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중 관계사는 동서냉전 체제의 결빙, 해빙과 그 궤적을 같이해왔다. 한국과 중국은 근대 대일 항전의 승리를 위해 공조했던 우정의 역사를 갖고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소 양극 체제의 이념적 대립을 겪으면서 이후 40여 년 동안 극단적으로 반목하고 배척하는 ‘적대국’ 관계가 되었다. 양국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고 민족의 독립과 국가의 영토, 주권의 완전성을 지키기 위해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함께 나누었지만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교류가 단절되었고,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인문학계는 적대적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실제 현존하는 중국의 국가 실체와 학문적 이론들을 도외시했고, 중국 역시 극좌적 과학사회주의로 일관해 한국과의 괴리감을 심화함으로써 상호 이해를 위한 건강하고 올바른 학술적, 문화적 데이터베이스 축적이 차단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냉전 시대가 종식되고 세계가 다극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양국은 ‘우호국’의 위상을 회복했고, 드디어 1992년 국교가 정상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 2012년은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두 나라는 지난 20년간 정치,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여러 방면에서 비약적인 관계 발전을 이룩했다.
중국 측 시각에서 바라본 중국과 한국의 현대관계사
이 책은 중국 내 한국학 연구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는 베이징대학 한국학연구센터의 기념비적인 연구 성과물로 한‧중 관계에 대한 중국 입장에서의 역사 인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 측의 역사 시각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대중관對中觀’ 정립을 위한 일차적 중국 문헌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깊다. 베이징대학 한국학연구센터의 교수진과 연구진이 주축이 되어 집필한 이 책은 중국 사회과학문헌출판사에서 고대편, 근대편, 현대편 총 3권으로 출판되었다. 『중한관계사』(현대편)은 쑹청유 교수 등이 공저한 마지막 현대편으로, 이로써 국내에 고대편(2005, 범우사), 근대편(2009, 일조각), 현대편에 이르는 3권이 모두 번역 출간되게 되었다. 현대편은 1945년 이후 냉전 시대의 개막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국교가 단절된 상황에서부터 1991년 탈냉전 시대의 도래로 국교가 다시 정상화되는 데 이르기까지 전후 맥락의 한‧중 관계사를 담고 있다. 저자들은 중국과 한국의 자료는 물론 미국, 유럽, 북한과 일본의 자료 등을 참고해 현대 중·한의 정치, 경제, 문화 관계사를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한·중 관계의 과제들
이 책이 집필된 지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저자들이 장래의 동북아시아를 조망하면서 제시한 한‧중 관계의 바람직한 미래상들은 최근 동북아시아가 ‘영토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21세기 동북아시아 국제 구도의 다극화 특징이 한‧일 간의 독도 문제, 중‧일 간의 댜오위다오釣魚島列島(센카쿠尖角 열도) 귀속 분쟁, 러‧일 간의 북방영토(쿠릴 열도) 다툼으로 폭발할 것이라고 예견한 부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저자들은 21세기 다극화 시대에 한‧중의 정치, 경제, 문화 관계가 균형 있게 발전하고 두 나라가 안정된 세력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시대를 초월한 중대한 과제라고 전망했다. 이 책은 한·중 관계에 대한 중국 측 역사 인식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한 본래 취지에 따라 원문에서 사용한 용어를 최대한 그대로 따랐다. 좀 더 명확히 한국에서의 발간 의도를 밝히고자 책의 제목도 ‘한중관계사’가 아닌 원서 제목 그대로 ‘중한관계사’로 하였다. 저자들은 양국의 관계사를 기술함에 있어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역사 인식에서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를 우리의 역사 시각과 비교해보고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시각을 정립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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