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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1944년 6월 6일,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
코넬리어스 라이언 | 최필영 |
가격: 28,000원
쪽수: 496
발행년/월/일: 2014.11.07
크기: 신국판
ISBN: 978-89-337-0685-5 (03390)
책을 옮기며
자료 목록
주요 인물

프롤로그: 노르망디 침공이 결정되기까지
서문: 디데이, 1944년 6월 6일 화요일

Ⅰ. 기다림
1944년 6월 4일, 평화롭지만 암울한 일요일 아침
롬멜, 고민 끝에 휴가를 내다
롬멜의 확신
보헤미아 출신 상병의 고집
독일군, 연합군 침공 예보를 감청하다
롬멜은 떠나고 아이젠하워는 중대 결정을 내리다
연합군 선단, 프랑스를 바로 앞에 두고 방향을 돌리다
디데이가 연기된 것을 모르고 대기 중인 X23
계속 새어 나가는 비밀
‘지상 최대의 작전’, 디데이가 결정되다
오늘도 우리는 대기 중
레지스탕스, 소리 없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다
연합군, 마지막 만찬을 들다

Ⅱ. 밤
햄과 잼
대체 무슨 일일까?
선도병들, 시간과 싸우다
적진 한가운데로
전쟁의 안개 속을 헤매는 독일군 지휘관들
독일군, 생트-메르-에글리즈와 통신이 끊어지다
X23, 연합군 함정을 위해 불을 밝히다
직접 와서 두 눈으로 한번 보라고!

Ⅲ. 디데이
새로운 새벽이 열리다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시키는 대로 하라고!
곧 해방이 될 거야!
마침내, 긴장이 깨졌다
노르망디로 진격!
포탄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드디어 도착한 증원군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다

에필로그: 디데이 이후

디데이 사상자
디데이 참전자 명단
감사의 말
The Longest Day의 유산
참고문헌
찾아보기

오늘날 널리 쓰이는 디데이(D-Day)와 에이치아워(H-Hour)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결정적인 작전이었으며, 전쟁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장면이 담긴 것으로 유명하다. 디데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지만, 이 단어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59년에 코넬리어스 라이언이 쓴 <디데이-1944년 6월 6일,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가 큰 성공을 거둔 뒤부터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책들 가운데 으뜸가는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단순히 전쟁사라기보다는 전쟁을 몸으로 치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낯선 전장에 몸을 던진 연합군 군인들의 이야기, 침공하는 연합군에 맞서 싸운 독일군 군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히틀러의 도박을 끝내려 시작된 디데이 한복판에 있었던 프랑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상륙작전 현장에 있던 수많은 군인의 경험과 각종 공식 기록을 박진감 넘치는 필력으로 담아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준비 과정부터 실시, 그리고 영향에 이르기까지 연합군과 독일군의 입장을 모두 반영해 현장감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지금도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
“나를 믿게, 랑! 침공이 시작된 이후 24시간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될 걸세. …… 그리고 독일의 운명은 그 24시간 동안 어떻게 싸우는가에 달려 있다네. …… 독일에게도 연합군에게도 그날은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가 되겠지.”               - 1944년 4월 22일, 에르빈 롬멜 -

시간은 객관적이지만 주관적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는 아주 짧은 하루가 누구에게는 아주 긴 하루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하루는 언제였을까? 롬멜의 말처럼 1944년 6월 6일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였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첫째 날과 그날이 오기까지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합군 전체로 볼 때 유럽 침공은 단순한 군사 작전 이상의 것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유럽 침공을 ‘위대한 성전’이라고 불렀다. 이 성전은, 유럽을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몰아넣고 유럽 대륙을 산산조각 내었으며 3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을 비참한 굴종의 상태로 빠뜨린 소름 끼치는 학정을 단호하게 끝내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젠하워가 말하는 위대한 성전의 목적은 단지 전쟁을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나치즘을 무너뜨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야만의 시대를 끝내는 데 있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침공이 성공해야 했다. 만일 침공의 첫 단계인 상륙작전이 실패하면 독일의 패망은 몇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작전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세우는 데 1년이 넘게 걸린 오버로드 작전은 지금껏 시행했던 단일 군사작전 중 그 어떤 작전보다도 병력, 함정, 항공기, 장비, 그리고 물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지상 최대의 작전’이 되었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0시 15분, 나치 독일이 점령한 유럽을 해방시키는 첫 단계로서 연합군이 프랑스의 노르망디를 침공하는 오버로드 작전이 시작되었다. 노르망디 내륙으로 뛰어내린 연합군 공정부대가 해 뜨기 전까지 컴컴한 수풀과 나무 사이에서 독일군과 싸우는 사이 군인 20만 명을 태운 함정 5천 척이 침공 해변 다섯 곳 앞바다로 각각 나뉘어 집결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함대였다. 대대적으로 함포를 쏘고 공중에서 맹렬하게 폭격을 마친 오전 6시 30분, 수천 명의 군인이 침공 제1파로 물살을 가르며 해변으로 향했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뱃멀미와 롬멜이 단단히 준비해 놓은 대서양 방벽에 막혀 쉽게 상륙할 수 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예상외로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상륙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막대한 손실을 입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상륙 해변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 연합군은 나치 독일이 점령한 유럽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연합군이 침공 해변 다섯 곳에 발을 디딘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아이젠하워는 성명을 발표할 것을 지시했다. 오전 9시 33분, 공보 비서 어니스트 뒤퓌 대령은 준비한 발표문을 전 세계에 방송했다. “아이젠하워 대장의 지휘 아래, 강력한 연합군 공군의 지원을 받는 연합군 해군이 오늘 아침 프랑스 북부 해안에 연합군 육군을 상륙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자유세계가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1944년 6월 6일,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이자 지상 최대의 작전이 펼쳐졌던 디데이가 저물었다. 디데이의 끝은 독일 제3제국 멸망의 시작이었다. 히틀러의 제3제국은 이후로 1년도 존속하지 못하고 1945년 5월 8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참전자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옮긴이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물
이 책을 쓰는 데 바탕이 된 자료들은 연합군과 독일군으로 디데이에 참전했던 사람들,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 그리고 프랑스 민간인들에게서 얻었다. 지은이는 디데이에 참전한 생존자를 찾아 3년에 걸쳐 7백여 명을 면담했다. 면담자들은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 있는 사람들로, 이들 가운데 383명의 경험담이 본문에 녹아 있다. 또 면담자들이 제공한 물에 젖은 흔적이 있는 전투지도, 너덜너덜해진 일기장, 사후검토 보고서, 상황일지, 전문철(電文綴), 근무 명령서, 사상자 명단, 개인적인 편지와 사진 같은 다양한 기록들과 공식 역사 같은 공식적인 기록을 참고하여 책을 집필했다.
한편 이 책의 ‘주요 인물’, ‘프롤로그’, ‘에필로그’, ‘The Longest Day의 유산’, 그리고 사진과 지도 등 시각 자료와 옮긴이 주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더한 것이다. ‘주요 인물’에는 본문에 소개된 주요 독일군, 연합군, 프랑스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독자들이 각 인물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 수 있게 했다. ‘프롤로그’에서는 노르망디 침공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에필로그’에서는 디데이 이후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The Longest Day의 유산’은 이 책이 출간된 후 여러 분야에서 끼친 영향을 이야기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제2차 세계대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옮긴이는 엄청난 노력으로 본문과 관련된 다양한 지도(18컷)와 사진(93컷)을 모아 독자들이 본문 내용을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옮긴이 주가 가장 주목할 부분이다. 옮긴이는 전문적인 직업 군인으로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옮긴이 주에 군사 용어, 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배경과 당시의 사회적, 시대적 상황, 관련 인물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담았을 뿐 아니라 출간 이후 밝혀진 사실들을 덧붙여 원서를 통해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내용까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고전
이 책은 1959년에 초판이 나온 이후로 미국에서만 3천500만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는 등 디데이를 다룬 수많은 책 중에서 맨 먼저 언급되면서 꼭 읽어야 할 고전으로 추천되어 왔다.
그렇다면 노르망디 침공 7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쓰인 지 50년이 넘었지만 출간 당시 쏟아진 서평대로 이 책은 노르망디 침공의 배경과 디데이 하루의 전황을 두루 살펴보고 큰 틀에서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용하다. 대규모 전쟁을 기획하는 과정, 부하의 목숨을 담보로 힘든 결정을 내리는 지휘관의 고뇌, 전장의 불확실성을 넘어서는 용기와 전장의 불확실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참전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짜임새 있게 엮어 실감나게 그려 낸 지은이의 능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이 책은 전쟁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전쟁사라기보다는 전쟁 한복판에서 디데이를 준비한, 그리고 디데이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현실에 움츠리지 않고 악을 무너뜨린다는 굳은 의지로 디데이에 몸을 던진 자유인들의 이야기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침공 작전을 군사적으로 잘 이해하면서 전쟁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영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59년 출간 후 1994년 디데이 50주년을 맞아서는 사이먼 앤드 슈스터Simon & Schuster 사가 재출간했으며, 디데이 70주년을 기념하여 2014년 5월 1일 배런스Barron’s 교육출판사가 원저에 사진, 지도, 당시 보고서 등을 대폭 보강한 한정판을 출간했다. 한편 1962년에는 존 웨인을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우리나라에서는 ‘지상 최대의 작전’으로 1965년에 개봉됨)로도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다.

책 속에서

롬멜의 부대는 철조망을 여러 겹 두른 토치카, 콘크리트 벙커, 교통호에서 지뢰와 장애물이 엄청나게 설치된 해안선을 내려다보면서 연합군을 기다렸다. 롬멜이 지휘하는 포병은 모래사장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진지에 배치된 채 해변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도록 몇 번이고 조준까지 마쳤다. 심지어 포 몇 문은 해안에 있는 집 아래 감춘 콘크리트 포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포들은 바다가 아니라 연합군 돌격 병력이 모습을 나타낼 해변을 직접 겨누었다.       ― 73쪽 ―
                                                           
이제 아이젠하워 차례였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그가 모든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하는 내내 방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앞에는 스미스 중장이 앉아 있었다. 스미스는 아이젠하워가 깍지를 낀 채 말없이 탁자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누구도 대신하거나 도와줄 수 없는 최고사령관의 고독을 읽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누구는 2분이, 다른 이는 5분이 지났다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긴장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드디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 썩 내키지는 않지만 명령은 내려야 합니다. ……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일어섰다. 피곤해 보였지만 조금 전보다는 긴장이 풀어진 것 같았다. 6시간 뒤 날씨를 다시 확인하러 열린 짧은 회의에서 아이젠하워는 결정을 재확인했다. 디데이는 6월 6일 화요일로 확정되었다.       ― 122~123쪽 ―

역사상 유례없이 거대한 이 함대는 느리다 못해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영국해협을 건넜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행렬이 이어졌는데, 이는 넵튠 작전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이동 방법이었다. 잉글랜드의 항구와 포구에 정박해 있다 쏟아지다시피 나온 배들은 두 줄로 호송 선단을 이루어 해안을 따라 이동하다가 와이트 섬 남쪽에 있는 해상 집결지로 모였다. 이 해상 집결지는 ‘피커딜리 광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곳에 모인 배들은 승선한 부대가 상륙할 해변을 기준으로 집결한 뒤 미리 정해진 자리에 정렬했다. 호송 선단 대형에서 어디에 있을지는 사전에 면밀하게 검토해 미리 정해 놓았다. 해상 집결지를 벗어난 호송 선단은 침공 해변으로 이어지는 항로를 따라 노르망디로 항해를 시작했다. 항로에는 이미 부표가 모두 설치되어 있었다. 호송 선단이 노르망디에 접근하면 고속 항로와 저속 항로로 다시 나뉘면서 최종적으로 항로는 모두 10개가 되었다. 소해정을 필두로 전함과 순양함이 뒤를 따르는 함대의 선두에는 마치 털이 곤두선 것처럼 레이더와 안테나가 빽빽하게 솟은 지휘 함정 5척이 있었다. 이들 함정은 유럽 침공을 총지휘하는 두뇌 역할을 했다.
눈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배가 있었다. 당시 배에 타고 있던 군인들은 이 역사적인 함대를 인생에서 목격한 가장 인상적이고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 165쪽 ―

짙은 어둠에 둘러싸인 노르망디에서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210명에 이르는 선도 부대는 불 꺼진 농촌 가까이에서, 또는 고요한 마을 외곽에서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고 무척 애를 썼다. 예나 지금이나 적지에 뛰어들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운 좋게도 예정된 곳에 정확히 내려앉은 선도병들은 잉글랜드에서 미리 연구했던 것과 같은 뚜렷한 지형과 지물을 보고 자기가 있는 곳을 식별했다. 운이 좋지 못한 이들은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들고 자신의 위치를 알려고 애썼다.       ― 198쪽 ―
                              
디데이가 시작되고 얼마 동안 연합군을 힘들게 만든 것은 독일군이 아니라 노르망디의 자연이었다. 연합군 공정부대에 맞서 디브 강을 미리 침수시킨다는 롬멜의 계획은 이미 톡톡히 성과를 내고 있었다. 침수된 디브 계곡에 만들어진 호수와 웅덩이는 공정부대에게 말 그대로 지옥의 문이었다. 제3낙하산여단 병력 중 많은 수가 마치 자루를 탈탈 털어 흩어지는 색종이처럼 디브 계곡 일대로 떨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불운은 엎친 데 덮친 것처럼 계속 이어졌다. 짙은 구름 속에서 조종하던 수송기 조종사들 중 몇몇은 디브 강 하구를 오른 강 하구로 착각하고는 공정부대원들을 뛰어내리게 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사방에 늪지와 웅덩이가 널린 젖은 땅이었다. 계획대로라면 가로와 세로 각각 1.5킬로미터 정도 되는 강하 지대로 뛰어내렸어야 할 제9낙하산대대원 700여 명은 80킬로미터가 넘는 시골, 그것도 대부분이 웅덩이인 곳으로 흩어졌다. 고도로 훈련을 받은 이 부대가 이날 밤 맡은 임무는 메르빌에 있는 포대를 공격해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장 어렵지만 가장 신속하게 끝내야 하는 임무였다. 결과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대대원 700여 명 중 상당수는 며칠 뒤에야 부대에 다시 합류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이들은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많은 수는 수송기에서 뛰어내린 이후 다시는 전우를 볼 수 없었다.       ― 211~212쪽 ―
                    
미군 공정부대원들은 작전 개시와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힘들게 싸워야 했다. 영국군 공정부대가 그런 것처럼, 제101공정사단과 제82공정사단 또한 강하와 동시에 온 사방으로 뿔뿔이 찢어졌다. 제82공정사단의 505낙하산보병연대만이 강하지대에 예정대로 착지했을 뿐이었다. 또 수송기에 싣고 온 장비의 60퍼센트를 잃어버렸는데 그 대부분은 무전기, 박격포, 탄약이었다. 더 안 좋은 것은 많은 공정부대원이 길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낯선 땅에 혼자 떨어져 혼란스러운 데다, 알아볼 만한 지형과 지물은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수송기가 셰르부르 반도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 데는 12분이면 충분했다. 이 말은 날아가는 수송기에서 너무 빨리 뛰어내리면 서쪽 해안과 침수지대 사이 어딘가로 떨어진다는 뜻이고, 조금이라도 늦게 뛰어내리면 영국해협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공정부대원 중 일부는 비행기에서 이탈하는 시점을 맞추지 못해 동쪽의 예정된 강하지대가 아니라 셰르부르 반도 서쪽에 훨씬 가깝게 착지했다. 장비를 짊어져서 몸이 무거워진 공정부대원 수백 명은 메르데레 강과 두브 강 때문에 만들어져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늪으로 떨어졌다. 많은 수가 익사했는데 실제 물의 깊이는 60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다. 한편 비행기 에서 늦게 뛰어내린 이들은 어둠 아래 노르망디가 있으리라 믿었지만 이내 영국해협으로 사라져 버렸다.   ― 231쪽 ―                                 

지상 최대의 작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최초 침공 부대원으로 디데이를 시작한 약 1만 8천 명의 미군, 영국군, 그리고 캐나다군은 노르망디 전장의 측면을 맡아 싸웠다. 연합군의 침공 해변 다섯 곳으로는 5천 척의 강력 한 침공 함대가 서서히 다가왔다. 이 중 맨 앞에 있는 배는 미 해군 공격수 송선 베이필드였다. 유타 해변으로 상륙하는 미 해군 침공부대 U의 지휘관 문 해군 소장이 지휘하는 베이필드는 유타 해변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닻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거대한 침공 계획을 느리기는 하지만 착실히 행동으로 옮긴 반면, 독일군은 침공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도 여전히 이를 모르고 있었다. 독일군이 침공을 알아채지 못한 데는 몇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 독일군은 날씨가 침공에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둘째, 독일군은 정찰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독일군은 노르망디에 비행기를 몇 대만 배치했는데 그나마도 모두 요격돼 버려 항공 정찰은 거의 하지 못했다. 셋째, 독일군은 연합군 이 침공하면 반드시 파-드-칼레로 들어오리라는 아집에 빠져 있었다. 그 밖에 지휘 관할 지역이 중첩되거나 혼란스럽기도 했고, 레지스탕스에게 알리는 암호 전문을 해독하고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모든 요소가 더해지면서 독일군은 연합군의 침공을 까맣게 몰랐다. ~ 연합군 공정사단들이 노르망디에 발을 디딘 지도 2시간이 넘었다.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노르망디에 주둔하는 독일군 지휘관들뿐이었다. 산발적인 상황보고가 몇 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독일군은 마취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환자처럼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 243~244쪽 ―
                                                          
상급 사령부가 무엇이 옳은 정보인지 몰라서 허둥대거나 결정 내리기를 망설이고 있었던 데 반해, 연합군 공정부대와 맞닥뜨린 독일군 병사들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B집단군과 서부전선 사령부의 장군들과는 달리 수천 명의 독일군은 독일 병정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이미 본능적으로 전투에 돌입했다. 이들은 마치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침공이 지금 바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미·영 공정부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후 많은 독일군이 고립된 상태에서 연합군과 직접 교전했다. 어마어마한 준비를 해 완성한 해안 방어선 뒤에 있던 또 다른 독일군 수천 명은 경보가 발령된 뒤 연합군이 어디를 침공하든지 즉각 격퇴할 준비를 한 채 대기했다. 독일군은 불안해했지만 싸워서 이기겠다는 결의로 무장했다.       ― 254쪽 ―
                                                               
하늘에서 유럽을 침공한 연합군 공정사단들은 상륙 부대가 발판으로 쓰는 데 필요한 지역을 장악한 채 본격적으로 바다에서 침공할 전우들을 기다렸다. 침공이 성공하면 이 둘은 히틀러가 점령한 유럽으로 돌진해 가게 되어 있었다. 미군 상륙 부대는 유타 해변과 오마하 해변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이미 대기 중이었다. 미군의 에이치아워는 오전 6시 30 분이었다. 이제 에이치아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하게 1시간 45분이었다.       ― 272쪽 ―
                       
옅은 해무 사이로 드러난 수평선 위에는 거짓말처럼 배가 가득했다. 세상에 배라고 하는 배는 다 모아 놓은 것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배가 마치 그곳에 몇 시간 동안 있었던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보이는 배가 수천 척이었다. 이 많은 배가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바닷속에서 솟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 같았다.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던 플루스카트는 얼어붙은 것처럼 할 말을 잊은 채 비틀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성실한 독일 군인이던 플루스카트가 알던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277~278쪽 ―

세상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새벽이 열렸지만 이런 새벽은 처음이었다. 약간은 음산하면서도 흐린 빛 사이로 장엄하다 못해 경외심까지 드는 연합군 함대가 노르망디 해안에 있었다. 바다 위, 눈 닿는 곳이면 어디든 어김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배가 보였다. 셰르부르 반도에 있는 유타 해변 끝부터 수평선을 가로질러 오른 강 하구 가까이 있는 소드 해변까지 함정에 매단 전투 깃발이 나부끼지 않는 곳이 없었다.       ― 280쪽 ―
                                       
오마하 해변과 유타 해변을 맡은 미군은 상륙 계획을 거의 분 단위로 세웠다. 에이치아워 5분 전인 오전 6시 25분, 수륙양용전차 32대는 제29보병사단이 담당하는 해변 중 도그 화이트 해변과 도그 그린 해변을 향해 출발해서 바다와 뭍이 만나는 지점에서 사격 진지를 형성하고 공격의 1단계를 엄호한다. 에이치아워인 오전 6시 30분, 전차상륙주정 8척이 들어와서 이지 그린 해변과 도그 레드 해변에 더 많은 전차를 직접 내려놓는다. 1분 뒤인 오전 6시 31분에는 강습하는 병력이 무리를 지어 모든 해변에 상륙한다. 그로부터 2분 뒤인 오전 6시 33분에는 수중폭파대원들이 지뢰와 장애물을 파괴해 약 40미터 폭의 통로 16개를 만든다. 이런 살 떨리는 작업을 끝내는 데 주어진 시간은 27분뿐이었다. 오전 7시부터는 주력인 5개의 공격 파가 6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상륙할 예정이었다.       ― 286~287쪽 ―
                                                     
목표를 코앞에 두고 상륙주정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오마하 해변 앞에서 10척, 유타 해변 앞에서 7척이 침몰했다. 침몰한 상륙주정에 타고 있다 바다에 빠진 장병들 중 일부는 뒤따라오던 구명정에 구조되었으며, 일부는 구조될 때까지 여러 시간 동안 바다에 떠 있었다. 그래도 이들은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목청 높여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를 누구도 듣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장병들은 장비와 탄약이 끌어당기는 대로 물속 깊이 끌려 들어가면서 다시는 세상 구경을 하지 못했다. 상륙 해변을 바로 앞에 두고도 총 한 번 제대로 쏴 보지 못하고 전사한 것이다.    ― 304쪽 ―
                                    
소음이라는 소음은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그곳에, 다른 것과는 명확히 구분되면서 점점 더 가까워지는 소리가 하나 있었다. 문제는 죽음이 이 소리와 함께 왔다는 것이었다. 독일군이 쏘아 대는 기관총탄은 마치 땅딸보처럼 보이는 강습주정 이물의 강철판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독일군 포병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곡사포탄과 박격포탄이 마치 비 오듯 쏟아졌다. 길이 6킬로미터가 넘는 오마하 해변을 따라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독일군은 미 군 강습주정을 뭉개 버릴 것처럼 화력을 집중했다.
이것이 바로 에이치아워였다.       ― 309쪽 ―

바다가 끝나고 뭍이 시작되는 곳이면 어김없이 미군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일부는 발을 디디는 즉시 총에 맞아 죽었고, 일부는 애타게 의무병을 찾다가 천천히 들어오는 밀물에 빠져 죽었다. ~ 도그 그린 구간에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진 최초 몇 분 동안 중대 하나가 완전히 몰살당했다. 중대원 가운데 강습주정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된 사투를 극복하고 해변에 발을 디딘 사람은 전체 인원 중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중대의 장교들은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그도 아니면 실종되었다. 중대원들은 무기도 없이 충격에 빠진 채 하루 종일 절벽 아래 웅크리고 있었다.       ― 318쪽 ―
                                                 
상륙작전에 참여한 영국군 대부분은 장애물이 가장 상대하기 힘들고 어렵다고 느꼈다. 영국군이 장애물을 통과하는 동안 소드 해변, 주노 해변, 골드 해변에서는 독일군의 저항이 있는 듯 없는 듯 산발적이었다. 물론 독일군이 치열하게 반격하는 곳도 있었지만 저항이라 해 봐야 대부분은 가벼웠다. 심지어 저항이 전혀 없는 곳도 있었다.      ― 348쪽 ―
                             
허락 없이 기갑사단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한 히틀러의 명령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요들을 보면서 바를리몬트는 충격을 받았다. 국방군 총사령부의 예비대인 기갑교도사단과 제12친위기갑사단이 히틀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적이 공격하면 양동이건 아니건 일단은 기갑사단을 즉각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룬트슈테트의 생각이었다. 이는 바를리몬트도 동의하는 바였다. ‘즉각’이란 사실상 자동적이라는 뜻이었다. 바를리몬트가 보기에는 공격하는 적과 직접 맞서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대와 자산을 모두 가지고 운용하는 것이 옳았다. 특히나 그런 역할을 맡은 사람이 ‘독일 흑기사단’의 마지막 기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룬트슈테트처럼 경륜 있는 전략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요들은 기갑사단의 통제권을 룬트슈테트에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런 모험은 할 생각도 없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면담을 하면서 바를리몬트가 말했다. “요들은 히틀러도 자기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요들은 히틀러라는 절대 지도자가 이끄는 나라의 내부 지도력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보여 주는 예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요들과는 논쟁하려 들지 않았다. 바를리몬트는 블루멘트리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기갑사단을 투입할지 말지는 요들이 군사 천재라고 믿는 한 남자, 바로 히틀러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 367쪽 ―

그랑캉에서 25킬로미터쯤 떨어진 바이외. 오마하 해변의 레지스탕스 정보 책임자 기욤 메르카데르는 아내 마들렌과 함께 거실 창문 앞에 선 채 복받쳐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 독일군 주력 부대가 마을에 주둔했던 지난 4년은 정말 지긋지긋하고 끔찍했다. 이제 독일군은 모두 빠져나간 것 같았다. 멀리서 계속 나는 포성을 들으며 메르카데르는 곧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직감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메르카 데르는 레지스탕스 대원을 모두 규합해 나치 잔당을 몰아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지만 무선으로 들어오는 전문은 ‘봉기는 없을 것이니 침착하게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려웠지만 메르카데르는 지난 4년 동안 기다리는 것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 “곧 해방이 될 거야!” 메르카데르가 아내에게 말했다.      ― 389~390쪽 ―
                      
연합군이 침공 해변 다섯 곳에 발을 디딘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아이젠하워는 전혀 다른 성명을 발표할 것을 지시했다. 오전 9시 33분, 공보 비서 어니스트 뒤퓌 대령은 준비한 발표문을 전 세계에 방송했다. “아이젠하워 대장의 지휘 아래, 강력한 연합군 공군의 지원을 받는 연합군 해군이 오늘 아침 프랑스 북부 해안에 연합군 육군을 상륙시키기 시작 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자유세계가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순간이었다.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안도, 들뜸, 그리고 불안이 섞인 복잡한 것이었다. 「타임스」는 디데이 당일 “마침내, 긴장이 깨졌다.”라는 사설을 실었다.       ― 395쪽 ―
                                                 
제21기갑사단의 역습이 실패했다는 나쁜 소식이 B집단군 사령부에 들어왔다. 소식을 듣고 절망한 랑이 롬멜에게 말했다. “사령관님, 적을 다시 몰아낼 수 있겠습니까?”
어깨를 으쓱하고 주먹을 펴며 롬멜이 대답했다. “랑, 나도 적을 몰아내기를 바라네.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까지는 늘 성공하지 않았나.” 롬멜은 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피곤해 보이는군. 잠 좀 자게. 긴 하루였어.” 말을 마친 롬멜은 돌아서서 복도를 지나 집무실로 들어갔고 집무실의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랑은 그런 롬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423~42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