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불교사상사에 대해 줄곧 관심을 가져오면서 항상 궁금해 한 점이 있다면, 삼국시대에 처음 불교가 어떻게 전래되어 수용되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불교의 전래와 수용에 대해서는 이미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가 이루어져 왔다. 신라 사회의 불교는 왕실에서 받아들였다. 왕실 중심으로 수용된 불교 는 하등 귀족들이 반대할 대상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초전불교初傳佛敎의 전래 전설에 의하면 (아도 등이) 왕실의 허락을 받아 사원을 지으려는 데 대해, 귀족들이 한결같이 반대하였다. 그렇다면 사원의 창건은 왕실 중심으로 수용된 불교를 백성들에게 홍포하려는 것이고, 이에 대해 귀족들이 반대하였다고 생각한다. 신라 사회에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을 살피고자 할 때, 새로운 사상이나 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신라국가 내부의 사회 상황이 어떻게 변모해 갔느냐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연구들은 불교 전래 문제를 다루면서 삼국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였으며, 아울러 어느 계층이 포용해 간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다. 불교 수용을 신라 사회의 내부 구조 속에서 파악하려는 작업은 퍽 중요하지만, 이에 곁들여 새로 들어오는 불교가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지, 다시 말해 인도에서 성립될 당시의 원시불교가 어떤 사상 경향을 가졌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 제1장 「신라의 불교 전래와 공인」 중에서
백제 불교사상의 특징으로 미륵신앙과 계율을 함께 강조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미륵신앙 속에는 계율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윤보輪寶에 의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치세가 혼란으로 치달을 때에 미륵이 하생해, 용화수 아래의 설법을 통해 계율을 강조함으로써 현실 사회를 정토로 만든다고 한다. 백제 사회에 엄격한 계율의 적용은 다소 넉넉하면서도 관용적인 불교신앙의 모습을 지양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백제 불교신앙 속에서 포용적인 사상 경향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 백제 불교신앙 내에서 융섭적이거나 통합적 사상 경향에 잘 어울리는 주제가 바로 법화신앙이다. 『법화경法華經』은 석가의 영취산靈鷲山설법을 잘 담고 있어서 대승 경전을 대표하므로,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일찍부터 법화신앙을 중시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법화신앙은 크게 유행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삼국 중 백제에 법화신앙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백제 법화신앙을 알려 주는 국내 사료는 극히 소략하게 전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혜현惠現 관계 기록은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에 거의 그대로 중복하여 실렸다. 그 외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 등도 참고가 된다. 아쉬운 대로 중국 승전류僧傳類에 다소의 내용을 보충할 수 있는 기록이 전한다. 아울러 일본 측 사료에도 백제 법화신앙을 알려 줄 내용이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 제4장 「고구려와 백제의 귀족불교신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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