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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뇌로 마음을 보다
김동규 |
가격: 18,000원
쪽수: 288
발행년/월/일: 2013.02.05
크기: 152*210
ISBN: 978-89-337-0644-2 (03510)
책머리에   
 
I&Brain - 풋내기 의사의 성장기 
  브레인을 만지는 의사를 꿈꾸다 
  인생에 후회되는 일 한 가지
  쥐 접대 이론
  동물 납품업자 전 박사
  어느 13일의 금요일 밤
  신경외과 의사의 팔자
  세계 유일무이의 보직
  배 속으로 사라진 생애 첫 연구비
  청색전화, 백색전화
  선생님도 한약 드세요?
  정위기능 수술을 배우러 독일로 가다
  아프면 병원 가야지
  나의 뇌 건강법
  환자는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
 
You&Brain - 환자가 바로 스승
  아이 뇌가 없어요
  종교적 신념의 수혈 거부
  젊은 여성을 문진할 때의 필수 관문
  선생, 겁나게 출세했소
  머리가 붙은 쌍둥이
  경상대학교병원에서 만난 어느 노부부
  맨땅에 헤딩하기
  더 이상 숨죽이고 살지 않아도 되는 병
  환자가 바로 스승이다
  화가의 시신경을 살리다
  보쌈김치, 그리고 맛있는 개성만두
  헬렌 켈러와 같은 삶의 의지로
  마리아 수녀회와의 인연
  어느 출판평론가의 짧은 삶
  일이 꼬일 때도 있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유일의 한국인 큐레이터
  사하공화국에서 온 여인
 
We&Brain - 약이 된 쓰디쓴 경험
  당신의 뇌 건강법은?
  우리에게 전두엽이 없다면
  약이된 쓰디쓴 경험
  그만 클래요
  어느 동성애자 대학교수의 뇌생검
  이보다 더 아플 순 없다
  한국전쟁의 상처는 깊다
  도깨비장난에 놀아나다
  뇌에 사는 기생충
  치매로 오진하면 안 돼요
  만성경막하혈종이 만든 명의
  환자와 이야기하면서 뇌수술을 하다
  웃음보가 터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전이성 뇌종양 환자에게 희망을
  아이가 안 생겨요
  달덩이 같은 얼굴
  참으로 야속하고 고약한 병
 
Together&Brain - 우리 시대 의료계의 자화상
  미네소타 프로젝트, 그 56년 후
  왜 또 왔어?
  들어는 봤나? 지난 시대의 매혈기
  절주운동은 시기상조인가
  시장 바닥 같은 응급실 풍경
  공포의 시대
  멱살을 잡힌 의무장
  나이가 좀 많습니다
  죽음의 질에 대하여
  김시창 교수를 기리며
  보라매병원 사건
  안타까운 의사들의 파업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며
  내 마지막을 알 권리
  VIP 신드롬
  모르는 것이 약?
  손맛
신경외과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료계 3D’로 불리는 과 중 하나다. 인간의 뇌신경을 만지는 고도의 정밀함을 항상 유지해야 하면서 동시에, 한번 시작되면 보통 5~6시간, 길게는 12시간이 훌쩍 넘는 수술시간을 견뎌야 하는 극한의 체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신마비가 온 환자가 뇌수술 후 정상적인 보행이 가능해지거나 치매인 줄 알았던 환자가 뇌수술 후 멀쩡해지는 등의 극적인 회복도 신경외과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 극적 반전으로 인해 꽤 많은 의학 드라마나 영화에서 신경외과나 신경외과 의사는 자주 등장해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신경외과 의사들은 대체로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들이다. 그래서일까. 일반인들이 신경외과 의사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은 대체로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정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신경외과 의사로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저자가 의과대학 시절부터 최근의 경험까지를 담은 의학에세이다. 의학 상식을 담은 교양서나 전문적인 의학교과서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신경외과 의사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신경외과라는 과 자체의 특성상 매순간 철두철미한 완벽함을 추구해야 하는 신경외과 의사의 날선 일상이 진솔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의외의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또한 저자가 의사 생활 중 만났던 환자들과의 일화는 때론 재미있고 때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가감 없는 의사들의 일상과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
제1부 ‘I&Brain-풋내기 의사의 성장’은 저자의 의대생, 전공의, 그리고 신경외과 의사로서의 개인적인 성장기를 담고 있다. 육영수 여사의 총격 사건을 계기로 신경외과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던 의대 시절 이야기부터 동료 의사들과의 회식 중 복통이 일어난 저자를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게 하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고 우왕좌왕하는 이야기(자신들이 근무하는 병원이 바로 코앞인데도 말이다!)까지 일반인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의사들의 일상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제2부 ‘You&Brain-환자가 바로 스승’과 제3부 ‘We&Brain-약이 된 쓰디쓴 경험’은 저자가 신경외과 의사로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나 질환에 대한 짧은 일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뇌종양같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뇌질환에 얽힌 이야기도 있지만 1980년대 초반 국내에서 머리가 붙은 채로 태어난 쌍둥이가 결국 모두 목숨을 잃은 이야기나 환자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두개골을 열고 뇌수술을 하는 각성 수술에 관한 이야기는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제4부 ‘Together&Brain-우리 시대 의료계의 자화상’에서는 일선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느낀 의료계의 현안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미래를 위해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이야깃거리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2000년에 있었던 의료파업 같은 다소 민감한 문제부터 무조건적인 생명 연장과 관련한 죽음의 질이라는 추상적인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의료란 그 중심에 ‘사람’이 있는 특수한 분야
 
저자는 말한다. “의사들은 환자 한 명 한 명을 진찰할 때 환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한다. 병을 해결하려는 의학적인 사고뿐 아니라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괴로움을 가늠해보려고 노력한다.”
의료 현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환자들의 불신은 높아져만 간다. 날로 증가하는 의료분쟁이 이를 증명한다. 의사나 환자가 서로를 기계적인 관계로만 생각하는 최근의 세태는 의료란 그 중심에 ‘사람’이 있는 특수한 분야임을 자꾸 잊어서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이 책은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기계적인 의사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희로애락과 현장의 문제로 고민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의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더욱 뜻깊다.
 
책 속으로(‘선생, 겁나게 출세했소’ 중에서)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일부 지역에서는 돼지고기를 날로 먹기도 한다. 그런데 돼지에는 촌충이 기생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이 돼지고기를 날로 먹을 때 촌충알이 몸으로 들어가 촌충의 유충인 유구낭충이 병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벌레는 간혹 뇌까지 침범하기도 한다. 환자는 유구낭충이 제4뇌실을 침범한 상태였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사망하지만 수술을 통해서 벌레만 제거하면 완치될 수 있는 병이었다.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환자에게 수술을 권했다.
“기생충이 뇌를 침범했어요. 하지만 수술을 받으면 완치될 수 있습니다.”
“아이고, 수술을 받으려면 돈이 허벌나게 들 텐데요. 나는 수술 안 합니다.”
“무슨 말씀이에요. 수술 안 하면 죽습니다.”
“아따, 나 혼자 죽는 게 낫지. 나 하나 살려고 식구들 다 죽일 순 없소.”
“빨리 완치되서 식구들을 부양하셔야죠.”
같은 내용의 대화가 한참 반복되었지만 이야기는 한 치도 진전이 없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환자가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찌 도울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끝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당시 서울대학교병원에는 ‘관비’라는 제도가 있었다.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희귀한 질병을 가진 환자가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병원에서 치료비를 면제해주고 치료과정을 교육에 활용하는 제도였다. 사실 이 환자는 교육적인 가치가 높은 희소병은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이야기를 잘하면 될 것 같아서 과장님을 설득하고 결국 부원장님 결재까지 얻었다. 너무 기뻐서 환자에게 그 소식을 알렸고 수술 날짜를 곧 잡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회진시간, 환자는 “다 죽게 된 놈을 치료도 안 해준다”면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윗분으로부터 “환자가 왜 저렇게 난리를 피우게 하느냐”는 핀잔까지 들으니 정말 속이 제대로 상했다. 나로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드디어 수술 일정을 잡아 수술에 들어갔다. 마취를 하고 난 후 환자를 비스듬히 앉히고 후두부를 절개했다. 나는 제2조수로 수술에 참여했는데 경막을 열고 소뇌를 양쪽으로 젖히면서 제4뇌실을 찾아 무사히 기생충을 제거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고 환자는 잘 회복되어 퇴원을 앞두게 되었다. 병실에서 환자를 볼 때마다 잘 나아준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수술 전에 나를 골탕 먹인 것을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환자는 수술 후에는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싱글싱글 웃기만 할 뿐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인사도 한마디 없었다.
“이제 퇴원하셔도 됩니다.”
“진짜로 집에 가도 됩니까? 이제 아무 탈 없는 거지요?”
“글쎄, 완쾌되었다니까요.”
“무슨 문제가 또 생기면 책임질 거지요?”
“앞으로는 돼지고기를 날로 먹지 마세요.”
“어이, 젊은 양반. 잠깐 나 좀 보면 좋겠소.”
환자는 6인용 병실 맞은편에 있는 환자용 목욕탕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부스럭거리며 신문지에 싼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당직실에 돌아와서 펴보니 ‘한산도’라는 담배 두 갑이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 혼자 한참을 웃었다.
그로부터 15년쯤 흐른 어느 날, 외래 진료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다음 환자 들어오시지요.”
“혹시 나 모르겠소?”
“아, 전라도에서 온……?”
“맞소, 허허허. 수술받은 지 오래 되었고 나이도 있고 해서 진찰 좀 받아보면 어떨까 해서 왔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별일 없었지요?”
“아따, 이제는 그래도 살 만합니다. MRI 한번 찍어보면 좋겠어서 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