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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바다 황해
권덕영 |
가격: 33,000원
쪽수: 408
발행년/월/일: 2012.12.01
크기: 신국판
ISBN: 978-89-337-0637-4 93910
책을 펴내며
 
제1장  역사의 바다
 제1절  황해의 역사환경
  1. 자연조건
  2. 인문환경
 제2절  황해의 지중해적 성격
  1. 지중해와 지중해성
  ⑴ 지리적 지중해
  ⑵ 인문적 지중해
  2. ‘동아지중해’와 황해
  ⑴ 동아지중해론 검토
  ⑵ 동아시아 속의 황해

제2장  황해 개척과 진출
 제1절  해양 개척과 황해 진출
  1. 해양 개척의 모색
  ⑴ 해양세력의 도전
  ⑵ 해양 진출의 기반
  2. 황해 진출 과정
  ⑴ 동해와 남해 진출
  ⑵ 황해로의 진출
 제2절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달
  1. ‘백제선’과 ‘신라선’
  ⑴ 백제선의 제작
  ⑵ 신라선의 개발
  2. 황해 신항로 개척
  ⑴ 황해 중부 횡단항로
  ⑵ 황해 남부 사단항로
  
제3장  황해외교와 전쟁
 제1절  수·당과의 사절 왕래
  1. 견수사와 견당사 파견
  ⑴ 견수사 파견
  ⑵ 견당사 파견
  2. 수·당 사절의 내왕
  ⑴ 수 사절의 내왕
  ⑵ 당 사절의 내왕
제2절  나당 간의 조공과 책봉
  1. 대당교섭사의 추이
  ⑴ 모색과 동맹
  ⑵ 갈등, 안정, 소원
  2. 조공·책봉의 실제
  ⑴ 신라의 조공
  ⑵ 당의 책봉
  3. 조공·책봉의 성격
  ⑴ 당대當代의 조공·책봉관
  ⑵ 조공·책봉의 새로운 이해
제3절  황해상의 전쟁과 폭력
  1. 통일전쟁기의 황해 해전
   ⑴ 기벌포 해전
   ⑵ 대동강구와 천성 해전
  2. 황해 연안의 해적
   ⑴ 해적의 발생과 특성
   ⑵ 해적의 폭력 활동

제4장  황해교역과 교류
 제1절  신라 하대의 황해무역
  1. 황해무역의 제 양상
  ⑴ 교역의 유형 분류
  ⑵ 황해무역의 교역품
  2. 황해무역의 주역
   ⑴ 견당사와 재당 신라인
   ⑵ 해적과 해상호족
  3. 황해무역과 사회변동
   ⑴ 골품제의 동요
   ⑵ 지방세력의 등장
제2절  ‘서학’ 활동과 ‘서화’ 구법승
  1. ‘서학’의 두 가지 개념
   ⑴ 원래의 서학
   ⑵ 새로운 서학
  2. 8, 9세기의 서학 활동
   ⑴ 구법승의 서학 활동
   ⑵ 유학생과 견당사의 서학
   ⑶ 서학의 역사적 의의
  3. 신라의 ‘서화’ 구법승
  ⑴ 서화 구법승의 두 부류
  ⑵ 서화 구법승의 재당 활동
제3절  회창폐불과 신라 불교
  1. 회창폐불의 전개
  ⑴ 승니의 환속
  ⑵ 사원과 불상의 파괴
  2. 신라 구법승의 동향
  ⑴ 외국승의 추방
  ⑵ 신라승의 귀국

제5장  황해 디아스포라
 제1절  삼국인의 이산과 이주
  1. 고구려와 백제 유민의 중국 이주
  2. 신라인의 중국 이주
제2절  비운의 디아스포라 김인문
  1. 대당외교와 국내 활동
  ⑴ 대당외교의 주역
  ⑵ 국내 정치 활동
  2. 외교노선 갈등과 망명
  ⑴ 역적과 충신
  ⑵ 꿈의 좌절
  3. 죽음과 그의 후손들
  ⑴ 묘지 비정 문제
  ⑵ 김인문의 후손
제3절 중국 산둥성 무염원과 김청
  1. 무염원의 현황과 자료
   ⑴ 무염원지의 현황
   ⑵ 관련 자료의 검토
  2. 신라인 김청과 신라원
  ⑴ 김청의 무염원 공덕
  ⑵ 재당 신라인과 신라원

제6장 신라의 바다
 제1절  군자의 나라, 신라
  1. ‘군자국’ 이미지의 형성
  ⑴ 상상 속의 군자국
  ⑵ 신라 군자국 이미지
  2. 신라 군자국의 표상
  ⑴ 당의 군자국 인식
  ⑵ 군자국의 자부심
제2절  신라의 황해 경영
  1. 황해교섭과 교류
  2. 신라의 성쇠와 황해

참고문헌
찾아보기

201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는 ”바다를 다스리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이 말은 우리역사에도 유효한 잠언箴言이라 할 수 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국가 혹은 민족 간의 접촉과 교류의 주된 공간은 황해(黃海)였다. 황해는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공유하는 바다로, 황해를 누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활용했는가에 따라 공동체의 성쇠가 좌우되었다. 동아시아 삼국은 황해를 경계로 삼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발전시켰고, 각 지역의 상이한 문화는 황해를 통해 소통하고 융합하였다. 동아시아에서 황해는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인 동시에 융합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황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나라는 신라였다. 비록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에 밀려 황해를 활용할 기회가 적었으나, 삼국통일 이후 신라는 황해를 무대로 중국과 다양한 형태의 교류와 교섭을 펼치며 명실상부한 황해의 주인이 되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재직 중인 권덕영 교수가 쓴 『신라의 바다 황해』는 고대 동아시아사에서 황해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황해를 통한 동아시아의 교류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최근에 들어와 동아시아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 황해를 비롯한 주변 바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나,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고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황해를 통한 교류와 황해의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 책은 ‘견당사’와 ‘재당 신라인’을 거쳐 황해로 이어진 저자의 황해 연구 3부작 중 마지막 편으로, 자연(황해)과 인간(역사)의 상호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황해를 통해 이루어진 신라인들의 정치·경제·문화 교류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역사의 바다, 황해
지리적으로 동아시아 중앙에 자리 잡은 한반도의 여러 나라는 황해를 매개로 중국, 일본과 교류하며 성장·발전하였다. 특히 한국고대사의 전개와 발전은 황해와 상호 불가분적 관계가 있다. 여기서는 황해가 동아시아 각 지역을 가르는 경계의 바다인 동시에 소통과 융합의 공간으로 고대 동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 교류의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황해의 이러한 특성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로 둘러싸인 지리적 조건과 동아시아의 지역에 따른 문명과 문화의 격차, 중화사상의 확장, 역사적 갈등, 황해로 유입되는 강가의 문명도시 형성 등의 인문환경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신라의 바다, 황해
이 책은 자연(황해)과 인간(역사)의 상호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황해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활용하는 데 힘쓴 신라의 황해교섭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한다. 신라는 황해를 통해 당과 교섭함으로써 당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제적 지위를 높이고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라의 황해 진출은 당과의 경제교역과 문화교류를 촉진시켜 신라의 경제발전, 사회변화, 문화번영에 단초가 되었다. 신라가 황해를 매개로 하여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편협한 ‘소신라小新羅’를 탈피하고 국제 감각을 갖춘 ‘대신라大新羅’를 완성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황해는 ‘신라의 바다’였던 셈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에서는 황해의 자연 및 인문환경을 고찰하여 황해 연구의 기초로 삼았고, 제2장에서는 신라인의 황해 개척과 경영을 살펴보았으며, 제3장에서는 황해를 통한 신라의 외교활동과 전쟁을 탐구하였다. 제4장에서는 황해를 무대로 전개된 신라의 경제교역과 문화교류를 고찰하였고, 제5장에서는 황해를 건너 중국으로 이주한 신라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을 추적하였으며, 제6장에서는 황해 교섭과 교류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황해를 ’신라의 바다‘로 결론지었다. 
책 속에서

유럽지중해가 서양의 중요한 역사 공간이었다면, 황해黃海는 동아시아의 역사 현장이었다. 황해는 동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이 중국 대륙과 한반도로 둘러싸였고 동남쪽에 일본이 자리 잡고 있어,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교류와 교섭의 장場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지중해가 그렇듯이, 황해는 고대 동아시아의 정치교섭과 문화교류, 그리고 경제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열린 공간이었다. ― 13~14쪽에서 ―
 
6세기 신라의 중흥과 황해 진출, 7세기 한반도 통일왕조 수립과 신라 수군의 활동, 남북국시대 신라의 번영과 활발한 해양활동 등은 신라의 국가 발전과 해양 진출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9세기 중엽 장보고張保皐가 황해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해역을 장악하고 해상상업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삼국시대부터 꾸준히 진행된 신라의 해양 진출이 그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신라가 바다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으나, 무엇보다도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해양세력의 도전挑戰에 대한 응전應戰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하면 건국 초부터 나라의 존망을 위협하던 해양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신라는 바다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신라는 해양세력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였고,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점차 적극적으로 해양 진출을 도모하였다.   ― 45~46쪽에서 ―
 
고구려, 백제, 신라의 한반도 삼국과 중국의 여러 왕조는 황해를 징검다리 삼아 상호 외교사절단을 교환하였고, 일본과 중국의 사절 역시 주로 황해를 통해 동아시아 각 지역을 왕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의 상인들은 황해를 활동 공간으로 삼아 해상무역에 종사하였고, 각국의 유학생과 구법승들은 황해를 건너다니며 학술과 사상을 서로 교류하였다. 
외교사절과 무역상인, 유학생과 구법승들이 평화롭게 오가던 황해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악화되면 가끔 전쟁의 바다로 변한다. 일찍이 누선장군 양복楊僕이 한나라 수군을 이끌고 산둥반도에서 황해를 건너 고조선을 침공하였고, 수와 당은 수차례에 걸쳐 황해를 넘어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였으며, 발해의 장문휴張文休는 수군을 이끌고 황해를 건너 당나라 등주 일대를 유린하였다. 뿐만 아니라 황해 주변의 국가들이 정치적 혹은 사회적 혼란으로 바다를 통제할 능력이 없을 때, 황해는 해적을 비롯한 불법 집단들이 횡행하며 인명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폭력의 바다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황해는 평화와 전쟁, 그리고 폭력이 교차하는 다중多重의 공간이었다고 하겠다.  ― 169~170쪽에서 ―
 
8, 9세기 동아시아 사회의 변모 과정에서 황해에는 다양한 형태의 교역과 교류가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의 공식 창구를 통한 공무역公貿易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들 사이에 상품을 거래하는 사무역私貿易, 해적과 같은 집단이 무력을 이용한 불법적인 약탈무역掠奪貿易 등이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황해를 무대로 전개되었다.  ― 191쪽에서 ―
 
고구려·백제의 망국 유민과 신라인들은 황해를 징검다리 삼아 당으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그들을 일괄 ‘황해 디아스포라’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황해를 건너 당에 이주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각기 다양한 삶을 살아갔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당에 강제로 끌려간 고구려인과 백제인들은 물론, 자의적으로 이주한 신라인들은 당의 이민족 지배정책에 따라 각지에 흩어져 거주하다가 점차 중국화되어 갔다.  ― 286쪽에서 ―
 
사절단과 구법승, 유학생을 통한 활발한 대중교섭 결과 신라는 당으로부터 군자君子의 나라로 인식되었다. 선진시대부터 중국인들은 동방에 천성이 유순하고 인자한 사람이 사는 군자국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당대 이전 중국에서는 다소 막연하게 중원의 동쪽에 군자국이 있다고 하였으나, 당 현종 때 이르러 신라를 군자국으로 지목하고 이후 거기에 걸맞게 대우하였다. 이는 신라가 황해교섭을 통해 정치안정과 경제발전, 그리고 문화번영을 이룬 결과이다.― 378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