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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 근대한일관계
나가타 아키후미 | 김혜정 |
가격: 16,000원
쪽수: 288
발행년/월/일: 2017.03.20
크기: 신국판
ISBN: 978-89-337-0729-6 03910
서문  

들어가며    
고대~7세기 조선과 일본 / 원과 고려·일본 / 조선왕조의 건국과 조일관계

제1장  조선의 개국과 당시 국제정세
1.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붕괴와 조선  
 왜란과 통신사/ 쇄국과 개국 
2. 일본의 도막·메이지 유신과 조선 
 메이지 유신과 ‘정한’의 주장 
3. ‘정한론’의 대두와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정한론’과 그 배경 /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4. 조선 문제의 ‘국제화’    
 수교 후 조선과 일본 / ‘음모의 바다’로 
5. 조선을 둘러싼 청일대립 및 청의 우위와 조선  
 민중의 곤궁과 임오군란 / 갑신정변 / 조선에서 청의 우위 확립과 일본의 대응

제2장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과 조선(한국) 
1. 청일전쟁과 조선    
 갑오농민전쟁 / 청일전쟁의 개전 
2. 청일전쟁 이후 조선(한국)에서 러시아의 우위    
 명성황후 시해 / 러시아의 우위 / 대한제국의 탄생과 독립협회 / 독립협회의 해산 
3. 영일동맹 및 러일교섭과 한국 문제   
 청에 대한 열강의 이권 침탈 / 러일전쟁 전야 
4. 러일전쟁과 한국 문제    
 한일의정서 및 제1차 한일협약의 체결 / 일본의 독도 편입

제3장  한국에서 일본의 지배권 확립과 열강 
1. 일본의 한국 보호국화와 국제관계     
 러일강화조약과 ‘가쓰라-태프트 협정’ / 고종의 외교활동 /
 친일단체 일진회의 등장과 을사보호조약
2. 한국 내 ‘통감정치’의 전개와 열강  
 제3차 한일협약의 체결 / 항일운동의 전개 
3. 일본의 한국병합과 국제관계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 일본의 한국병합

제4장  일본의 조선통치 시작과 국제관계
1. 일본의 조선 ‘무단통치’의 시작과 국제관계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토지조사사업 / 105인 사건의 발생 /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전개 
2. 국제정세의 변동과 3·1운동  
 제1차 세계대전과 파리강화회의 / 3·1독립운동 
3. 3·1운동의 전개 및 진압과 국제관계   
 3·1운동의 전개 / 재외 조선인의 활동 / 3·1운동의 진압과 ‘무단통치’의 종언
4. 일본의 조선‘문화정치’의 전개와 조선독립운동의 지속  
 새로운 통치정책―‘문화정치’ / 끊임없이 계속되는 독립운동 
5. 워싱턴회의 및 ‘극동노동자대회’와 조선 문제     
 미국의원단의 조선 방문 / 하딩 정권 발족과 조선 문제 / 워싱턴회의와 ‘극동노동자대회’
6.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관동대지진의 발생 / 대지진 당시 조선인 살해 
7.‘문화정치’기 조선과 일본의 대응  
 조선독립운동의 분화 /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회유 / IPR 참가문제

제5장  긴박한 국제정세와 조선의 ‘대륙병참기지’화
1. 만보산 사건 및 만주사변과 조선 문제  
 만보산 사건 / 만주사변과 ‘만주국’의 건국 
2. 조선의 ‘대륙병참기지’화와 국제관계     
 1930년대의 상황 / 베를린 올림픽과 ‘일장기 말소 사건’ /
 운산금광 경영·채굴권 회수활동 / 재소 조선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3. 중일전쟁의 개시와 조선 문제     
 중일전쟁과 조선인 병사 / 조선인 노동력 동원 /
 전선의 확대 및 장기화와 ‘종군위안부’ /광산권익의 매수 

제6장  일본의 조선통치 종언과 조선의 남북분단 
1. 일본의 조선 ‘황민화정책’과 국제관계     
 신사참배 / 철저한 일본어 교육 / 창씨개명 / 일본과의 결전 
2.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조선  
 태평양전쟁으로 가는 길 /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조선  
3. 태평양전쟁의 전개와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  
 추축국과 연합국 / 카이로 회담과 테헤란 회담 
4. 일본의 패전 및 조선통치의 종언과 조선 문제     
 얄타 회담 / 유럽전선의 종결 / 원폭투하와 소련의 참전 /
‘38도선’의 탄생 / 포츠담 선언의 수락 /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발족 /
‘조선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 재일 한국·조선인의 그 후

나가며  
 에도시기에서 메이지시기까지의 조선과 일본 / 일본의 조선통치와 그 구조 /
 일본 패전 후 조선 분할점령과 통치 / 미국의 조선(한국)정책(19세기~1945년) /
‘38도선’이 결정된 경위 / 러시아·소련의 조선(한국)정책 / 중국의 조선(한국)정책 /
 조선의 움직임과 그 배경 / 조선독립운동과 민족주의 / 독립운동의 분열과 한반도의 미래

옮긴이 후기  
미주  
도판출전 일람  
주요참고·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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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이웃, 한국과 일본
 언제나 세상은 복잡하다. 각국의 수뇌부들은 자국의 이익과 권력의 향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국민들 또한 자의로든 타의로든 동참하고 있다.
 지리상으로 가까운 나라들이 늘 그렇듯이 한국과 일본도 아주 오래전부터 교류가 있어왔고 현재도 교류가 제일 활발한 이웃나라이다. 하지만 서로 간의 앙금이 다 풀리기도 전에 두 나라를 멀어지게 만드는 사건은 자주 터진다. 일본 내 혐한시위를 비롯하여 최근의 한일위안부협상에 이르기까지 그 이슈는 일일이 손꼽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서로를 불편하게끔 하는 대부분의 사안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통치했던 근대 시기에 벌어졌던 일과 관련이 있다.
 이쯤해서 우리는 자문자답을 해 보아야 한다. 여전히 깊은 한국과 일본 간의 감정의 골을 만든 결정적인 시기였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당시, 일본은 모든 정치적·경제적 결정을 혼자서 다 내렸던 것일까? 한국은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두 나라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주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변화하는 시대 속 각기 다른 생존방식
 19세기는 변혁의 시대였다.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제국열강들이 득세를 위한 발판을 닦기 시작했다. 20세기는 가파른 성장과 더 가파른 추락이 공존한 시대였다. 경제적 성장도 잠시 대공황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으며, 이권침탈을 위한 열강들의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그 영향을 그대로 받은 식민지 지역은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열강의 일원이 되기 전, 일본 또한 조선처럼 미국이라는 외부세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개항을 ‘당했다’. 다만 일본은 보통의 경우와는 달리 열강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하면서 조선을 비롯한 오키나와, 대만 등의 새로운 피지배자를 낳는 것을 자신들의 생존방식으로 삼았다. 그들은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을 통해 영토 확대를 꿈꾸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국이나 이탈리아, 독일과 같은 국가를 상대로는 기민하게 행동하며 외교를 했다.
 조선 역시 일본의 식민 지배에 그대로 굴복하지 않고 대신 다양한 움직임을 보였다. 사리사욕을 탐해서 바로 친일파가 된 이들도 있었으나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도 있었다. 개인의 처지가 워낙 달랐던지라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중 자연스럽게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생겨났고, 이렇게 연이 닿은 국가들은 굳이 일본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조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때때로 개인적인 관심 이외에도 일본과의 관계유지를 위해서 조선을 신경 쓰는 국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결국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결국 그들의 행동과 결정은 당시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계로 직접 얽힌 일본과 한국에 큰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모여 만들어낸 ‘근대한일관계’
 많은 한국 사람들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1945년에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왜 조선이 스스로에게 불리한 조약을 맺어야 했는지, 왜 러일전쟁처럼 본토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왜 광복이 되고 나서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세계사 속 근대한일관계』(나가타 아키후미, 일조각, 2017)는 의외로 한국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개항부터 광복까지의 역사를 다층적으로 다룬다. 본서는 근세 시기 한국이 아직 조선이던 시절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와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과 인물들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 그대로 흘러가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지금’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 주목한다. 이토록 복합적인 관계를 고찰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역사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일본과 한반도 사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 속으로
1875년 12월 9일에는 데라시마와 주일 미국공사 존 빙햄John Bingham이 회담을 가졌는데, 이때 빙햄은 이십몇 년 전 페리함대가 일본에 왔을 당시 페리가 직접 기록한 교섭 내용인 『일본원정기日本遠征記』를 데라시마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은 일찍이 페리가 일본에 강요했던 것을 이번에는 상대를 바꿔 일본이 조선 측에 강요하는 것이 ‘수순’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40~41쪽, 제1장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미국의 정책에 대해 일본과 제1회 러일협약으로 북만주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러시아 역시 위기감을 갖게 되었고, 러시아와 일본은 더욱 협력함으로써 그에 대처하려 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병합을 서둘렀다. 왜냐하면 미국이 일찍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승인해주기는 하였으나, 만주에 대한 태프트 정권의 ‘달러외교’ 여파가 한국에 미치게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108쪽, 제3장 「일본의 한국병합」
FDR은 완전히 유명무실해진 국제연맹 대신 설립하기로 한 국제조직인 UN에 의한 신탁통치 하에 조선을 40년간 두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에 대해 처칠과 스탈린은 반대하지 않았다. FDR이 그러한 제안을 한 이유는 미국의 필리핀통치로 필리핀은 회복되었고 1931년의 미국과 필리핀의 합의에 따라 15년간의 회복기(유예기간)를 거쳐 1946년에 독립할 예정이라는 것, 그러한 예에 비추어 조선인은 일본의 통치 하에 30년 이상 있었으므로 통치능력과 경험이 부족할 것이고 때문에 어느 정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FDR의 판단이었다. 단 그의 그러한 판단에는 독립을 염원하는 조선인의 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편견이 있었던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198~199쪽, 제6장 「카이로 회담과 테헤란 회담」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 국내만이 아니라 중국·소련·미국 등 세계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은 각각 개인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횡적 연대는 기본적으로 없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광복’은 그들의 예상보다 일찍 왔고, 더욱이 미국과 소련에 의한 한반도 분할점령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그래서 여운형처럼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해서 당시의 좌우 독립운동가를 망라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광복’ 및 분할점령이라는 ‘외압’에 대하여, 더욱이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에 그들은 통일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분열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이후 남한의 정치적 혼란, 남북한에 두 개의 정부 성립과 수립, 한국전쟁의 발발과 남북을 불문한 철저한 파괴, 분단의 고착화라는 상황이 현재까지 이르게 된 근원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52쪽, 나가며 「독립운동의 분열과 한반도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