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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동과 계급, 그 멜로드라마: 미국 인류학자가 만난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
낸시 에이블먼 | 강신표, 박찬희 |
가격: 25,000원
쪽수: 472
발행년/월/일: 2014.03.15
크기: 152×224
ISBN: 978-89-337-0676-3 03330
차례
 
한국어판에 부쳐
머리말
감사의 글
 
제1장 서론: 사회이동의 멜로드라마
이 책의 내용 | 1990년대: 사이에 끼인 시대 | 이야기의 힘 | 이야기 | 계급 | 여성 | 멜로드라마 | 다시 여성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너머로
 
제2장 여덟 명의 여성들
만남의 경로와 조사 과정의 뒷이야기 | 계급 지도
 
제3장 키워드
한 부류의 여성들 | 또 다른 부류의 여성들 | 젠더와 욕심
 
제4장 계급과 교육
교육 엄마와 마침내 대학 진학에 성공한 아들 | 청소부 아주머니와 대학에 가지 않은 아들들 | IMF 위기 이후 그리고 더 먼 미래를 위한 교육 도박
 
제5장 사회이동의 ‘사실’과 ‘허구’
통세대적으로 젠더화된 관점 | 한국 사회이동의 현대사 | 여성의 기여 인정하기: 사회이동의 재해석 | 1990년대의 세탁소 아주머니 | 2000년 여름의 세탁소 아주머니
 
제6장 성격이 말한다
자아와 성격 | 영화 아주머니
 
제7장 흔들리는 남성의 위치: 남성, 남성성, 그리고 국가
남성의 위상변화 | 사회변혁의 멜로드라마: 영화 속 ‘남성의 주체성’ | 국가와 젠더 | 미연이 엄마: 서사 속의 젠더
 
제8장 가족 안의 계급
혜민이 할머니: ‘우리 쪽’ 여자와 ‘그쪽’ 여자들 | 미연이 엄마: 부자 친척과 뒤바뀐 운명
 
제9장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남편과 그녀 자신 | 경제활동과 그녀 자신 | 교육과 그녀 자신 | 자녀교육과 그녀 자신 | 미연이 엄마: 조국, 그녀 자신
 
제10장 결론: 압축 성장 시대를 통과한 삶
압축적 근대성 | 이들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글을 맺으며
 
해제 및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한국은 지난 20세기에 해방과 남북분단, 한국전쟁, 남한의 고도 경제성장과 급격한 사회 변화, IMF 등 100여 년 동안 엄청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변동을 겪어 왔다. 그 파고와 속도가 너무나 높고 빠른 나머지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남는 데 급급하였다. 하지만 모든 게 뒤섞이고 끓어 넘치는 듯한 변혁의 도가니 밑바닥에는, 숨겨지고 잊혀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 사실과 이야기들이 가라앉아 있다. 그것들을 한 벽안(碧眼)의 인류학자가 건져 올려 우리 앞에 보여 주려 한다.
 
가족과 여성의 관점에서 분석한 한국의 사회이동
그 벽안의 인류학자는 낸시 에이블먼 일리노이대 교수이다. 에이블먼 교수는 몇 년 전 한 국내 일간지에 ‘한국학 한류를 이끄는 학자들’ 중 한 명으로 소개될 만큼 이름 있는 한국 관련 연구자이다. 한국의 농민운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LA 폭동과 미국 내 한인에 대해 연구하던 중 한국의 사회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사회학은 사회이동 연구에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나마 남성의 생산노동과 개인의 직업 이동을 중심으로 계급정체성과 사회사, 사회생활을 연구해 왔다. 저자는 이와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한국의 사회이동을 분석한다. 바로 사회이동에 대한 통세대적 접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족과 여성이 있다. 저자의 기본적 시각은 다음과 같다. 가족은 계급정체성이 전승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 계급정체성은 가족의 경험에서 발전해 나가거나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개되었으며, 이런 경험들은 성인의 생활과 욕구 안에서 주관적으로 기억되고 재생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한국의 사회이동을 분석하는 작업에 저자는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을 가져온다. 이야기, 계급(과 사회이동), 여성(젠더), 그리고 멜로드라마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덟 명의 여성들은 자신과 가족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곱씹으면서 재해석하고 자신과 가족의 정체성을 만들어 갔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어떤 사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특정 사회이념적 체계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해석이다. 사회이념적 체계와 개인의 해석은 때로는 일치하고 때로는 상충하면서 긴장과 애매함, 혼란을 빚어냈다. 계급정체성은 그 과정에서 전승되거나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부장적 유교문화와 남성 중심적 국가주의가 팽배했던 한국 사회에서 가족 내 계급을 구분하는 데 젠더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급변하는 한국 사회를 산 이 여성들이 이야기한 자신과 가족의 삶은 특정한 서사적 관행과 감성을 드러냈는데, 저자는 이것을 ‘멜로드라마’의 그것과 같다고 본다. 급격한 사회 변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우연한 사건과 극적 반전, 감정 과잉 등이 특징인 멜로드라마의 감성이 한국 사회에도 팽배했다는 것이다(멜로드라마라는 장르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등장했다). 전 재산을 소매치기당하고 남편과도 헤어져 작은 어촌에서 행상을 하며 살아가는 여동생을 이야기할 때, 어릴 때 유복하게 자랐지만 청소년기에 친척집에서 식모살이하다시피 살았고, 땅 투기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지만 바람기 있는 남편과 아들 교육 때문에 진을 뺀 여성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 그 이야기는 멜로드라마적 서사가 되고 이들은 멜로드라마의 작가가 된다.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생생한 시대적 기록
그러나 이 개념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여덟 명의 여성들은 우리의 어머니이자 할머니 세대이다. 이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또는 텔레비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복부인, 극성 엄마, 청소부, 교수 부인, 영화를 좋아하는 아줌마, 세탁소 주인, 구멍가게 주인, 전업주부 등 전형적인 사회적 유형으로 불리어 왔지만, 이들은 급격한 사회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투쟁했고, 한국 사회와 자신의 활동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주체적 존재였다. 지은이는 이들과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20여 년 동안 교유해 왔다. 단순히 조사 대상자로서 이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같이 밥 먹고 차 마시고 수다 떨고 심지어 한 집에 살면서 지은이는 학자이자 외부자로서, 무엇보다 같은 여성으로서 이들의 생각과 감성을 청취하고 공유하고 기록하였다. 한 외국인 인류학자의 시각을 통해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의 내용
제1장에서는 이야기, 계급, 여성, 멜로드라마 등 이 책의 뼈대를 구성하는 주요 개념과 이론적 배경을 검토한다. 제2장에서는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을 소개한다. 이들을 어떻게 만났으며 이들의 계급 위치와 정체성은 어떠한지를 서술한다. 제3장에서는 이들의 이야기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요 단어들을 검토하면서 그 안에 담긴 여성들의 생각을 분석해 본다. 제4장에서는 여성들의 자녀교육 방식과 생각을 들음으로써 사회적 재생산과 사회이동의 전략을 살펴본다. 또한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진 IMF 위기의 순간으로 떠나 본다. 제5장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사회이동을 총괄적으로 살펴보고, ‘세탁소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이 가족의 사회이동을 어떻게 고찰하는가를 검토한다. 제6장에서는 매우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성격’과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사실은 매우 사회적인 것이라는 문제를 논의한다. 제7장에서는 남성 주체성의 상실과 그로 인한 긴장을 1950~1960년대 한국영화 세 편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제8장에서는 가족과 친척들의 관계를 관리하고 이들을 묘사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이 사회의 작동원리와 정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유추해 본다. 제9장에서는 지은이와 가장 친밀했고 자아성찰적이었던 ‘미연이 엄마’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한 여성의 생각에 심도 있게 접근한다. 마지막으로 제10장에서는 한국의 압축적 근대성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이 기여한 바를 제시한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나는 이 여성들의 사회이동 이야기에서 한국 사회의 격변으로 인해 생긴 사회적・정치적・문화적 경합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합의 관점에서 보아야만 변화 그 자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감히 단언한다. 따라서 이 책은 정의로운 사회, 행복한 가정 등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이야기에 깃든 경합을 다루고 있다. …… 이 책의 이론적 기둥 중 하나는 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큰 사회적・정치적・문화적 투쟁을 ‘반영’하거나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그러한 변혁의 일부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이는 나뿐만 아니라 현대의 대다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공유하는 관점이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의 변혁 속에서 삶과 감수성이 만들어지는 데 일정 부분 뚜렷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므로 나는 변혁의 생생함―그 느낌―은 사람들과 서사, 즉 이 책에서 살펴본 이야기들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이해하고 싶다.  (41쪽)
                      
이 책에서는 ‘멜로드라마’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넘치고 후한) 감정과 줄거리(이상하고 극단적인 반전, 우연의 일치, 인연, 우연한 만남 등) 등의 과잉으로 특징지어진 연극적・문학적・영화적 관습의 집합체로 사용한다. …… 나는 급격한 사회변혁의 시대와 장소에서 언제나 그러했듯이, 현대 한국사회에도 멜로드라마적 감성이 팽배해 있다고 생각한다. 매우 많은 멜로드라마 이론가들이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가져온 사회적․계급적 변혁과 더불어 이 장르가 등장했다고 단언한다. 탁월한 멜로드라마 이론가인 피터 브룩스는 멜로드라마를 “표현과 표상의 형태”인 동시에 “경험의 해석과 이해의 수단”이라고 밝혔다. 나 또한 ‘멜로드라마적 감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어떤 특정 텍스트들의 속성(개인적 서사 포함)뿐만 아니라 대화적 문맥(그들을 둘러싼 이야기)까지 지칭하는 브룩스의 견해를 따른다. …… 큰 틀에서 말하자면, 나는 멜로드라마적 텍스트와 서사적 관습이 한국에서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것들이 급변하는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극화했고, 관객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68~69쪽)
 
“어찌 됐든 간에 엄마는 아이들 앞에서 남편을 치켜세워야 해.”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죠?”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사셨고, 사회에서도 다들 그랬지.” 또 다른 대화에서 그녀는 자기 어머니도 착한 여자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그녀의 주장은 여성적인 미덕이나 온순함의 차원에서 자녀교육에 대한 식견으로까지 이어진다. 더 나아가 그녀는 공식적․비공식적 경제활동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이 활동을 통해 일부 여성들은 부수입 창출의 길로 뛰어들었고, 많은 한국인들은 이 여성들이 부정부패의 온상을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점은, 남성 중심의 부패 사슬과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활동이 주부 관리자들, 즉 여성의 소행으로 낙인찍혔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은 노태우, 김영삼 정권 당시 공개적인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는데, 다양한 공직 부패 척결운동 등이 펼쳐지는 가운데 부유한 자본가 및 정치가 집안이 자행한 불법 활동의 책임이 그 집 부인들에게 전가되었다. 이들은 (실제보다 부당하게) 한국의 사회악으로 상징화되어 언론의 희생양이 되었다. 사실 군대, 정부, 유교 등 남성적 제도와 이념이 한국적 자본주의를 만들어 냈지만 여성의 탐욕과 과소비가 자주 사회적・도덕적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받아 왔다.   (127~128쪽)
 
우리가 만날 때마다 청소부 아주머니는 한국의 발전은 자기 가족 같은 사람들의 힘든 노동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 수출품들은 전부 다 우리의 노동으로 만들어낸 거야!” 한번은 불쑥 이런 이야기도 했다. “우리 큰딸은 나보고 너무 슬퍼하지 말래. 자기는 아들 공부를 잘 시킬 거라면서.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게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니?’” 이런 마음속 회한과는 별도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1995, 1996년에 만났을 때의 대화를 잘 살펴보면 아들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청소부 아주머니의 생각이 복잡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됐든 아들 중 하나라도 대학에 들어갔다면 그녀는 대단히 기뻤을 것이다. 특히 교육 엄마를 떠올려 보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청소부 아주머니의 욕심이 어느 정도까지 젠더적이었냐는 것이다. 그녀에게 딸들의 교육은 분명히 덜 중요해 보였다.   (193쪽)
 
학교 문턱에도 안 가봤지만 세탁소 아주머니는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고, 항상 세상 정보에 밝아야 한다고 철저히 믿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열렬히 소설을 애독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바쁜 생활을 틈 타 “신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는 헤드라인과 사설을 숙독했다. 자신의 마음이 넓은 것은 독서를 하고 항상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자신의 가정교육에 감사했다. “사람은 학교교육이나 가정교육을 통해 마음이 넓어질 수 있어.”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한 주부들에 대해 자주 불만을 토로했다. 이 중에는 그녀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이웃 여자들과 올케들도 포함되었다. 그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에게 조금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자기들에게 주어진 기회로 무엇을 했나?” 그녀는 그들―“심지어 남편조차도!”―이 그녀가 완전히 무학이라는 것을 짐작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교육받았더라면, “내가 때를 안 놓치고 공부만 했더라도,” “정말로 위대한 여성”이 되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35쪽)
 
그녀 가족의 사회이동사는 자신의 성격이 달랐더라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가족이 아직도 부당한 사회적 위계질서하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사회적 결함에 대한 이야기도 된다. 영화 아주머니는 한국 사회(이동)사의 중심에 여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성격은 대부분 가정에서 형성되므로 여성이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268쪽)
 
혜민이 할머니와 미연이 엄마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계급 간 거리는 사회과학적 범주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 가치관, 젠더, 성격 등의 본능적인 관점에서 설명된다. 간단히 말해, 계급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식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353쪽)
 
“그 이야기 알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막달라 마리아를 욕하지 말라고 하시잖아. 그녀의 죄가 바로 그들 모두의 죄라고 하시면서. 노태우(당시 한국 대통령)도 똑같아. 그 사람만의 죄가 아니야.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았어. 그의 죄보다도 나는 그 사람한테 손가락질부터 하는 사람들이 더 미워. 한국 사회 전체가 그렇게 돌아갔어.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온 나라가 똑같은 짓을 했지. 직장에 다닐 때 나는 뇌물, 부정한 대가가 얽혀서 일이 성사되는 과정을 지켜봤어. 그때 결심했지. 나는 남자들의 세계에 기대어 살지 않겠다. 나 스스로, 내 방식대로 돈을 벌겠다고.”   (375쪽)
 
내가 이 여성들을 좁은 틀에 가두어 논했다면, 이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자. 이들에게 대표성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더 큰 질문은 아마도 이들이 기여한 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이들이 가족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이야기꾼과 관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들이 살았던 장소와 시대의 감성에 중요하게 기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는 계급에 대한 감성도 포함된다. 이 여성들은 사회적 생활을 서사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중심적으로 참여했다. 즉,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가깝고 먼 친족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서사를 통해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을 구체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한국의 ―10대는 말할 것도 없고― 20~30대 젊은이들은 이 책의 여성들이 일생 동안 겪은 고생이 자신들의 인생과 꽤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들이 겪은 투쟁의 커다란 지형, 표현 방식, 감정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내가 여러 차례 주장했듯이, 거대한 변화는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가며 우리 모두를 이도 저도 아닌 위치로 몰아간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이 책에 소개한 세대 여성들의 언어와 이야기, 그리고 감성을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할 생각이 없다. 좀 더 대담해지자면, 이 여성들은 비슷한 세대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현대 한국의 일반적인 감성을 문자 그대로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다.   (4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