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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으로 말하는 한국인, 한국 문화
김열규 |
가격: 13,000원
쪽수: 192
발행년/월/일: 2013.06.05
크기: 신국판변형
ISBN: 978-89-337-0651-0(03380)
 책머리에 사람은 상징으로 산다
 
 첫째 대목 상징, 그게 뭔데
 
제1장 상징의 풀이 
   1. 온갖 것에 따라붙는 상징
   2. 사물이나 현상에 잠겨 있는 속내
 제2장 온 세상 그리고 문학작품에 어린 상징 
   1. 상징이 곧 세계고, 인간
  2. 사랑의 결정적 다짐-「소나기」
  3. 한 집안의 전통-「돌다리」
  4. 모든 일을 잊어버리게 되기까지-『좁은 문』
 제3장 속담에 수두룩한 상징 
   1. 속담 모르면 세상 모른다?
  2. 속담에서 상징의 구실
 제4장 신화가 말하는 상징 
 
 둘째 대목 상징의 갖가지 모습들, 모양새들
 
 제1장 하늘과 땅 사이에서 
   1. 하늘
  2. 땅
  3. 달
  4. 별
 제2장 자연에서 
  1. 산
  2. 물
  3. 바람
  4. 구름
  5. 바다
  6. 꽃
    7. 난초
 제3장 세상살이에서 
  1. 그네와 널
  2. 길
  3. 고개
  4. 나무
 
 제4장 짐승들, 동물들 
  11. 토끼
  12. 개와 강아지
  13. 여우
  14. 족제비
  15. 사슴
  16. 호랑이
  17. 곰
  18. 학
  19. 용
  10. 까치
  11. 제비
 제5장 이런 것 , 저런 것 
  1. 불과 불길
  2. 노인
  3. 할미
  4. 도깨비
  5. 집
  6. 창
  7. 붓
  8. 굿
  9. 빛깔
  10. 장
  11. 다리
 마무리 상징 다루기, 살아나가기
2013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한국학의 거장 김열규 교수가 풀어낸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깃든 다양한 상징!  사람을 동물과 구별하는 가장 큰 기준의 하나는 ‘말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의 사람다움을 짚어서 말할 때, 흔히 ‘말을 하는 인간’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데 ‘말을 하는 인간’에 견줄 만한 표현이 있다. 바로 ‘상징을 쓰는 인간’이라는 표현이다. 상징은 인간에게 ‘제2의 언어’와도 같다. 비록 일상의 언어와는 다르지만 일상의 언어에 버금하게 요긴하고 유효하게 작용하고 쓰이는 것이 상징이다. 따라서 상징을 인간 문화의 또 다른 언어라고 해도 크게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말을 하는 인간? 상징을 쓰는 인간?

‘인생의 가시밭길’, ‘신혼살림의 깨소금 맛’, ‘아리랑 고개는 눈물의 고개’, ‘바가지 긁기’, ‘삼일 의거의 불길’ 등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흔하게 쓰고 듣고 하는 말들이다. 입에 익고 귀에도 익은 표현들이다. 
이들 말에서 ‘가시밭길’, ‘깨소금’, ‘고개’, ‘바가지 긁기’, ‘불길’ 등등은 모두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이들은 차례대로 ‘고난과 고통’, ‘재미와 흥겨움’, ‘어려움과 힘겨움’, ‘잔소리하기’, ‘열정이나 정열’ 등을 나타낸다. 한국말에 깃든 이런 풍부한 상징은 한국인의 세계관과 인생관은 물론 나아가 한국 문화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훌륭한 백과사전의 구실을 한다.
이 책은 세상과 인간살이, 사물과 인물, 그리고 자연과 우주에 걸어서 한국인이 가꾸어온 정서와 감정, 지식과 사상 등을 상징을 통해 살펴본 책이다. 저자인 김열규 교수는 우리 주변에 흔하게 넘치는 상징의 다양한 모습들을 들어 ‘한국인은 어떻게 상징으로 사는가’라는 주제를 쉽고 편안하게 풀어냈다.
 
상징 다루기가 곧 살기다

 
첫째 대목인 ‘상징, 그게 뭔데’에서는 상징의 정의를 살펴보고, 온 세상과 문학작품에 어린 상징, 속담에 수두룩한 상징, 신화가 말하는 상징 등을 예로 들어 우리들이 살아가는 대목마다 마주치는 상징에 대해 설명한다.
둘째 대목인 ‘상징의 갖가지 모습들, 모양새들’에서는 하늘이나 산, 구름 같은 자연에서부터 토끼, 여우 등의 짐승, 그리고 도깨비나 집 등에 깃든 상징에 이르기까지 상징의 다양한 모습들을 살피면서 상징이 일상의 언어에서 어떻게 제구실을 다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삶의 궤적과 원형을 탐구해온 한국학의 거장답게 저자는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깃든 다양한 상징에 대해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저자는 우리들 인간이 ‘필경 상징으로 생각을 가꾸고 행동을 꾸려가고 인간끼리의 고리며 관계를 맺어간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이 상징에 의지하듯이, 관념이며 사상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우리들 누구나 살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상징의 활용이다. 결국 상징 다루기가 곧 살기인 셈이다. 우리 주변에 넘치는 상징의 풍부한 의미를 깨닫게 해줌으로써 우리의 사고며 행동까지도 풍요로워지게 만드는 책이다.
책 속으로(‘둘째 대목, 제2장 자연에서’의 ‘바람’ 중에서)
 
 
풍수風水라면 문자 그대로는 바람과 물인데, 그 뜻이 변해서 산수를 의미하고 자연을 뜻하기도 한다. 물은 바람결 따라 흔들리고 바람은 물결 따라서 설렌다. 그래서 바람과 물은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
물은 흘러서 움직여야 강물이 된다. 바람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생명을 잃는다. 아주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바람은 만사 다 제쳐놓고 변화를 상징한다. 새삼 말할 것도 없이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이다. 움직이는 공기가 곧 바람이다. 움직이다 보니 방향을 달리하기 마련이고 그 방향 따라 바람도 달라진다.
샛바람이면 동풍이고 하늬바람이면 서풍이다. 마파람은 남풍이고 된바람은 북풍이다. 서남 두 방향에 걸치면 늦하늬바람이 된다. 높새바람은 영동 지방에서 태백산맥 넘어서 영서 지방으로 부는 동북풍인데, 그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바람이다.
한편 바람은 그 성질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진다. 돌개바람이라고도 하는 회오리바람은 둥글게 나선형을 그리면서 몰아치는 바람이다. 선풍旋風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갑작스레 일어난 큰 사건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밀수범들 검거 선풍이 불다’라고 할 때의 선풍이 이에 해당된다. 산들바람은 부드럽고 고운 미풍微風이거나 연풍軟風인데, 이는 우리말로는 된바람이라고 하는, 사납고 거친 태풍이나 폭풍과는 사뭇 대조적인 바람이다.
바람은 워낙 변덕꾸러기다. 변화가 심하다. 강한가 하면 약하고, 느림보인가 하면 내달린다. 곱상하게 매만지는 듯이 하다가도 모질게 몰아치고 또 휩쓸기도 한다. 속삭이는 듯하다가는 으르렁댄다. 다사로운 듯하다가도 차갑게 토라진다. 간신간신 나뭇잎을 흔든 게 언젠데 순식간에 나무를 뿌리째로 뽑아놓는다. 그래서 변화무쌍이 바람의 상징이 된다.
그런 바람 가운데는 모순등가, 이를테면 서로 반대인데도 그 반대와 반대가 맞물려 있는 모순등가를 이루고 있는 바람도 있다. 풍력발전소나 풍차를 돌리는 바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아이들의 내달리는 손끝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저 바람개비에서도 바람은 동력이고 활력이다. 그런 바람이 폭풍이 되고 태풍이 되면 커다란 파괴를 의미하게 된다.
그렇기에 바람의 상징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별스레 다양하다.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이라고 할 때의 바람은 어쩌다 우연히 귀에 넣은 소문이기에, 기연가미연가하는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바람 잘 날 없다’고 하면 편하게 보내는 날이 없다는 뜻이니 끊이지 않는 말썽이나 사건이 곧 이 경우의  바람이다. ‘바람 따라간다’고도 하는데, 이 말은 미리 정한 길이 없다는 것이니 여기서의 바람은 정처 없음을 상징한다.
바람이란 말은 이 밖에도 쓰임새가 많다. ‘바람 넣다’라고 하면 공연히 남을 부추기고 꼬드기고 해서 마음 설레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야바위꾼이나 사기꾼마냥, 남을 부추기고 들뜨게 하는 사람을 ‘바람잡이’라고 한다. 이때의 바람은 마음의 흔들림을 상징한다. ‘바람 쐬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 말고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산책이라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푸는 것을 가리키니, 이 경우의 바람은 좋아지는 기분이다. 기분 풀이라고 해도 맞다. 그런가 하면 ‘바람맞다’라고들 하기도 한다. ‘그녀가 날 바람맞혔다’는 것은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바람은 변심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 들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바람은 들뜬 마음 또는 흔들리는 마음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바람이 자다’는 들뜬 마음이 가라앉음을 뜻한다. 이처럼 바람은 이래저래 흔들림이나 불안을 상징한다. 변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데 ‘바람나다’ 하면 좀 색다르다. 흔하게들 내뱉는 이 말은 ‘바람둥이’, ‘바람기’, ‘바람피우다’ 등등과 짝을 이루어 남녀 간의 어떤 사랑의 정황에 대해서 일러준다. 이때의 바람은 남성 같으면 이 여성 저 여성을 집적대는 마음보를, 여성이라면 이 사내 저 사내를 군것질하듯이 집적대는 마음보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런 건 어떨까.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 자루 나도 몰라 내던지고
말만 듣던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천봉이 노랫말을 붙인 <앵두나무처녀>라는 대중가요에서 이렇게 노래되는 바람은 얄밉기 반, 귀엽기 반의 마음가짐을 상징한다. 물론 ‘남편이 바람났다’고 하면 전혀 다른 바람이 된다. 멀쩡한 제 아내 두고는, 다른 여자에게 딴 수작 부리는 게 이 경우의 바람이다. 그는 한국식의 ‘돈후안Don Juan’이다. 그래서 바람은 사랑하는 마음의 흔들림을 의미하는 한편, 변심이나 변덕을 상징하기도 한다. 바람둥이가 용케 마음을 바로잡으면 그때는 ‘바람 잡는다’고들 일러왔다. 바람이 자서 마음이 안정되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말에서 바람이 남녀 사이의 사랑을 상징할 때는 사랑은 사랑이되, 좀 삐딱한 사랑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워낙 사랑이란 게 변심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자면 바람은 자연의 바람과 인간 마음의 바람, 크게 두 가지로 나뉨을 눈치챌 수 있다. 한데 그 어느 경우나 크게 보아서 바람은 변화며 변덕을 의미하는 비중이 보다  더 큰 편이라고 판단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