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보도자료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
등록일 2007.02.26 조회수 2484    




한상일ㆍ한정선 지음|2006.7.7|크라운판 변형(166×224)|320쪽|18,000원

 

전장으로 나아가는 젊은 청년들이 기차 안에서 환송객에게 경례를 하자, 환송객들은 그들을 위해 한마음 한목소리로 출진가를 부르며 손을 흔들어 답하고 있다.
“출진―하늘을 대신해서 불의를 토벌하자. 충용무쌍한 우리 군대를 환호의 한목소리로 보낸다. 이제 출진하는 부모의 나라에 반드시 승리를 가지고 돌아오리라. 용감한 병사의 마음.”

1904년 2월 21일자 『도쿄아사히신문』에 실린 시사만화‘출정병사를 환송하는 역의 모습’에 대한 설명이다. 젊은이들을 사지인 전쟁터로 보내면서도 슬픔의 흔적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손까지 흔들며 오로지 승리하고 돌아오라는 염원만이 가득할 뿐이다. 일본 국민들을 이토록 전쟁에 열광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격동하던 동아시아 속 일본의 선택―제국주의

 19세기 서양의 거대한 물결이 동아시아로 밀려왔다. 유럽을 넘어 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서양 제국의 움직임이었다. 일본은 동인도 함대의  매튜 페리 제독의 쇄국정칙 폐쇄 요구로 개국한 후, ‘메이지 유신’이라는 정치혁명을 계기로 근대 국민국가인 메이지체제를 탄생시켰다. 개국 이후 일본에는 요코하마 같은 개항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선진문물이 유입되었다. 그리고 이때 서양의 제국주의적 시각도 함께 전해졌다.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주인공이지 못했던 일본에게 ‘제국’은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왔음이 틀림없다. 더구나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판단 아래 일본은 여전히 은자의 나라를 고집하고 있던 조선과 중화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세상의 변화에 눈감은 중국과 달리 서양이라는 새로운 물결의 파도를 타고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꿈꾸며‘야만의 나라 조선과 중국’을 이끌고 동아시아에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왜 만화인가?

일본의 프로젝트는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작업이었기에 전 국민의 동의와 지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제국을 건설하는 데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작업은 개국과 함께 개항지를 중심으로 유입되어 이제 막 일본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사만화로써 이루어졌다.
만화는 문자로 된 글보다 더 빠르게 함축적으로 뜻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게다가 글을 읽지 못해도 얼마든지 뜻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화는 독자의 상상을 자극해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림 너머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독자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되살려 적극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 데 필요한 도구로써 이처럼 잘 어울리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일본은 이런 시사만화를 이용해 조선과 중국을 ‘야만’으로, 일본은 ‘문명’으로 형상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일본을 동아시아의 주변국들을 이끌고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사명을 띤 존재로 인식시켰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일본이 제국으로 가는 길에‘출진가’를 부르며 동참하게 되었다.

 

만화로 펼쳐지는 일본의 제국건설 프로젝트

이 책은 부녀학자 한상일ㆍ한정선이 『마루마루진문團團珍聞』, 『도쿄퍽東京パック』 등의 잡지와 일본의 각 신문에 실린 시사만화를 모아 엮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리한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그려진 만화를 소재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자칫 한쪽의 입장에서만 서술될 우려가 있었으나, 아버지 한상일의 정치학적인 시각과 딸 한정선의 역사학적인 시각이 고르게 반영되어 그런 오류를 줄였다. ‘조선병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한일합병이나 한일합방은 두 나라가 대등한 위치에서 이뤄진 일이어야만 쓸 수 있는 말인데, ‘병탄’은 다른 나라의 영토를 한데 아울러서 제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므로 여기서는 ‘조선병탄’이라는 용어가 옳다).
여기서는 일본의 눈으로 바라본 청일전쟁에서 조선병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만화를 통해 펼쳐진다. 일본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제국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 일본과 조선ㆍ청나라와의 관계 변화, 서양열강들 속에 편입하고자 열망하던 일본 그리고 과거에서 이어지는 오늘날 일본의 모습까지 그림을 통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닭 모가지를 비틀고, 돼지 멱따기

일본이 동아시아에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제의 ‘우리’를 오늘의 ‘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중요했다. 그래서 일본은 만화를 통해 조선과 청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본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조선을 닭으로 묘사해 허약하고 아둔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따라서 만화 속 조선은 늘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그려졌다(당연히 그들이 말한 ‘보호자’는 일본이다). 그리고 중국인의 변발을 돼지꼬리에 비유해서 중국을 돼지로 묘사함으로써 더럽고 게으르며 추악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아시아의 최대 문명국으로서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중국의 권위를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뜨린 것이다.

 

국민 총동원

본격적인 조선병탄에 앞서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렀다. 시사만화는 이러한 전쟁의 상황을 신속하게 일본 국민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단순히 사실만을 보도한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도망갈 준비만 하고 있는 청나라 군인의 비굴한 모습, 적국이 전쟁 보상금을 엎드려 일본에게 바치고 있는 모습, 전쟁에서 지고 난 후의 상황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러시아 황제의 모습 등 전승 의지를 드높이는 만화를 실어 일본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는 세계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의 모습을 여러 만화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국민들이 일본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이로써 일본은 프로젝트 마지막 단계인 조선병탄에 전 국민들을 동원할 수 있는 기틀을 모두 마련했다.

 

일본 천황제는 만들어진 전통

일본과 조선은 결국 1905년 폭력을 동원해서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하에 을사강제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일본은 고종황제를 강제로 양위시키고, 본격적인 조선병탄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의 저항이 있었는데, 시사만화는 이를 일본인을 태우고 달려오는 기차를 세우기 위해 조선인들이 맨몸으로 막는다든지, 일본 군함을 가라앉히기 위해 망치로 군함에 구멍을 뚫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조선의 저항쯤은 무시해도 좋을 만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풍자했다.
한편, 일본은 옛 전설 속의 인물인 임나일본부설의 주인공 진구황후와 일본이 신의 나라임을 주장하는 데 기원이 되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만화에 되살려 병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일본의 아주 오래된 전통으로 알고 있던 천황제 역시 이 당시에 의도적으로‘만들어진 전통’이라고 한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일본사회를 하나로 묶기 위한 조치로서 일본의 황실을 제도적으로 정비한 것인데,  이때 새롭게 만든 제도 중 하나가 천황의 생일을 기념하는‘천장절’이다. 일본의 국경일로 지정된 이 날을 조선에서도 기념했는데 이와 관련한 만화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력보다 여자를 더 좋아한 이토 히로부미

 이 책에서 밝힌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이토 히로부미’가 엄청난 호색꾼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그를 (우리에게는 국가적인 원수이기는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형쯤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실제로 이토는 그가 이룬 모든 업적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호색꾼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의 일본 시사만화가 그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보다는 여색과 관련한 만화를 더 많이 실어 그를 풍자했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죽는 순간까지도 그의 그림자가 女자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림을 그렸을까!
이 책에서는 이 밖에도 일본 밖에서 바라볼 때는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보여준다. 일본에서의 김옥균이나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 조선과 중국을 대할 때와는 너무도 달라지는 서양 열강을 대하는 일본의 자세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시사만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또한 외국잡지에 실린 만화를 일본에서 옮겨 실은 것이나 외국인이 일본에서 창간한 잡지에 실린 만화들도 소개했는데, 이로써 당시 일본과 그 주변정세를 바라보던 서양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되살아나고 있는 제국의 망령

한류 바람이 일본열도를 뒤덮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때 식민지였던 나라의 문화를 숭상하는 풍조가 그리 썩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혐한류이다. 한류를 반대하는 것도 모자라‘싫어한다(嫌)’는 것이다.
여전히 일본에서는‘독도망언’을 위시한 수없이 많은 망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일본 최고위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일부에서는 역사교과서를 왜곡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이런 흐름을 “제국의 망령이 여전히 일본사회에 떠돌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망가 겐칸류マンガ 嫌韓流』에 실린 몇 가지 만화를 소개했다. 이른바 ‘공적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일본이 자행한 전쟁을 ‘정의를 위한 숭고한 목적 아래 진행된 행위’라고 주장한 이런 만화를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저자의 말처럼 일본에 과거 제국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의 일본은 세계 만화시장을 주도하는 만화대국으로 성장했다. 더구나 시각매체는 TV나 인터넷으로까지 영역이 확산되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지고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1990년대의 경제ㆍ사회적 충격을 경험하며 일본은 새로운 국가진로를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들은 자학사관에서 탈피해서 과거를 더 ‘긍정적’으로 보는 역사관을 정립해 새로운 ‘국민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과거의 그때처럼 시각매체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만화책, 애니메이션, TV프로그램 등의 주요대상이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일본 청소년들이 일본이 말하는 ‘국민의 역사’를 계속해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책에 그에 대한 해답이 있다.
       

 

저자소개

한상일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일본정치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스탠퍼드대학교, 도쿄대학교, 도시샤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등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아시아 연대와 일본제국주의』, 『일본 지식인과 한국』, 『제국의 시선』 등의 저술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역사 읽기를 시도하며 끊임없이 연구활동에 매진하는 열정에 가득 찬 학자이다. 1982년에는 「일본제국주의의 한 연구」로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정선은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워싱턴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연구생활을 한 후, 고려대학교 아세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자유주의 지식인과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연구해 왔고, 현재는 일본의 시각문화ㆍ언론매체ㆍ소비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 근대성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의 집필은 각자의 전공분야가 다른 두 사람이 함께 한 작업이다 보니,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느라 어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부녀지간이라는 이점 덕에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고, 서로간에 충분한 협의가 가능했기에 더욱 알찬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차례

책머리에   
프롤로그  초대장 밑그림 그리기
제국건설 동참 초대장    
일본 만화저널리즘 형성기|일본 만화저널리즘 발달기|일본 만화저널리즘 번성기    
1. 조선의 문이 열리다
대륙과 섬 사이의 조선|개국과 조선의 위상|
소용돌이 속의 조선정치|청일전쟁 전야|맺음말
2. 미완의 제국건설
청일전쟁|적 만들기|전쟁지도 그리기|청일전쟁과 조선|맺음말    
3. 일본, 제국의 대열에 합류하다
러일전쟁|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조선|극동의 헌병 일본|러일전쟁과 일본사회|
러시아의 허상|오만한 제국|교차하는 열강의 시선|맺음말   
4. 숙원의 달성
조선병탄|을사강제조약과 대륙진출|조선병탄의 전주곡|깨어나는 조선|병탄의 순간|
조선 길들이기|맺음말   
5.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타케
제국건설의 두 주역|이토 히로부미|데라우치 마사타케    
에필로그  떠도는 제국의 망령
수록그림 목록|주석|참고문헌|책을 끝내면서|찾아보기  

 
 
 
 
    
 대한민국의 기원
 노년기 건강가이드: 노인질환의 진단과 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