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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라토의 역사
파트리크 바르비에르 지음 | 이혜원 옮김 |
가격: 20,000원
쪽수: 344
발행년/월/일: 2013.01.30
크기: 신국판
ISBN: 978-89-337-0643-5 03670

여는 글
물음표_벨칸토: 무엇이 아름다운 노래인가? / ‘시대악기’ 연주: 악기도 사람도 변한다 

1. 거세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 “여러분을 정확한 거세 기술과 좋은 가격으로 모십니다” / 생리적 격변 / 목소리의 변화 /
물음표_성부: 소프라노라고 꼭 여성은 아니다 / 날개 달린 악사: 천사는 어떤 모습일까? 

2. 출신과 모집
지리적, 사회적 출신 / 거세의 전주곡 / 콘세르바토리오로 가는 길  

3. 가수로의 성장
나폴리의 콘세르바토리오들 / 조직과 내부생활 / 수업과 선생들 / 수련 중의 카스트라토들 / 이탈리아의 다른 학교들  

4. 이탈리아의 무대
큰 규모의 극장들 / 공연 / 이탈리아의 관객들
물음표_오페라의 역사: 극 vs. 음악 / 레치타티보: 말하듯이, 노래하듯이 / 바그너와 순수주의: 일상에서 예술로  

5. 영광으로의 길
예명 짓기 / 대중 앞에서의 첫 무대 / 성악적 위용 / 무대 위의 카스트라토들 / 말썽과 변덕 / 부와 명예
물음표_글루크의 오페라 개혁: 하나의 음절에는 하나의 음표로 충분하다 

6. 카스트라토와 교회
교황과 거세 / 교회에서의 음악 / 교황령 안의 극장들  

7. 사회인으로서의 카스트라토
카스트라토와 여성 / 남성 사이의 경쟁과 우정 / 카스트라토와 그의 부모 / 후원자 / 풍자문과 소책자
물음표_돈 후안: 카탈로그가 필요한 남자 

8. 유럽을 가로질러
끝없는 여행 / 빈과 런던 / 프랑스인과 카스트라토 / 에스파냐의 파리넬리
물음표_부퐁 논쟁: 오페라 세리아 vs. 오페라 부파 

9. 저물어 가는 한 시절
무대에의 고별과 뿌리로의 귀환 / 노화와 목소리 / 최후의 일자리  

10. 천사들의 황혼
쇠퇴의 첫 징조 / 두 명의 마지막 위대한 카스트라토 / 바티칸과 마지막 소프라니스트들
물음표_그랑드 오페라: 오페라의 대형화 

맺는 글 

음악용어 모음
NOTES
참고문헌 

추천사-예술에 대한 새로운 연민을 위해
역자 후기

신체의 일부를 절단함으로써 괴물이 되었지만 동시에 아름다움을 얻고 천사가 되었다
1778년에 프랑스 『아카데미 사전』은 ‘카스트라토castrato’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어린아이나 여자와 비슷한 성질의 목소리를 유지하도록 거세한 남자. 이탈리아에 많다.” 소년들은 사춘기 전에 거세되었고, 고음을 부를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들은 교회와 왕실 등의 후원 아래 카스트라토를 키우는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곧 오페라 극장은 카스트라토를 받아들였고 카스트라토는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다. 바로크 오페라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카스트라토를 위해 주역들이 만들어졌고, 더불어 카스트라토들은 오페라 하우스의 스타가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잡종―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하면서 아이이기도 한―에 열광했다. 청중들은 카스트라토들의 기술적이면서도 천사 같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황홀감에 빠질 수 있었다. 그들은 부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이른바 인기인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부모가 아예 아들들을 거세시켜서 극장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자식을 통해 가난도 해결하고, 경제적 부도 이룰 수 있고, 심지어는 출세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다. 이렇게 해서 카스트라토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유럽의 문화사에서 지울 수 없는 역사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음악 외적인 생활에서는 그들은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기도 했으며, 심지어 결혼하는 이들도 있었다. 에스파냐 왕실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던 파리넬리처럼 정치적으로 성공한 카스트라토도 있었다.
하지만 1790년대를 들어서면서 카스트라토는 점차 사라져 갔다. 물론 그들의 활동은 1913년 로마 교황청 성가대의 마지막 카스트라토였던 모레스키가 예배당을 떠나기 전까지 약하게 이어졌지만 말이다. 

17~18세기 유럽의 카스트라토, 오페라 음악, 교회 음악으로 하나의 잘 짜인 융단을 만들다
카스트라토가 활동하던 시대, 그들의 삶과 업적, 그리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들이 남긴 유산 등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초창기부터 ‘황금시대’를 거쳐 20세기 그들이 사라지기까지의 카스트라토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또, 저자는 카스트라토들의 삶과 관련하여 오페라 역사에 있어서 카스트라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카스트라토를 언급하지 않고 오페라에 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은 카스트라토란 한 성부뿐만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역사를 잘 다루고 있다. 카스트라토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전반적인 역사를 알 수 있으며 당시 유럽의 풍속과 문화를 보다 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 이 책은 전문서로서의 치밀함과 교양서로서의 재미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풍부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묘사가 탁월하다. 자칫 선정적 재미만을 좇아 흥미 위주의 에피소드 나열에 그쳐 버릴 수도 있는 내용에 냉철한 학자의 시선을 담아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위트를 잃지 않고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양 고전음악에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이어서 그렇지 않은 독자가 읽기에는 좀 어렵다. 이에 옮긴이는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역주로 달아 독자가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 본문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책을 더 재미있게 읽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해당 장의 뒤에 ‘물음표’라는 이름으로 덧붙였다.

17, 18세기 유럽의 카스트라토들은 전례 없는 기이한 음악적, 사회적, 문화적 존재로서 천사로 떠받들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괴물로 손가락질 받기도 했다. 교회의 필요 때문에 시작된 역사적 배경 탓에 원칙적으로 그들은 교회의 보호 아래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과 영욕을 함께한 것은 교회음악이 아니라 극음악인 초기 오페라였다. 카스트라토의 몸은 바로크 시대에 널리 퍼져 있었던 환상과 가장(假裝)에 대한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기교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갖춘 모순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환상과 가장, 기교와 모순적인 매력을 높이 샀던 초기 오페라와 함께 번성했고, 그것들이 의미를 잃기 시작한 낭만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 9쪽 ―  

  

벨칸토의 종언. 그것은 곧 카스트라토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스트라토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관한 전문가들의 논쟁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지 간에, 이러한 바로크 음악의 새로운 유행 덕분에 현대인들이 우리와 ‘거의’ 다름없었던 이들 가수들에 대한 새로운 지적 발견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230여 여년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포함한 약 3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놀라운 목소리와 개성으로 극음악과 교회음악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이들의 뒤를 되밟아 보는 것은 분명 흥미진진한 지적 체험이 될 것이다. ―  13쪽  ― 

이리하여 카스트라토는 삼위일체를 이루었다. 남성,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 동시대인들은 그들의 양성적인 목소리를 장엄하면서도 관능적이라고 느꼈다. 또한 당시의 대중은 오늘날에 비해서 기교에 대해 훨씬 열광적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남성성과 여성성의 간극을 메워 주는 카스트라토의 목소리와 그들이 선보인 초절기교는 끊임없이 “천사 같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묘사되곤 했다.    ― 31쪽  ―   

사실 부모들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은 위대한 카스트라토들의 성공에 넋을 잃었고 거세를 묵인하고 암묵적으로 권장하기까지 한 교회의 권위에 압도당했다. 일상적인 빈곤에 시달리던 부모들에게 아들을 거세시키는 것은 그들을 보잘것없는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만약 수술이 성공해서 아들이 훌륭한 가수가 된다면 당연히 부와 명예도 뒤따를 것이었다. 또 그렇게 된다면 그들 자신 역시 성공한 아들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 39쪽  ― 

일반적으로는 6년, 드물게는 10년에 이르는 긴 수련기간 동안, 어린 카스트라토들은 날마다 매우 힘든 훈련과정을 소화해 내야 했다. 성공적으로 공부를 마친 카스트라토들이 선보인 완벽한 수준의 기교는 이처럼 오랜 훈련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들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점적으로 단련한 것은 호흡기법이었다. 훈련을 통해 그들은 들숨과 날숨을 제어하는 근육을 최대한으로 발달시켰으며, 점차적으로 유년기의 초보적 수준의 복식호흡을 버리고 늑골을 활용한 깊은 복식호흡을 완벽히 익혀서 균질하고 유연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호흡 능력을 바탕으로 해서 그들은 반복되는 트릴, 파사지오, 메사 디 보체, 마르텔라토, 고르게지오, 모르덴테, 아포지아투라 등 훌륭한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바로크 시대의 여러 기교를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다.   ― 78쪽 ― 

아리아가 한 곡 끝나거나 막이 내려질 때면 이탈리아인들은 대단히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있는 힘껏 박수갈채를 보내고, 카스트라토에게 환호성과 함께 경의를 담은 시구를 적은 종이를 던지거나 프리마 돈나에게 꽃이나 그녀를 찬양하는 짧은 소네트를 바쳤다. 그러고는 아리아 한 곡이나 한 장면 전체의 앙코르 공연이 있을 때까지 결코 잠잠해지지 않았다. 마침내 앙코르 공연까지 포함해 대단원의 막이 내리고 관객들이 빠져나간 1층 입석은 각종 쓰레기가 폐허처럼 쌓여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아무튼 이제는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흔히 식사도 극장 건물 안에서 해결했고 결국 그러다 보면 아주 밤늦은 시각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 110~111쪽  ― 

그림(Grimm) 남작은 성 루이의 날에 루브르에서 카파렐리의 노래를 듣고 문자 그대로 도취되었다. “이 가수가 눈앞에 펼쳐 보인 완벽한 예술 세계를 말로 정확히 옮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천사 같은 목소리와 상황에 맞는 연기는 실로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웠으며 여기에 능란한 기교와 놀라운 섬세함을 겸비하여 음악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자들의 이성과 감성조차도 저항하기 힘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집중력이라곤 전혀 없던 관객들이었건만 예배당에는 한 마디 수군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진지한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 127쪽  ― 

교회는 거세라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 항상 다소 혼란스럽고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교회는 한편으로 이런 신체절단 행위를 강력히 단죄하고 그것을 행한 자들을 벌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줄곧 카스트라토의 보호자 역할을 담당했고 심지어 세속사회에서 그들이 자취를 감춘 20세기 초까지도 그들을 고용하여 그때까지 남아 있던 카스트라토들의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실제로 교회는 각지의 수많은 성가대 학교를 통해 소프라니스트들이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노래라는 이유로 카스트라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 168쪽  ―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을 믿는다면 바로크 시대 사람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카스트라토에 빠져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주목할 것은 그들이 단지 카스트라토가 가진 혼란스럽고 미묘한 ‘아름다움’에만 끌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카스트라토라는 그 ‘존재 자체’에 매혹당하고 있었다. 이 매혹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지 서커스를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듯이 일찍이 보지 못한 신기한 대상에 호기심을 느낀 것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임신의 위험 없이 성적 일탈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딱 맞춤인 대상을 찾은 기쁨이었을까? 혹은 그들의 목소리가 가진 예외적인 힘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환상적인 쾌락을 선사한 나머지 그저 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어쩌면 양성의 한계를 모두 뛰어넘으면서도 또한 양성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이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철학적 차원의 이상화 내지 숭배였는지도 모른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관객 각자가 무슨 내적 동기로 카스트라토에 끌렸으며 어떤 외적 관계를 가졌는지 오늘날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카스트라토가 거의 유럽 전역에서 여성들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 187쪽  ―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거세 수술이 행해지지 않은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도 카스트라토들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고 이탈리아 못지않은 큰 인기와 사랑을 얻었다는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오페라 세리아의 대유행이 미친 영향이었으나, 카스트라토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일부 군주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작센의 선제후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인데, 보다시피 이들 중 상당수는 여성이었다.    ― 239~240쪽  ―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카스트라토들, 특히 거세 수술이 시원찮은 결과만을 가져와 평생을 벽지에 내몰려 외롭게 살아온 대다수 무명 카스트라토들에게, 그나마 갖고 있던 일자리에서도 물러난 뒤의 삶이란 한층 더 쓸쓸하고 우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카스트라토가 이 말년의 ‘공허함’에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심지어 그렇게 큰 인기를 누렸으며 말년에도 그 누구보다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 살았던 파리넬리조차도 여기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화려했던 무대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명 가수들은 그나마 고독을 달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어린 학생들을 받아 가르치거나, 예전의 유명세 덕분으로 여러 귀족 및 상류사회 저명인사의 방문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생토록 어떤 부와 명예도 누리지 못했고 성공한 카스트라토로서 높은 수준의 예술적 성취의 자족감도 느낄 수 없었던 많은 버림받은 고자의 상황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280쪽  ― 

18세기 말부터 카스트라토들은 출구를 잃어버렸다. 1800년 이후에도 소수의 유명 카스트라토는 활동을 계속했고 카스트라토의 명맥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카스트라토라는 존재에 체화되었던 하나의 미적 이상은 이제 분명히 그 생명력이 다했던 것이다. 새로운 세기가 밝아오면서 카스트라토들은 음악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각 방면에서 공격받고 있으며 그들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라져 가는 음악 전통의 미래를 알아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여전히 많은 소년이 헛된 희망 속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이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한결 더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 29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