개념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결국―심지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마저도―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포박당해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국민문화나 전통, 특히 한국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 사로잡혀 있다.


세계화시대의 문화 이데올로기 극복을 위하여

그렇다면 근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인 문화의 대안은 없는 걸까? 놀랍게도 니시카와 나가오는 문화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도 문화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비록 문화가 독일 국민국가 그리고 일본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음을 지적하면서도, 그는 ‘사문화私文化’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한 번 문화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다.
사문화란 ‘나의 문화’ 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문화’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것은 ‘특정한 집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전달이나 학습을 통해 형성된 것들을 문화라고 부른다’는 일반적인 문화의 정의와는 모순된다. 그러나 보편에 대한 개별성이라는 문화 개념을 규명해가면 문화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문제에 직면한다. 즉 문화의 최종 단위는 ‘개인 상위문화인 국민국가를 세대별ㆍ성별ㆍ지역별 등의 다양한 하위문화로 분화해가면 마지막에는 개인으로 귀결된다’는 논리적 발상에 입각하고 있다.
니시카와 나가오의 문화에 대한 이러한 기대는 결코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앞서 살았던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유산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루어내는 세계,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문화야말로 근대 국민국가의 독점으로부터 문화를 되찾아 국민국가의 국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라는 확신은 인간의 가능성과 자유에 대한 믿음인 동시에 그의 논의의 논리적 귀결이다.


난민難民의 기억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화를 비판하는 이 책에는 지은이의 개인적 체험이 녹아 있다. 중국 국경과 가까운 북한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난 니시카와 나가오는 일본제국의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한반도와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에는 38선을 넘었고, 다시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송되어 미국의 군용선軍用船에 실려 일본으로 귀환하기까지 1년 가까이 난민 생활을 했다. 즉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인 군인의 자식이었고, 자신이 있던 곳에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정당화할 수 없는 소년 시절을 보냈다.
전후 일본에서 식민지 태생이라는 사실은 고향에서 거부당하고 끝내 조국에 동화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경을 넘는 방법’이라는 이 책 제목의 배후에는 인생의 첫 11년 동안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경험을 해야만 했던 한 소년이, 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끌어안아야만 했던 어려운 질문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이 숨겨져 있다. 니시카와 나가오에게 전후 60년은 근대 일본 140년을 비판적으로 대상화對象化하기 위해 쏟아 부은 세월이지만, 그 속에는 전쟁 중에 순수배양된 애국 소년의 자기붕괴와 전향의 이야기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니시카와 나가오에게는 패전 당시 국가와 군대 모두 국민을 전혀 지켜주지 않았고, 난민이 된 사람들은 국가가 없이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다는 정신이 깔려 있다. 이러한 탈국가적 생존 양식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문화’인 사문화라는 개념으로 나타났고, 국가를 뛰어넘어 앞으로의 시대에 희망을 걸머지고 나아갈 사람을 뜻하는 넓은 의미의 ‘이민移民’으로 구체화되었다.

니시카와 나가오는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2006년 9월 20일(수) ‘지구화시대의 신식민주의를 묻는다’라는 주제로 한양대에서 학술강연회를 가졌습니다.


이 책의 내용

1장 「세계지도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우리가 흔히 보는 세계지도 속에 숨어 있는 자국 중심주의, 민족과 문화가 일치한다는 편견,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신화, 나와 우리의 이분법 등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2장 「좋아하는 나라, 싫어하는 나라―심리적 세계지도」에서는 ‘좋아하는 나라와 싫어하는 나라’라는 설문조사를 통해 사람들 내면에 숨어 있는 편견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3장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읽으며」는 뛰어난 동양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오리엔탈리즘』을 이문화異文化 교섭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 작업을 통해 『오리엔탈리즘』 저술 동기와 사이드가 서양과 동양, 강자와 약자라는 이항대립二項對立을 강조함으로써 자초해버린 막다른 길을 다시 열어볼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4장 「서구화와 회귀」는 제2의 개국이라는 전후戰後에, 일본에서 서구화와 국수國粹(전통 회귀)가 규칙적인 주기를 갖고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5장 「기원―유럽적 가치로서의 문명과 문화」는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문명과 문화 개념에 주목하여, 서양에서 이 두 단어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추적했다.
6장 「프랑스와 독일―대항 개념으로서의 문명과 문화」는 대항 개념으로 성장한 문명과 문화의 변천과정을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문명은 프랑스에서, 문화 개념은 후진 국가인 독일에서 국민통합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했음을 입증했다.
7장 「일본에서의 수용―번역어로서의 문명과 문화」는 서구의 문명과 문화 개념 중 독일의 ‘문화’ 개념을 받아들인 일본에서 번역어로서 문화가 수행한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살펴보고, 그것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8장 「국민문화와 사문화―일본 문화는 존재하는가?」는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각각의 순수한 국민문화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허구성을 지적했다. 국가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 있는 기존 문화 개념의 대안으로 새롭게 사문화私文化라는 용어를 제시했는데, 이것은 ‘나의 문화’ 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문화’라고 번역할 수 있다.
9장 「두 개의 ‘일본문화사관’―타우트와 사카구치 안고」는 브루토 타우트라는 외국인과 사카구치 안고가 쓴 동일한 제목의 『일본문화사관』을 비교ㆍ대조함으로써 8장에서 제기한 순수한 국민문화의 허구성을 다시 한 번 지적한다. 문화란 결국 생활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선택과 결단의 문제라는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10장 「글로벌리제이션·다문화주의·아이덴티티―사문화에 관한 고찰을 심화하기 위하여」는 2001년 증보판을 발행하면서 새롭게 덧붙인 글로 앞서 제시한 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좀더 심화했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정의와 구체적인 모습, 다문화주의의 가능성, 아이덴티티의 정치성에 대해 다루었다.
「해설―‘국민국가’론의 공과 죄」는 사회학과 여성학 연구자로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가 썼다. 우에노는 문명과 문화 개념에 대한 니시카와 나가오의 날카로운 비판에 감탄하면서도 문화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불만을 나타냈다.


책 속으로

세계지도는 지구가 여러 국가들로 구성되며 국경으로 나뉘고 색으로 구분된 국민이 존재한다는 고정관념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과 문화가 일치한다는 편견,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신화,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것을 등지고 선 사람들과 ‘비국민非國民(히코쿠민)’을 향한 반감 등도 함께 일깨워준다.
(19∼21쪽)

문화와 문명은 이 말을 사용하는 독일인이나 프랑스인(또는 영국인)의 국민의식과 그들이 세계를 전체로 고찰하는 방식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와 문명은 그들의 국민적인 가치관이요, 세계관의 표명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160쪽)

나는 여기서 조금은 다른 입장에서 문화상대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즉 문화상대주의에 의해 인정되는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잔재에 대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문화상대주의는 전세계 모든 문화의 독립과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주장함으로써, 결국은 문화적인 세계지도를 그렸으며 문화라는 국경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문화상대주의는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으로 출발하면서도, 결국 국민국가라는 고정적인 문화 모델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이동하고 변용해가는 전세계 모든 문화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256∼257쪽)


추천사_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

‘서양’에게는 ‘동양’이자 ‘동양’에게는 ‘서양’인 일본, 오리엔트화되는 오리엔트이자 오리엔트화하는 오리엔트인 일본에 대한 니시카와 나가오의 날카로운 성찰은 비교문화 연구의 진경眞境을 보여준다. 비교문화의 단단한 이론 틀 속에서 ‘일본적인 것’ 혹은 ‘일본 고유 문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문화적 본질주의를 해체하는 그의 차가운 시선은,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문화’의 회로 판에 갇혀 있는 일본 지식사회에 대한 엄정한 자기 비판이다. 진보적 지식인이든 보수적 지식인이든 민족문화의 실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한반도의 지식인들이 그의 실천적 비판에 귀 기울일 때, 동아시아의 정치 지형은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지은이 소개

지은이_ 니시카와 나가오西川長夫
1934년 한국 평안도 강계 출생. 교토대 문학부 및 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비교사·비교문화론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리쓰메이칸立命館대 선단先端종합학술연구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신식민지주의론―글로벌화시대의 식민주의를 묻다』(平凡社, 2006), 『전쟁의 세기를 넘어서―글로벌화 시대의 국가ㆍ역사ㆍ민족』(平凡社, 2002), 『국민국가론의 사정射程, 혹은 ‘국민'이라는 괴물에 대하여』(柏書房, 1998), 공편저로 『글로벌화를 읽어내는 88의 키워드』(平凡社, 2003), 『20세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다언어, 다문화주의를 손잡이로 하여』(平凡社, 2000) 등이 있다. 이 외에 공역서로 루이 알튀세의 『재생산에 대하여―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平凡社, 2005),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과 가족 로망스』(平凡社, 1999)가 있다.

옮긴이_
한경구韓敬九
서울대 인류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및 동경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수학했다. 강원대 인류학과를 거쳐 현재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로 있으며, 재외한인학회 회장, 한국환경사회학회 부회장,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와 한국문화인류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공동체로서의 회사―일본 기업의 인류학적 연구』(서울대출판부, 1994), 『세계 속의 한인―아시아 태평양 편』(통일원, 1996), 공저서로 『시화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솔, 1998),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일조각, 2003), 공역서로 『문화인류학의 역사』(일조각, 1994),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일조각, 1999) 등이 있다.

이목李沐
지곡서당芝谷書堂과 교토대에서 수학했다. 『선이란 무엇인가』(이론과실천, 2006), 『소년의 눈물』(돌베개, 2004), 『미녀란 무엇인가』(뿌리와이파리, 2001)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자연재해와 유교국가
 신판 독립협회연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