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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 불교조각사 연구(신수판)
김리나 |
가격: 43,000원
쪽수: 456
발행년/월/일: 2015.02.25
크기: 크라운판변형
ISBN: 978-89-337-0692-3 93600
서序  
제1편 한국불상의 특징
한국의 고대조각과 미의식
Ⅰ 서론   
Ⅱ 종교조각으로서 불상 표현의 성격  
Ⅲ 한국불상의 성립과 국제성   
Ⅳ 삼국시대 불상의 한국적 특성   
Ⅴ 통일신라불상의 이상형의 성립  
Ⅵ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전개와 토착화   
Ⅶ 결어  

제2편 삼국시대의 불교조각
삼국시대 불상양식 연구의 제 문제
Ⅰ 서론   
Ⅱ 삼국 초기 불.보살상의 양식 문제     
Ⅲ 백제불상의 양식 문제   
Ⅳ 반가사유형 보살상   
Ⅴ 우견편단형 불입상  
Ⅵ 결어  
황룡사의 장륙존상과 신라의 아육왕상계 불상
Ⅰ 서론    
Ⅱ 문헌상의 아육왕상   
  1. 황룡사의 장륙존상
  2. 중국의 아육왕상   
Ⅲ 북주의 아육왕상 일례    
  1. 전 금광사지 출토 석조여래입상
  2. 구황동 사지 삼층탑 출토 금제여래입상   
Ⅳ 신라의 아육왕상식 불상  
Ⅴ 결어   
삼국시대의 봉지보주형 보살입상 연구 ― 백제와 일본의 상을 중심으로 ―
Ⅰ 서론    
Ⅱ 백제의 봉지보주형 보살입상     
  1. 부여 출토의 예
  2. 태안 및 운산의 마애삼존불   
Ⅲ 일광삼존불협시의 봉지보주보살상    
  1. 금동삼존불상 광배편
  2. 구 오구라 소장 금동삼존불상     
Ⅳ 독존의 봉지보주보살상 2구  
  1. 거창 출토의 봉주보살상 
  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봉주금동보살상  
Ⅴ 중국의 봉지보주보살상   
Ⅵ 봉지보주보살상의 명칭 추정   
Ⅶ 백제와 중국 및 일본과의 불교문화 교섭  
  1. 중국과의 관계
  2. 일본과의 관계  
Ⅷ 결어  

제3편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조각
통일신라시대 전기의 불교조각양식
Ⅰ 서론  
Ⅱ 전통양식의 계승과 외래요소의 유입   
  1. 연기군 출토 불비상군
  2. 군위 아미타삼존불상
  3. 구황동 삼층석탑 출토 순금불입상     
Ⅲ 당 양식의 수용과 통일신라 조각의 국제성
  1.안압지 출토 삼존불상
  2. 구황동탑 출토 순금아미타불좌상
  3. 남산 칠불암의 삼존불상 
  4. 감산사 아미타불 및 미륵보살입상  
Ⅳ 통일신라 조각양식의 완성  
  1. 굴불사지의 사면석불상
  2. 석굴암의 본존불상과 11면관음보살상   
Ⅴ 결어  
신라 감산사여래식 불상의 의문과 일본불상과의 관계
Ⅰ 서론   
Ⅱ 서역과 중국의 예  
Ⅲ 감산사여래식 불상과 그 변형  
  1. 감산사여래상 형식
  2. 감산사여래상의 변형 
Ⅳ 일본 덴표 말․헤이안 초기 불상과의 관계 
Ⅴ 결어    
경주 굴불사지의 사면석불에 대하여
Ⅰ 서론      
Ⅱ 사방불과 굴불사 사면불상    
Ⅲ 조상의 형식 및 양식 고찰   
  1. 서면: 아미타여래삼존입상
  2. 남면: (석가?)여래삼존입상(우협시 파손)
  3. 동면: 약사여래좌상  
  4. 북면: (미륵?)보살입상(부조), 11면6비관음보살입상(선각)  
Ⅳ 결어

제4편  항마촉지인불좌상 연구
인도불상의 중국 전래고 ― 보리수하 금강좌진용상을 중심으로 ― 
Ⅰ 서론     
Ⅱ 성적聖蹟 부다가야    
  1. 보리수 및 금강좌진용상
  2. 왕현책의 성용 모사
  3. 구법승들의 예배  
Ⅲ 돈황 출토의 도상편  
Ⅳ 결어  
중국의 항마촉지인불좌상
Ⅰ 서론    
Ⅱ 7세기 후반의 재명 촉지인불좌상    
  1. 장안 대안탑지 출토 소조압출불상
  2. 영륭명 금동삼존불상
  3. 계림 서산 관음봉의 마애촉지인불상
  4. 병령사석굴 불감의 삼존불상   
Ⅲ 측천무후기의 촉지인불좌상  
  1. 용문 동산의 뇌고대 및 간경사의 보관불
  2. 보경사의 삼존불상군  
Ⅳ 8세기 전반의 촉지인불좌상  
  1. 화탑의 촉지인불좌상
  2. 천룡산석굴 
Ⅴ 촉지인좌상의 도상적 의미  
Ⅵ 결어    
통일신라시대의 항마촉지인불좌상
Ⅰ 서론  
Ⅱ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촉지인불상   
  1. 군위삼존불의 본존상과 촉지인불좌상의 수용    2. 석굴암 본존상과 그 계열의 촉진인상    
  3. 경주 남산의 촉지인불좌상
  4. 분황사 석조불상군  
Ⅲ 촉지인불좌상의 유형분류기준  
  1. 통견과 우견편단
  2. 엄액의와 가슴띠
  3. 무릎 사이의 주름
  4. 약합의 유무 
Ⅳ 결어    
 
사진 출처  
찾아보기     
이 책은 불교조각 연구의 권위자인 김리나 홍익대학교 명예교수가 1989년 출간한 <한국고대 불교조각사 연구>의 신수판新修版이다. 첫 출간 후 26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불교조각사 연구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어 내용은 그대로 하되 현재성을 고려하여 새로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초판본의 흑백사진들을 대부분 컬러사진으로 교체하여 수록하였으며, 일부는 최근 사진을 실었다. 또한 도판의 유물 명칭은 현재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으로 표기하였고 유물의 소재지나 소장처가 변경된 경우에는 수정하였다.
이 책은 10편의 논문을 모아서 엮은 논문집으로, 주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의 불상조각을 다루었으며, 논문에 따라서 불상이라는 예배대상의 이상적인 형상, 불상 제작과 관련되는 역사기록, 불상의 도상과 양식적 특징 등을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의 불상과 연관시키거나 멀리는 인도에서 원류를 찾는 데 중점을 두어 고찰하였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한국의 불상에 보이는 국제적인 성격과 한국적인 독자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 책의 구성
제1편은 한국 불상의 조형성에서 느껴지는 미의식의 특징을 찾아보려는 글로, 불교문화가 절정에 이른 후 그 의식이 불교미술에 반영되는 조형성이라든지, 형이상학적인 불교교리가 구체적인 형상으로 전환될 때의 표현상의 특징이라든지, 종교적인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상적인 형상의 예배대상이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과 같은 종교미술의 해석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제2편은 삼국시대 불상 중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몇 가지 예를 고찰한 글과 6세기 후반에 세워졌다 없어진 경주 황룡사의 장륙존상의 형식을 추정해 본 글, 그리고 백제지역에서 많이 알려진 보살상 중에 두 손으로 보주寶珠를 마주잡고 있는 형식에 대한 글을 엮은 것이다.
제3편은 통일신라의 불교조각에 대한 논문들을 모은 것이다. 그중 ‘신라 감산사여래식 불상의 의문과 일본불상과의 관계’는 감산사상(甘山寺像)으로 대표되는 우전왕상식의 불상형식과 이를 따르는 신라의 상들을 모은 것으로 도상과 양식의 유래, 한국적인 변형을 고찰하고 일본 상과의 연관성을 지적하였다. 또 ‘경주 굴불사지의 사면석불에 대하여’는 저자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 처음 발표한 논문으로 굴불사지 사면석불의 도상과 양식, 일본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사면석불의 북쪽 면에 새겨진 선각의 보살상이 11면6비관음보살임을 저자가 최초로 확인하였다.
제4편은 전성기 통일신라 불상을 대표하는 석굴암 본존이 보여주는 항마촉지인 불상의 도상적인 원류와 이 불좌상 형식을 따르는 통일신라 불상의 발달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책 속으로

황룡사의 장륙존상과 신라의 아육왕상계 불상
특히 사천성 성도 출토의 재명在銘 아육왕상 모상은 지금은 자연석의 대좌만 남아 있는 황룡사의 장륙존상의 모습을 추정하여 보는 데에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현존하는 신라의 불상 중에서 이 성도의 상을 토대로 하여 본 아육왕상식 불상형식을 따른 예는 대체로 7세기 후반기의 조상에서부터 발견되는데 그중 전 금광사지 출토 석조여래입상이나 황복사지탑 내 발견 순금여래입상들은 그 형식이 정형화하기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수인이라든지 의문의 표현, 조각수법 등이 완전히 소화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새로운 형식이 황룡사의 아육왕상을 계기로 일차적으로 전래되었더라도 다시 새로운 모본이 7세기 중엽이나 혹은 그 전후해서 들어옴으로써 그 전통이 계속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상의 전래 경위 역시 중국에 있는 아육왕상의 모상이나 도상이 전하여졌을 경우도 있고 혹은 신라승의 인도나 서역과의 직접적인 접촉에서도 가능했었으리라고 본다. 특히 신라의 승려들은 이미 당의 구법승 의정義淨 이전에 육로나 해로를 거쳐 날란다Nalanda를 방문하였던 분들도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추측도 아닌 것이다. 특히 통일신라의 불상 중에는 가끔 중국의 상 중에서는 안 보이는 인도 조상적인 요소가 잔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신라의 불교미술의 수용에는 당뿐만 아니라 서역, 동남아 및 인도를 무대로 매우 국제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신라불상형식의 발달도 반드시 중국의 조상의 발달과 일치하지 않고 몇 가지의 특정한 형식이 특히 유행하는 것을 보면 신라인이 이미 유입된 형식에 집착하는 보수적 경향의 일면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고 또한 불교교리의 수용과정과 신라적인 특수성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논의한 아육왕상 계통의 불상형식은 또 다른 인도계의 잘 알려진 불상형식인 우전왕상식優塡王像式 불상-신라의 감산사 아미타여래입상과 같은 형식의 불상-과 더불어 통일신라 불입상의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이들 상들은 차차로 많은 변형으로 발전시켜 나갔는데, 예를 들어서 상의 대의가 목에서 길게 늘어뜨려지면서 가슴의 일부를 노출시킨다든지 혹은 내의를 보이게 한다든지 또는 가슴띠를 맨다든지 여러 가지 변형을 가하여 신라화하여 간다. 불안도 넓적해지고 광대뼈가 나오며 한국적인 얼굴인상을 보여주는 듯 서서히 신라불상의 토착화가 이루어지면서 신라 고유의 양식을 확립시켜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 ‘제2편 삼국시대의 불교조각’ 중에서, 108~110쪽

경주 굴불사지의 사면석불에 대하여
이제 실제로 굴불사의 사면불상을 관찰하여 보건대, 서면西面에는 삼존불三尊佛이 있는데 주불主佛의 왼쪽 협시脇侍의 보관에 아미타입상의 화불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도 3-72, 72 b). 이로써 이 협시가 관음이고 반대편의 협시가 세지勢至, 주불은 아미타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면東面에는 결가부좌하고 있는 여래가 있는데 오른팔은 일부 파손되었으나 시무외인의 위치로 올려졌고 왼손은 다리 가운데에 놓여져 있으며 약합藥盒을 들고 있다(도 3-73). 즉, 약사불로서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의 교주敎主인 것이다. 동방에 약사불이 오는 경전으로는 상기한『 공작왕주경』으로 사방불 중 사방과 동방불의 명칭과 일치하나 남·북면의 상을 신앙의 대상에서 흔히 나타나지 않는 정방불 칠보당불로 추정하기에는 여러 가지 난점이 있다. 특히 북면에는 여래상은 보이지 않고 부조보살상이 있으며 그 옆에 있는 선각보살상은 11면 6비의 관음상으로 밝혀졌으니(도 3-74, 74 a, 74 b), 결국 이 사면불이『 공작왕주경』에 의거하지 않은 것이 확실해진다.
따라서 이 굴불사 사면불은 어느 한 경전에서 유래한다기보다는 당시의 현교사상顯敎思想에서 가장 깊고 널리 신앙되었던 부처를 사방불로 표현하였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며 북면의 부조보살은 석가모니 입멸 후 성불하여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기로 기약이 되어 있는 미륵보살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로 남면에 있는 불상은 본래 삼존불이었으나 우협시右脇侍는 완전히 떼어가서 흔적만 남아 있고 주불은 얼굴이 없는 입상이며 좌협시左脇侍 역시 그 명칭을 알아낼 특징이 없으나 석가로 간주하는 것이 통례이다(도 3-75, 75 a, 75 b).
- ‘제3편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조각’ 중에서, 283~284쪽

통일신라시대의 항마촉지인불좌상 
대체로 한국에서의 항마촉지인의 불좌상은 7세기 후반에 수용되어 8세기에서 9세기 동안에 유행하며, 그 발달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변형은 대략 16종류의 형식으로 분류하여볼 수 있고 이 분류의 기준은 우선 불의가 우견편단인가 통견인가로 시작하여 무릎 사이의 주름의 형태, 엄액의와 가슴띠의 유무, 또는 약합 표현의 도상적인 요소까지를 포함하였다.
첫 번째 분류기준에서 나눈 바로는 통견의 불상형으로는 가장 초기의 예인 군위석굴의 본존상에서는 삼국시대 조각의 보수적인 성격과 새로운 도상의 결합에서 나타나는 신·구 요소의 공존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산의 칠불암의 본존상에서는 7세기 후반에 중국에 새로이 전래되어 유행되기 시작하는 우견편단 촉지인불좌상의 원형, 즉 인도의 굽타시기의 촉지인좌상형을 충실히 따른 통일신라 초기의 예로서 등장하고 다시 석굴암의 본존상과 같이 완성된 경지에 다다른 불상이 이룩되는 것을 알았다.
이 석굴암 본존상과 같이 우견편단형의 불의나 옷주름의 처리 방법을 따르는 정통 계열의 예가 특히 많은 것은 이 석굴암 불상이 신라의 불교미술계에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두 무릎 사이의 부채꼴형 옷주름은 우견편단은 물론 통견의 좌상에서도 공통으로 표현되며 촉지인상뿐 아니라 신라 말기의 비로자나불상에서도 발견되고 고려시대의 불상에까지도 잔존하여 이어지는 것을 알았다.
촉지인불좌상형의 이와 같은 신라적인 발전의 배경에는 7세기 중엽부터 약 1세기 동안 활발히 이루어지는 인도와 당, 신라와 당과의 빈번한 교류, 그리고 신라와 인도와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접촉에서 오는 불교문화의 국제적인 영향이 반영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서 새로이 신라에 수용되는 여러 요소들은 이미 신라 조각에 나타나고 있던 전통 위에 신라인 고유의 종교관과 미의식이 결합되어 더욱 발전된 결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촉지인불상들은 석굴암상에서 보이던 완벽에 가까운 조각기술과 균형 잡힌 몸매, 그리고 간결한 조형감에서 느껴지던 신비한 내면세계의 표출이라는 종교조각으로서의 우수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그 제작연대도 석굴암 이후의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혹은 10세기로 분포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상 중에는 연대를 동반하는 상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다.
- ‘제4편 항마촉지인불좌상 연구’ 중에서, 438~4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