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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당 신라인사회 연구
등록일 2007.02.26 조회수 1761    
 
 

권덕영 지음|2005.4.27|신국판 양장| 352쪽|20,000원

 

재당 신라인,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바다를 무대로 한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한창 조명을 받고 있다. 대중을 자극하는 통속적인 허구를 곁들인 사극(史劇)에서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력과 그들을 낳은 시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들 중의 하나가 바로 ‘해신(海神)’이라 불리는 장보고이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권덕영 교수가 쓴 『재당 신라인사회 연구』는 장보고가 대표라 할 수 있는 ‘재당 신라인’과 그들이 일군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이다.
‘재당 신라인’이나 ‘재당 신라인사회’라는 말은 그리 낯익은 것이 아니다. 우선 이 책 『재당 신라인사회 연구』가 어떤 사람을 재당 신라인이라 하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대의 법제적 관점에서 재당 신라인을 규정하면, 신라 출신으로서 당나라에 건너가 영주 혹은 그에 준할 정도의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그곳에 정착하여 생업에 종사하며 살던 본인과 직계비속에 대한 총칭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신라 출신’이라 함은 원 신라인뿐만 아니라 백제ㆍ고구려 멸망 이후 당에 건너간 한반도 출신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고, ‘영주’라 함은 당으로부터 정착ㆍ거주를 허락받고 장기간 당에 거주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생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당에 생활 근거를 두고 일정한 직업에 종사한다는 의미이며, 직계비속이라 함은 이주 당사자의 후손들을 말한다.”
재당 신라인과 재당 신라인사회에 대한 종래의 연구들은 재당 신라인과 재당 신라인사회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사실(史實)을 애매모호하게 전하거나 명백한 오류를 사실(事實)로 전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권덕영 교수는 중국의 각종 전적과 지방지, 일본의 사서 등을 샅샅이 조사하여 재당 신라인 관련 자료를 찾아내고, 그동안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통용되어왔던 잘못된 견해들을 바로잡았다. 또한 엄정한 사료 고증을 통해 중ㆍ일관계사의 일부로 기록되어 왔던 재당 신라인들이 고대 동아시아사의 전개와 발전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밝혀 그들의 역사적 지위를 복권시켰다.


이 책의 내용


저자 권덕영 교수는 재당 신라인과 그들이 형성했던 사회가 한국의 해외진출사나 해외이주사, 재외 한국인, 한ㆍ중관계사, 고대 동아시아 무역사에 대한 연구에서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임을 역설한다.
제1장에서는 1세기 남짓한 재당 신라인사회에 대한 연구 현황과 성과를 소개하고 지금까지의 연구가 간과하고 있거나 오류임이 명백한데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들을 바로잡고,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제시한다.
제2장 「재당 신라인사회의 형성과 운영」에서는 당나라에 신라인사회가 형성될 수 있었던 당대(當代)의 국제정세를 살펴보고, 재당 신라인들의 사회적 위치 등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고 재당 신라인들이 신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한 구심점 역할을 했던 적산 법화원의 창건에서부터 당 무종의 폐불정책으로 훼철되기까지의 추이를 살피고, 법화원의 훼철과 함께 재당 신라인사회의 운명 역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음을 밝힌다.
제3장 「동아시아 속의 재당 신라인」에서는 당대(當代) 국제무역에서 차지하고 있던 재당 신라인들의 비중을 사료를 통해 하나하나 밝혀낸다. 그리고 일본 천태종과 밀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엔친(圓珍)의 입당 구법 여정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재당 신라인들의 활약상을 통해 그들이 당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형성과 문물 교류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살펴본다.
제4장 「재당 신라인의 해상무역 활동」에서는 재당 신라인의 해상무역 활동이 9세기의 전통적인 공무역체제 붕괴와 함께 시작된 새로운 동아시아 교역권의 형성과 경제 교류의 활성화와 맞물려 있음을 밝히고, 일본으로 건너가 무역활동을 한 재당 신라인들의 행적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밝힌다. 그리고 일본 문헌들에 재당 신라인의 국적이 당이라 기술되어 있는 것이나 당시 일본 지배층들이 신라를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번국(蕃國)으로 여긴 것 같은 사례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문젯거리가 되고 있는 일본의 대외인식이 허구에 기반한 것임을 밝힌다.
제5장 「장보고와 재당 신라인」에서는 재당 신라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장보고가 청해진(지금의 완도)을 근거지로 삼아 상업제국을 건설한 과정과 당시 사회문제 중의 하나였던 해적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장보고에 의해 소탕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살핀다.
제6장에서는 재당 신라인들의 활약이 동아시아 삼국의 교류를 활성화시킨 점을 들어 재당 신라인과 그 사회가 고대 동아시아사의 전개와 발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결론을 내린다.


저자 소개


권덕영權悳永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를 역임했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古代韓中外交史―遣唐使硏究』(일조각, 1997), 『韓國古代 金石文綜合索引』(학연문화사, 2002), 『고대로부터의 통신』(공저, 푸른역사, 2004) 등이 있다.

 

 

책 속으로


필자가 재당 신라인과 그 사회에 관심을 가진 지는 십수 년이 넘는다. 한국 고대사에 있어서 황해는 정치ㆍ경제ㆍ문화ㆍ외교ㆍ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황해의 역사성에 대하여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필자는 일찍이 이 점에 착안하여 황해를 매개로 한ㆍ중 간을 왕래한 견당사遣唐使의 활동과 역할을 고찰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황해를 건너 당에 이주하였고 또 황해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던 재당 신라인과 그 사회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장차 이 문제를 견당사 연구의 후속 과제로 삼아야겠다고 내심 작정하였다.
―「머리말」 중에서

당나라에 들어간 신라인은 다양한 계층이 망라되었다. 나당 간 외교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견당사절단, 유학생과 구법승, 각종 상인, 국내에서의 경제적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 경제적 난민, 정치적 압박을 피하여 도망한 망명객 그리고 해적들에게 불법적으로 붙잡혀 간 신라 양민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견당사절단과 유학생 및 구법승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경제적 난민과 정치적 망명객 그리고 강제로 붙잡혀 간 양민과 상인들 가운데 일부는 당에 정착하였다. 이들이 바로 재당 신라인사회를 형성한 주요 구성원이었다.
―54쪽

재당 신라인으로서 십수 년 동안 당에서 살았던 장보고는 9세기 전반 청해진을 거점으로 당과 일본을 넘나들며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석권하고, 막대한 부와 권력을 장악하여 이른바 ‘상업제국商業帝國’ 혹은 ‘해상왕국海上王國’을 건설했던 신라의 대표적인 국제무역업자이자 해상 군진軍鎭 세력가였다. 비록 그가 이룩한 상업제국은 신라 왕실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십수 년 만에 종언을 고하고 말았지만, 그의 해양경영 모델이랄까 방식은 그 이후에 전개된 신라와 고려의 대외 민간무역에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의 국제무역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239∼240쪽

당나라 황해 연안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던 재당 신라인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동아시아 역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그들의 해상무역 활동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를 초래하였고, 신라와 당 그리고 일본의 문화 교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런 점에서 재당 신라인과 그 사회는 고대 동아시아사의 전개ㆍ반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존재였다고 하겠다.
―317∼318쪽

    
 韓國史散稿
 고려의 과거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