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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자력 사회로-후쿠시마 이후, 대안은 있다
하세가와 고이치 | 김성란 |
가격: 18,000원
쪽수: 352
발행년/월/일: 2016.11.01
크기: 145*210
ISBN: 978-89-337-0720-3 03300
한국어판에 부쳐
머리말
감수자의 말―탈원전의 이정표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제1장 왜 원자력발전은 멈추지 않는가
1.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교훈
2. 왜 원전 건설은 계속되어 온 것일까
3. 돈다발과 권력―원자력시설 수용 메커니즘
4. 원전 추진 노선의 막다른 골목

제2장 녹색화는 21세기의 표어
1. 탈원전 그리고 전력의 녹색화
2. 새크라멘토 전력공사 재생의 의미
3. 지구온난화와 ‘원자력 르네상스’
4. 전력을 녹색화하기 위하여

제3장 지역의 새로운 목소리
1. 마키 원전 주민 투표, 그 배경과 결과
2. 재생가능에너지로 지역 살리기
3. 시민풍차와 시민공동발전

제4장 탈원자력 사회를 향하여
1. 에너지와 민주주의
2. 독일이 탈원전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이유
3. 일본의 선택

제5장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
1. 바뀌지 않는 일본―사고로부터 5년 후의 현실
2. 새로운 규제 체제는 제대로 작동할까
3. 시민사회의 반응
4. 정책 전환은 어떻게 하면 가능해질까
5. 왜 원전을 막을 수 없는가
6. 일본은 변할 수 없는 것인가

후기
역자 후기
경주 지진과 원전
지난달인 9월 12일 경주 남남서쪽 8km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한반도에서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해도 시설피해는 컸다. 건물에 금이 갔고, 집 안의 물건들이 넘어지고 부서졌다. 사람들은 한반도에서도 규모 6.0에 가까운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수백 회에 걸친 여진으로 공포에 휩싸였다.
사람들의 두려움은 온전히 지진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주에는 월성원전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있고, 인근에는 고리원전이 위치해 있다.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이라 불리는 실정이다. 만약 지진으로 인해 원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결과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2011년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원전 폭발 사고 이상으로 위험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펼쳐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경주 지진 이후 불거지는 원전 폐지와 건설 중단 요구에 대해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과 전력 예비율이나 전력수급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원전 폐지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이후 일본 정부의 입장과 기본적으로 비슷한 데가 있다.
과연 원전 말고는 우리에게 안전한 전력 공급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다른 에너지로는 전력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일까. 그렇다면 왜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은 원전의 폐지 내지는 축소 추세로 가고 있는 것일까.

탈원전의 현실적 대안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인 하세가와 고이치 교수(도호쿠대학교 대학원)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원전이나 핵연료 사이클 시설을 둘러싼 사회 문제와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연구해 온 일본 환경사회학 분야의 리더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출간된 이 책은 20년 이상 쌓아온 저자의 연구 성과를 담고 있으면서, 후쿠시마 사고라는 비극적 사건을 전환점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원전에 대한 공포심을 바탕으로 탈원자력을 주장하는 기존 관련 서적들의 저술 방식에서 탈피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탈원자력, 즉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는지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서술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4장은 2011년 출간된 일본어 원서를 기본으로 하였고, 제5장은 2015년 출간된 영어판에 추가된 내용을 담았다. 저자는 이번에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2016년 2월 말까지의 업데이트된 내용들로 본문을 추가, 보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자는 제1장에서 일본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원자력 대국이 된 이유를 원전 건설을 둘러싼 정치, 경제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일본은 미국과 달리 국가가 강력하게 지원하는 원자력발전 촉진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원전은 민간 설비 투자이지만 정부의 철저한 계획에 기반을 두고 건설이 진행되었다. 이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체제와도 상당히 유사하다. 원전의 입지 선정, 원전 주변지역의 주민대책, 원자력 관계자들의 내부결속과 이해 독점, 원전건설기업과 전력회사, 정부의 전력담당부서가 서로 결탁하고 있는 점 등 일본의 원자력 무라ムラ(국내에서는 이들을 ‘원자력 마피아’로 칭한다)는 돈다발과 권력으로 뭉쳐진 긴밀한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있다.
제2장은 미국과 독일을 선두로 시작된 유럽에서의 탈원전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전력공사에서 일어났던 변화를 보여준다. 새크라멘토 전력공사는 1989년 주민투표에 의해 란초 세코 원전을 폐쇄했고, 스무 가지 이상의 효율적인 에너지 이용 프로그램을 실시해 전원을 확보했다. 이후 새크라멘토 전력공사는 경영재건으로 전력 녹색화에 성공한 세계적 사례로 손꼽히게 되었다.
제3장은 주민투표로 도호쿠전력東北電力의 원전 건설을 무산시킨 니가타 현新潟県 마키 정巻町의 주민운동을 중심으로 일본 곳곳에서 일어나는 탈원전과 전력 녹색화를 위한 주민들의 새로운 움직임을 다루었다. 일본 3대 악풍惡風으로 불리는 ‘기요카와다시清川だし’라는 강풍에 시달리던 야마가타 현山形県 다치카와 정立川町이 풍력발전으로 고향 살리기에 성공한 예나, 생활클럽홋카이도라는 지역 생협이 녹색전기요금운동, 시민풍력발전소 건설 등으로 시민운동과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결합한 예 등이 소개된다.  
제4장은 독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탈원전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했는지를 살펴보고, 일본의 탈원전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들을 제시한다. 전 세계에서 원전 반대 운동이 가장 거센 나라였던 독일은 기존에 이미 탈원전에 대한 합의에 도달한 상태였지만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원전의 운영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직후 원전 찬반에 대한 정책 논쟁에서 원전 폐쇄라는 최종 합의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일본 또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소의 철저한 점검을 위해 23개월 동안 원전가동을 전면적으로 멈춘 적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큰 대란 없이 전력은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다. 저자는 이는 탈원전이 가능하다는 증거라고 설명하면서 원자력발전을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는 몇 가지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원전을 당장 없애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전력의 녹색화를 통해서 탈원자력의 길을 단계적으로 모색하자는 것이다.
제5장에서는 사고 이후 5년이 흐른 일본의 현실을 정리한다. 2012년 탄생한 제2차 아베정권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에너지 기본 대책인 ‘혁신적 에너지·환경전략’을 파기하고 원전 가동 추진 노선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고 이후 명확한 원인 규명이나 책임자에 대한 처벌 없이 원전의 재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고 이후 새로운 원자력 규제 기준을 만들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저자는 묻는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큰 사고로도 정말 일본은 바뀔 수 없는 것인가, 일본 사회의 이성과 변혁 능력은 도대체 어디에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후쿠시마 사고 후 5년이 지나도 탈원자력을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을 이루지 못하는 일본의 원자력정책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한국의 변화 가능성에 희망을 건다. 대통령제의 나라인 한국이 일본보다 더 역동적으로 정책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전환이 동아시아 전체에 긍정적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실제로 경주 지진 후 영남권에는 양산활단층을 비롯하여 수많은 단층이 남북으로, 동서로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고리원전, 월성원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은 그러한 단층밀집지역, 즉 지진다발지역에 위치해 있음이 밝혀졌다. 관계기관에서는 이러한 위험을 이미 지질조사를 통해서 인지하고 있었지만 공표하지 않았고, 게다가 원전 추가 건설을 추진했던 것이다.
지진에 따른 원전의 위험은 가상의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현실적 불안으로 지역민들의 삶을 흔들고 있다. 이번 경주지진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원전문제를 근본에서부터 검토할 기회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의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웃음은 3월 11일로 사라졌다.
일본 사회 전체가 방사능 오염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등굣길은 안전한지, 학교급식은 안전한지, 학교 옥외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수영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등등 후쿠시마 현福島県을 중심으로 어린 아이들이 있는 동일본과 수도권 가정에서는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채소, 찻잎, 해산물, 쇠고기 같은 식품과 수돗물 등 식수의 안전성에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어도 그 장소와 식품의 방사선 수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부나 공공기관, 미디어 등에서 ‘안전선언’을 발표하지만, 그 전제가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정부가 하는 말이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지만 일본 사람들은 정부를 신뢰해 왔으니까요.” 5월 초 한국에 잠깐 다녀온 한국인 연구자가 제일 처음 한 말이었다.
최악의 사태는 앞으로 언제든지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전제로 건전성을 의심하고, 건전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그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 것이다.
 
― 제1장 왜 원자력발전은 멈추지 않는가 중에서

이 바람을 어떻게든 이용할 수 없을까. 쓰루오카고등전문학교鶴岡高等専門学校 단 쇼이치丹省一 교수 팀의 협력을 얻어 1980년 출력 1kW의 풍차로 발전하여, 온실하우스 촉성재배促成栽培에 전력을 이용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다음 해에는 5kW의 풍차 2기를 양돈 단지에 설치하고 돈사 난방에 전력을 활용하는 실험을 5년간 진행했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강해서 이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1988년부터 1989년에 걸쳐 버블 전성기에 등장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내각은 ‘고향 살리기 1억 엔 사업ふるさと創生一億円事業’을 전개했다. 지방교부세의 교부 대상이 되는 각 시·정·촌에 사용처를 묻지 않고 1억 엔씩을 교부한다는 선심성 사업이다. 낭비로 끝나 버린 자치단체도 많았지만 다치카와 정은 이 자금을 기반으로 ‘풍차 마을 추진 위원회風車村推進委員会’를 발족시켰고, 시미즈 유키마루清水幸丸 교수(미에대학三重大学), 우시야마 이즈미牛山泉 교수(아시카가공업대학足利工業大学) 등의 협력을 얻어 1993년 5월 마을이 운영하는 100kW의 발전용 풍차 3기를 설치했다. 설치 장소인 약간 높은 공원은 ‘풍차마을風車村’이라 부르고 전기는 공원 내 학습시설에 사용되는 조명용으로 이용되었다. 쓰고 남은 전기는 도호쿠 전력에 판매되었다. 1992년 4월부터 잉여 전력 매입 제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3기는 상업용으로 전기가 판매된 일본 최초의 풍력발전사업이 되었다.

― 제3장 지역의 새로운 목소리 중에서

원자력 정책 논의에서 온난화 용인인가, 원자력인가 하는 양자택일 논의는 아무런 의미 없고 일면적인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메르켈 정권이 만든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 위원회’ 위원이자 위험사회론으로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원자력 의존인가 기후 변동인가라는 것은 혐오스러운 양자택일”이라고 말하고 있다(「아사히신문」, 2011년 5월 13일자 기사). 온난화 대책을 구실로 원자력발전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온난화로 인한 위험과 원자력발전에 의한 위험 모두를 막겠다는 것이 바로 윤리적 태도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 원전의 가동률을 높이면 온실 효과 가스 5%를 줄일 수 있다, 그러니 원전 가동률을 높이고 신·증설을 서둘러야만 한다, 원전을 멈추면 그만큼 온실 효과 가스 배출이 늘어난다고 설명해 왔다. 그냥 들으면 간단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설명의 근거로 사용된 설비 이용률 84.2%는 최근 18년 동안 예외적으로 가장 높았던 1998년의 수치이다. 2002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80%를 넘지 않았다. 설비 이용률이 불안정한 원전 의존은 오히려 온난화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직시해야 한다.

― 제4장 탈원자력 사회를 향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