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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등록일 2007.02.26 조회수 1381    
 
 

김형아 지음ㆍ신명주 옮김 |2005.10.25|신국판(152*224) | 416쪽 | 20,000원

 

유신과 중화학공업, 박정희 정책의 본질에 대한 객관적 탐구


박정희는 모든 반대파를 억압하고, 민주적이며 정의롭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체제에 대한 국민의 갈망을 억누른 잔인무도한 독재자였는가? 아니면 한국이 산업국가의 반열에 올라서게끔 민족감정에 고취된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이룩해낸 천재적인 지도자인가?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이처럼 한국현대사에서 박정희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지적 논쟁으로 발전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신과 증오심을 키우는 이분법적 논쟁으로 추락한 것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현재의 한국사회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와 타파하려는 진보 모두 박정희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렇게 찬양론과 비판론이 맞싸우다 보면 박정희의 공과 과를 서로 구분해야 하며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양비론, 양시론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역사의 수많은 인과관계를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저자 김형아는 이 책에서 박정희 찬양론자가 내세우는 공이 박정희 비판론자가 강조하는 과 없이 이루어지기 힘들었다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박정희 시대에 접근하고 기존의 이분법을 극복하려고 한다. 

김일성과 박정희의 지도이념인 ‘주체/자주’의 비교연구를 위해 한국에 들른 저자는 김일성에 대한 자료는 풍부한 반면 박정희에 대한 자료, 특히 1970년대의 자료는 전두환 정권 때 대부분 소각되어 거의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접했다. 이런 특이한 현실 앞에 학술적 호기심이 발동한 저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이념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였고, 결국 이 책  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에 이르게 되었다.
 박정희는 왜 중화학공업화를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는가? 그리고 왜 유신체제를 출범시켰는가? 저자는 국내외의 각종 저서와 보고서, 논문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미간행 문서, 박정희의 저작, 그리고 박정희의 정책과 관련된 인물 및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얻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매우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베트남에서 기존 방침을 고수하지 못했으며, 나아가 한국에 대한 확실한 방위 의지를 지속하지 못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박정희는 이로 인해 중화학공업 분야를 육성함으로써 한 단계 높은 산업혁명을 이루는 단호한 정책을 입안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는 경제 부문의 모든 권한을 자신을 필두로 김정렴과 오원철로 이루어진 3두체제에 집중시켰다. 이들은 경제 계획 전체를 만들고 통제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으며, 정당, 국회, 집권 이후 자신이 키우고 비호해온 기업인들은 물론 엄중한 방식과 전제적 억압에 저항하는 노동자, 학생, 지식인 들의 반대에 전혀 개의치 않고 정책을 추진했다. 여기에서 의미심장한 점은 박정희가 자신의 경제개발 계획을 주도할 인물로 경제기획원의 경제전문가가 아닌 엔지니어 출신의 테크노크라트 오원철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박정희는 미국식 경제원리에 반하는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이론가들보다 무언가를 성취해본 경험이 있고 자신의 계획을 성실히 실현할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박정희는 주한미군 철군과 방위비 분담 증가 요구, 중공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미국에 대항하여 경제개발 계획과 동시에 재래식 무기 생산을 위한 공개 프로그램과 핵무기와 미사일을 생산하기 위한 극비 계획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의 목표는 국가 재건과 방위였다. 일단 목표를 설정한 박정희는 그것을 이루겠다는 일념하에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온 국민을 가차 없이 밀어붙였다. 그리고 결국 자신도 그것으로 인하여 희생되었다.

유신을 경험하고,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있던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과거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오늘을 제대로 보고자 했다. 독자 역시 박정희에 대한 찬양론과 비판론, 양비론을 다같이 극복하면서 박정희와 그의 정책의 본질과 복잡성을 직조해낸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올바른 이해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책 속으로

 

이같이 엄연히 미국에 의존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식의 급속한 산업화가 가능했던 것은, 박정희와 그의 국가주도 엘리트들, 특히 상공부 테크노크라트들이 미국의 충고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한미간의 충돌을 야기할 만큼 독립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은 냉전에 따른 미국의 안보 정책 및 동북아시아와의 재정적 연계와 관련된 유리한 국제 경제 상황 속에서 상당한 이득을 거두었다. 한국 수출품에 대한 미국 시장의 지속적인 개방과 박정희의 경제적 보호주의에 대해 미국이 보여준 관용은 박정희가 이용한 많은 이점 중의 하나였다(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1980년대에 종결되었으며, 1997년의 경제 위기는 이러한 상황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실례이다). 한국을 경제적 독립과 정치적 자립의 길로 이끈 것은 박정희와 개발주의적 엘리트들이었다. 물론 박정희나 그 후의 어느 대통령도 이 두 가지 작업을 완벽하게 이루지는 못했다.
(pp.29∼30)

박정희의 경우를 보면, 개발 목표와 박정희 자신이 스스로의 정치적 지도력과 행정 전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박정희는 관료적 자율성이 국가 재건을 달성하고 자신의 정치 지도력을 강화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관료적 자율성이 상호적 의무라는 틀 위에서 훈련된 관료제를 확립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국가 수반이자 국가 상징으로서의 박정희는 관료들의 절대적 충성과 생산성에 대한 대가로 관료적 자율성을 허락하고 보장했던 것이다.
(p.132)

유신 체제는 본질적으로 정부 기구를 전시와 유사한 상태로 바꾸고자 하는 박정희의 메커니즘이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대미 의존도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최대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의심할 여지 없이 담대한 목적 뒤에는 박정희와 그의 고문들의 방위산업과 관련된 중화학공업화에 대한 야심찬 계획이 숨어 있었다.
(p.239)

중화학공업화 3두정치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데, 이 3두정치가 ‘대통령 지시’를 중화학공업 정책을 시행하는 주요 방식으로 제도화시켰고, 또 이것이 재벌을 한국 산업의 기둥으로 동원해 사실상 대한민국주식회사를 창설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화학공업 3두정치는 사하시 시게루(佐橋滋)와 그의 팀이 ‘행정 지도’의 제도화를 통해 일본의 테크노크라시 선두에 섰던 것처럼(Johnson 1982 : 242∼274) 열렬하게 민족주의적인 ‘한국식’ 테크노크라시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 지시’가 독특한 것은, 이 대통령 지시에 의해서 중화학공업 3두정치는 유신헌법이 박정희에게 부여한 것만큼이나 독재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원철에 의하면 이러한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은 그가 박정희에게 중화학공업 정책을 유신 개혁하에서 최우선 정책으로 선언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중화학공업화 3두정치의 권한은 유신 체제의 흥망과 그 궤를 같이했다. 즉 한편으로는 보기 드문 고도의 경제 성장을 기록한 ‘한국형 모델’의 공업화를 설계해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엄격한 방식 때문에 지지를 잃었다.
(p.284)

왜 박정희는 자신의 극비 핵무기 전략을 시행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했을까? 부분적으로 박정희가 대미관계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때 미국은 한국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 고려할 것은 박정희는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으로 동시에 예리하고 고도로 계산적인 정신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경지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pp.339∼340)

요약하자면 박정희 시대의 급속한 한국형 공업화 모델은 상공부 테크노크라트들이 주도한 개발 엘리트에 의해 계획되고 시행된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가 정치적 이익을 얻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종신은 아닐지라도 장기적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박정희는 그보다 더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 즉 공업화된 근대 한국을 이루고자 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자신의 개인적 야망과 국가의 이익이 합해진 이 목표가 오직 유신 체제, 혹은 ‘한국식’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
(pp.339∼340)

 
지은이ㆍ옮긴이 소개

 

지은이  김형아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 아시아-태평양학 대학원 정치ㆍ사회변동학과 교수.
논문으로 “Minjung Socio-Economic Response to State-Led Industrialization(정부주도 산업화에 대한 사회적ㆍ경제적 반응)”, “The Eve of Park's Military Coup: the National Reconstruction Debate(박정희의 군사혁명 전야 : 국가재건에 관한 담론)”, “Political Satire in Yangju Pyolsandae Mask Drama(양주별산대 탈춤의 정치적 풍자)”, “the New Rich and the New Middle Class in South Korea(남한의 신흥부자와 중간계급, James Cotton 공저)” 외 다수가 있다.
(
http://rspas.anu.edu.au/people/personal/kimh_psc.php)

 

옮긴이  신명주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석사과정 졸업.
육군사관학교 강사(1999),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사(200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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