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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모더니즘-식민지 도시 경성과 박태원 문학-
권은 |
가격: 30,000원
쪽수: 340
발행년/월/일: 2018.04.20
크기: 152*224
ISBN: 978-89-337-0742-5 (93810)
머리말

제1장 경성 모더니즘론
1. 경성과 모더니즘의 이율배반
2. 제국 공간과 식민지 소설의 지형도
3. 식민지 근대화와 경성 모더니즘

제2장 경성의 도시구역 분화와 소설의 재현양상
1. 일상공간(북촌)과 리얼리즘: 『천변풍경』
2. 공적 공간(서촌)과 알레고리: 「윤초시의 상경」, 「애욕」
1) 사라진 공간지표와 방향 상실: 「윤초시의 상경」
― ‘서대문정2정목 34번지’
2) 대한제국의 흔적과 공간 선택의 문제: 「애욕」
― ‘인사동 119번지’
3. 이역공간(남촌)과 불완전한 재현: 『금은탑』
4. 배후공간(용산)과 우회적 서술: 「피로」, 「길은 어둡고」

제3장 식민지 도시의 산책자와 정치적 무의식
1. 식민지 산책자의 아나키즘적 욕망: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 서대문형무소 에두르기: 『낙조』, 「최노인전 초록」
3. 밤의 산책자와 억압된 꿈의 기억: 『적멸』
4. 경성의 배후와 통속 연애소설의 이면: 『청춘송』

제4장 대경성 확장과 소설적 대응
1. 공간재편과 미완의 기획: 『애경』
2. 식민자본과 악순환의 서사: 『사계와 남매』

제5장 세계문학 속 경성 모더니즘의 의의와 과제

보론 경성의 모더니스트, 박태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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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모더니즘’은 식민지 도시 경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을 말한다. 서울은 한양, 한성, 경성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면서, 조선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책은 식민지 시기 경성을 배경으로 모더니즘 작품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무엇이고, 이러한 작품들이 다른 나라의 모더니즘 문학과는 어떠한 점에서 차별화되는지 등을 박태원 문학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식민지 도시 경성과 모더니즘
모더니즘은 20세기 서구의 선진국들에서 주도한 문학 양식으로, 자본주의의 발달과 대도시의 형성, 물질적 풍요로움 등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1930~1940년대의 경성은 파리, 런던, 뉴욕 등의 서구 대도시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의 ‘경성’과 서구의 ‘모더니즘’은 쉽게 결합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이 둘이 결합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만날 수 있었던 특별한 역사적 계기, 즉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예술적 형식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은, 서구 주요 도시들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물질적 토대에 기반을 두고 발생한 서구 모더니즘 문학과는 다른, 조선의 특수성이 드러나는 경성 모더니즘 특유의 문학적 성격이다. 서구 모더니즘 문학이 자본주의의 발달과 근대 도시의 형성 등 물질적 토대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경성 모더니즘은 ‘식민 지배’, ‘불균등 발전’과 ‘이중도시화’, ‘서구적 형식과 조선적 내용 간의 간극’, 그리고 ‘문명화된 국가로부터의 직간접적인 체험’ 등에서 파생된 특수한 성격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경성 모더니즘은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식민치하의 상황에서 꽃피운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을 경성의 도시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살피려는 시도이다. 이 책에서는 경성이라는 근대적 식민지 도시가 형성 및 발전하면서 문학 텍스트를 형성하는 데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했는지에 대해 탐색한다. 소설 속 장소는 이야기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특정한 장소가 있기에 거기에 적합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성은 우리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 공간이었을까. 북촌, 남촌, 서촌 등은 각각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을까.


경성의 모더니스트, 박태원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작가는 ‘구보 박태원’이다. 경성 모더니즘은 경성이라는 도시 공간을 구역별, 시기별로 구분하여 문학작품들과의 관련 양상을 살피려는 시도이다. 경성의 구역적인 분화와 시기적인 변화가 문학 텍스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문학 텍스트가 일종의 ‘상수(常數)’로 기능해야 하고, 따라서 한 명의 작가의 문학 세계를 대상으로 하여 경성의 구역별, 시기별 변화를 탐색해야 도시 공간과 문학 텍스트 간의 관련성을 충분히 고찰할 수 있다.
박태원은 그 누구보다도 경성의 도시 공간을 정밀하게 재현해 낸 소설가이다. 그는 ‘천재 시인’ 이상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로 알려져 있다. 박태원 소설의 대부분은 ‘경성’을 무대로 한다. 그의 소설에서 경성의 도시 공간은 단순한 서사의 배경이 아닌 작품의 중요한 주제적 역할을 한다. 박태원의 작품들은 철저하게 실재하는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경성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이는 박태원이 ‘고현학(考現學)적 방법론’에 입각해서 창작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작품에는 당시 경성의 주요 장소인 경성형무소, 조선총독부, 덕수궁, 경성지방법원, 경성방송국, 경성역, 한강철교, 남대문 등이 두루 재현되며, 대부분의 경우 현실 세계에서 대응하는 장소를 찾을 수 있다. 경성의 풍경에 대한 정밀한 재현은 박태원 모더니즘 문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태원의 ‘경성’은 구역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이는 경성의 도시구역이 변화하면서 각각의 구역만의 특성이 강화되며 나타난 현상이다.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북촌’에 대해서는 리얼리즘적 성격이 두드러지며, 궁궐과 형무소 등이 위치하던 ‘서촌’ 일대에는 역사적 알레고리의 특성이 나타났으며,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남촌’은 충분히 재현될 수 없었다. 일본 군부대와 사창가가 위치하던 ‘용산’ 일대와 관련해서는 군국주의적 분위기가 암시적으로 제시되었다.


경성의 도시 구역과 박태원 문학
이 책에서는 경성을 여섯 개의 구역으로 세분하여 분석한다. 첫 번째는 조선인들의 ‘일상 공간’인 북촌의 중앙부 지역이다. 이 지역은 경성의 오랜 중심지로, 조선인 서민층이 주로 모여 살던 곳이다. 자연스럽게 이곳은 근대소설에서도 중심지의 역할을 맡았다. 중심인물들은 대부분 종로 일대에서 거주하며, 경성역에서 동대문 사이의 종로 거리를 활보하고, 화신상회나 탑골공원 등에 들르기도 했다. 조선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에 일본인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박태원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이 이곳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다.
두 번째는 북촌의 동북부 지역으로, 도시 확장 이후 새롭게 경성의 일부로 편입된 지역이다. 동소문 밖의 성북동과 돈암동 일대에는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의 ‘문화주택’ 단지가 조성되었다. 중앙부가 조선인들의 공간이었다면, 동북부 지역은 조선과 일본의 생활양식이 절충된 형태가 나타난 공간이었다. 중심부와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고 도로망과 대중교통 등의 기반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을 다룬 작품들은 공간적 이동이 빈번하게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박태원의 1940년대 초반 작품들은 대부분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며 식민지 현실과의 ‘타협’을 주로 다룬다.
세 번째는 ‘공적 공간’인 서촌의 서남부 지역이다. 이 지역은 정동, 덕수궁, 남대문 등 ‘대한제국’과 관련된 전통 건물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덕수궁은 고종 황제가 머물던 곳으로, 대한제국의 좌절된 꿈을 환기하는 곳이었다. 각국의 대사관들이 모여 있고 근대적인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산책하기에 적합한 공간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동시대의 역사적 맥락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박태원의 작품으로는 「애욕」, 「윤초시의 상경」 등이 있다.
네 번째는 서촌의 서부 지역으로, 독립문 근처의 빈민 지역이다. 대부분의 주택이 초가집이었을 정도로 전근대적인 면모가 많이 남아 있던 지역으로, 이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상당히 어둡다. 서대문형무소, 화장장, 도살장 등이 몰려 있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기도 했다. 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는 중심인물과 주변 환경 간의 ‘거리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결혼 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박태원은 1937년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이 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다섯 번째는 조선의 내부에 위치하지만 정작 조선인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이역 공간’으로서의 남촌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일본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밀집한 곳이다. 미츠코시 백화점 등 화려한 근대적 문물이 들어선 곳이기에 조선인들도 자주 이곳으로 산책을 나왔다. 본정과 황금정 등의 상업지구는 전차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지역을 대상으로 한 박태원의 작품들로는 『청춘송』, 『금은탑』 등이 있다.
여섯 번째인 용산 지역은 용산역, 일본군 주둔지, 한강철교 등이 있던 곳이다. ‘남촌 지역’ 못지않게 일본 색채가 강한 지역이었기에, 조선인 작가들의 작품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주된 배경으로 설정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일부 작품에서는 일본 군부대와 유곽 지대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나타나기도 하며, 사람들이 자살하기 위해 ‘한강철교’를 찾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박태원 작품 중 「피로」, 「길은 어둡고」 등이 용산을 배경으로 한다.
박태원의 작품은 이 여섯 개의 구역과 맞물려 펼쳐지지만 반드시 한 장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일부 작품은 등장인물과 플롯 전개의 특성에 따라 두 개 이상의 구역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며 복수의 인물이 각각 특정 구역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실제 공간의 특성으로 인한 제약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성 밖의 구역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성 안의 구역을 경유해야만 한다. 또한 조선인의 일상생활은 ‘북촌’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소설은 이 지역에서 시작된다. 또한 경제적으로 궁핍한 서부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일본인 및 부유층이 몰린 ‘남촌’이나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진 ‘동북부 지역’으로는 좀처럼 향하지 않는다.
박태원은 ‘경성’의 구석구석을 균형 있게 그리고 정밀하게 재현해 냈다. 그의 작품은 경성이라는 도시 공간 안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일종의 ‘도시소설’로, 그는 경성의 다양한 면모를 소설에 담고자 했다. 박태원은 소설을 통해 경성의 온전한 지도를 그려 내고자 한 작가다.

책 속으로

소설의 ‘배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대부분의 소설은 실제 세계의 특정 공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소설은 실제 공간의 지리적 혹은 지정학적 특성에 의해 제약받는다. 특정 공간은 고유한 이야기 형식을 발생시키고, 소설의 특정 스타일과 플롯은 특정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 또한 지명(地名)은 소설 속 허구 공간(fictional space)과 그 물질적 토대인 실제 공간(real space)을 끊임없이 연결 지으며 텍스트를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16쪽-

식민지 조선에서는 소설이 펼쳐지는 지평과 국민국가의 ‘상상적 공동체’는 일치하지 않으며, 피식민 조선인들에게 ‘상상적 공동체’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식민지 조선이 고유한 영토를 상실하고 제국 일본의 일부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제국의 일부 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지만, 대다수의 조선인은 한민족으로만 구성된 비공식적인 ‘상상적 공동체’를 그렸다. 제국 일본이 제국 전역을 아우르는 ‘상상적 공동체’를 형성하려 했다면,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은 그러한 기획에 균열을 일으켜 조선을 분리해 내려는 상상적 투쟁을 전개했다. ‘상상적 공동체’의 재현을 둘러싼 이러한 투쟁은, 일본인과 조선인이 공간적으로 대립하는 식민지 도시 경성에서 가장 첨예하게 전개되었다. 경성은 제국과 식민지의 위계 구도가 ‘이중도시’의 형태로 내재화되었다는 점에서 ‘제국의 축도’라 할 수 있다.      -36쪽-

지오-모더니즘(geomodernisms) 논의는 지리적 특수성에 기초하여 각 나라별 모더니즘 문학의 특성을 살피고 그러한 개별적 모더니즘들의 가족 유사성의 관계를 토대로 거대한 집합적 개념의 ‘모더니즘’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지오-모더니즘은 20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모더니즘 문학을 아우르면서도 그 지역적 특수성을 입체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개념이다. 이는 모더니즘 문학 작품을 공간화하여 각각의 지역적 전통과 근대성의 상호 작용 속에서 경계, 접촉 지대, 연결 등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47~48쪽-

『천변풍경』은 순환적 인물체제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여기서의 순환적 인물체제는 비위계적이고 끊임없이 자리바꿈을 한다는 점에서 연쇄성(seriality)의 특성을 보여 준다. 『천변풍경』에서는 어떠한 인물에게도 주인공이라는 특권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은 차례로 중심이 될 수 있다. 특정한 주인공이 없기 때문에 작품은 비위계적이며 서사는 집단적 주체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84쪽-

공적 공간(‘서촌’)을 배경으로 한 박태원의 작품들은 알레고리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식민지 시대에 조선 작가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의도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억압적 상황에서 창작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숨겨진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정치적 혹은 민족적 알레고리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알레고리는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등장하곤 한다. 한 작품을 알레고리로 읽어 내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사건 등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박태원의 작품들도 일종의 유희적 텍스트로 간주될 수 있다.      -88쪽 -

박태원의 작품들에서 경성은 과도할 정도로 세부적으로 묘사되지만, 특정 공간에 관해서는 충분하게 재현되지 않거나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경성 내 일본인 집단 거주지역인 ‘남촌’과 일본군 주둔지역인 ‘용산’ 등이 불완전하게 재현되는 대표적 공간이다. 모더니즘 문학에서 형식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내용 측면에서 정치적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거대한 제국 체계의 재현 불가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존의 리얼리즘적 형식으로는 제국을 총체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이러한 국민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재현 불가능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모더니즘 문학의 독특한 기법과 스타일이다. ‘의식의 흐름’과 ‘콜라주’ 등 모더니즘 기법은 리얼리즘 문학의 기존 방식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대상들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      -120쪽-

한국 근대 소설에서는 ‘용산’ 일대 및 일본 군인들의 모습은 거의 재현되지 않았다. ‘용산’이 언급되는 것은, 사람들이 기차나 전차를 타고 ‘용산역’을 거쳐 갈 때나 ‘용산 철도병원’에 들를 때 정도뿐이다. 그렇지만 같은 시기 재조선 일본인 작가의 작품에는 이 지역 병사들의 훈련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한 용산 지역에는 군부대 말고도 ‘미생정’ 등의 유곽 지대가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박태원은 용산 일대를 배경으로 한 「피로」와 「길은 어둡고」 등의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작품들은 길이가 짧고 추상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서사적 틈도 있기 때문에 서사적 맥락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렇듯 당시 용산 일대를 조선인 작가가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139~140쪽-

서구 메트로폴리스의 산책자와 달리 ‘식민지 도시의 산책자’는 식민지 도시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재현하지 못한다. 파농이 주장했듯, 식민지 도시는 두 개의 구역이 확연하게 분리된 이중도시(dual city)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도시에 대한 문학 텍스트에서 일부 지역은 극사실주의적으로 세밀하게 묘사되는 반면 특정 지역은 지워지거나 텅 빈 영역으로 나타나게 된다.      -161쪽-

경성 모더니즘은 식민지배의 경험 속에서 발생한 한국의 문학적 혁신과 독특한 기법 등을 경성이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시공간적 맥락과 20세기의 범세계적인 모더니즘 운동의 맥락 속에서 살피려는 시도이다. 이 책에서는 박태원의 작품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지만, 이상, 이태준, 이효석, 채만식, 김남천, 김유정 등 동시대 다양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특정 작가군을 명확하게 상정하지 않는 이유는 모더니즘이 언제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모더니즘과 별다른 상관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작가도 언제든지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재해석될 여지가 있다. 경성 모더니즘은 식민지 조선에서 제한적이나마 근대화의 혜택을 받은 공간인 ‘경성’이 역사적으로 존재한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을 대상으로 하며, 그곳을 중심으로 활동한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300쪽-

이 책에서는 경성을 공간적으로는 북촌, 서촌, 남촌 (및 용산) 등의 구역으로 구분하여 살폈으며, 시간적으로는 1936년을 기준점으로 경성과 대경성을 구분하여 논의했다. 경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식민지배자인 일본인들과 피식민지인인 조선인들이 각각 남촌과 북촌을 거점으로 자신들의 구역을 이룬 ‘이중도시’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중도시적 특성은 1936년 대경성 확장 이후에는 다소 약화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경성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였다. 이러한 특성은 도시구역의 재현 양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박태원의 문학작품들은 경성의 도시구역에 따라 재현 양상이 변화하는 특성을 잘 보여 준다.   -302~30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