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론사상 최고의 고전이자 난해하기로 유명한 책, 『전쟁론』
수없이 인용된 만큼 다양하게 해석된 『전쟁론』에 내재한 태생적 모순
19세기 초 프로이센의 군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군사교육기관에서 교재로 읽히는 고전이다. 군사학뿐만 아니라 정치학, 경영학 분야에서도 클라우제비츠의 개념이 수없이 인용, 차용되어 왔다.
전쟁을 주로 구체적인 전략, 전술 측면에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거시적 안목으로 조망한 이 책은 출간 후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혹자는 클라우제비츠의 깊이 있는 통찰에 감탄했고, 혹자는 난삽한 문체와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을 비난했다. 이 같은 상반된 반응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은 클라우제비츠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군부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적의 철저한 굴복을 목적으로 자행되는 광범한 폭력과 파괴, 군인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동원하는 전쟁 양상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클라우제비츠가 산 시대는 구체제가 새로운 체제로, 신의 군주에서 인민의 군주로 옮겨 가는 변혁의 시대였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앞의 두 전쟁과 동일한 양상을 띨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쟁론』의 초안을 집필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자신의 논지에 오류가 있음을 인식하고 원고를 수정하던 도중 갑자기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론』은 미완성의 유작이 되었다. 따라서 『전쟁론』에서는 서로 모순된 내용이 여기저기에서 충돌한다. 더불어 클라우제비츠의 난삽한 문체로 인해 내용을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다.
많은 이들이 이 같은 단점을 잘 모르거나 클라우제비츠의 통찰력에 압도된 나머지 『전쟁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왔다. 1832년 출간된 후 약 200년간 수많은 군인, 정치가, 학자 들이 『전쟁론』을 비판하고 인용하고 변형해 왔으며 때로는 곡해했다. 잘못된 해석이 퍼져 나가기도 했고, 단편적인 문구만이 여기저기서 인용되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고전’이라는 표현처럼 『전쟁론』은 많은 이들이 제목을 들어 보았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책이 되어 갔다.
모순과 난해함의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클라우제비츠의 핵심 사상에 다다르도록 이끄는 책
그동안 한국에서도 『전쟁론』은 여러 차례 번역되었고, 클라우제비츠나 『전쟁론』에 대해 단편적으로 또는 경영학적 시각으로 다룬 책들이 출간된 바 있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의 핵심 사상과 『전쟁론』을 본격적으로 설명한 저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이 같은 현실에서 베아트리체 호이저의 저서는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다.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저작과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자들의 견해를 검토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이 책에서는 『전쟁론』에 내재한 모순과 근본적 오류들을 찾아내어 설명하고, 클라우제비츠 사상의 핵심을 추출해 내고자 했다.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새롭게 추가하기보다 세계 각지 전략사상가들의 이차문헌들을 검토, 인용하여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이 어떻게 이해되고 또 왜곡되었는지를 밝혀냈다. 또한 그동안 진행된 이론적 논의와 역사적 사건들을 소개함으로써 클라우제비츠의 사상과 정치군사적 현실 간의 관계도 설명했다.
『전쟁론』이 구상된 시기부터 현재까지 클라우제비츠 사상의 주요 내용과 해석 과정을 정리한 개설서
이 책은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시대상과 당시의 논의들, 『전쟁론』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전쟁론』의 핵심 내용, 즉 절대전쟁과 제한적 전쟁, 정치 수단이라는 전쟁의 본질적 성격, 군사전략을 둘러싼 군부와 문민의 관계, 전쟁의 승리에 필요한 요소들, 공격과 방어, 섬멸전과 총력전에 대한 견해 등을 여러 연구자들의 관련 논의 및 실제 전쟁 사례와 연결 지어 하나하나 검토해 나간다. 다음으로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을 종합적으로 이해한 소수의 인물들 중 코빗과 마오쩌둥을 선택해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한 사례를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핵무기와 냉전 시대, 그리고 21세기에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이 지닌 의미를 짚어 본다.
클라우제비츠가 진정으로 말하려 한 바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의 본질을 경직되고 단순한 법칙으로 잘못 이해했다. 그가 『전쟁론』을 통해 말하려 한 바는 전쟁을 하나로 정의하거나 전투 진행 방식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전쟁의 규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쟁을 계획하거나 수행하는 이들이 사고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전쟁론』의 몇몇 개념을 움켜쥐고 각자의 입장을 웅변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클라우제비츠가 산 시대보다 정치적, 군사적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의 원칙과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는 전쟁의 본질과 기능, 변수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인식틀을 후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전쟁에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한다는 그의 해석은 전쟁을 생각하는 방식을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 정치권과 몇몇 언론에서 핵무장 논의가 피어오르는 지금, 우리는 이에 대해 얼마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한반도의 정치적 조건과 국제관계를 충분히 파악하고, 최선의 군사적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토론하고,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전략, 전술을 세우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와 국민의 존속과 생존이다. 한 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는 엄중한 현실에서, 클라우제비츠가 남긴 통찰은 우리가 궁극적 목표로 한 발 나아가는 데 화두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