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제1장 서론 중에서)
현재까지 축적된 고려시대의 사원 연구는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소수 특정 사원의 발전 과정과 사원의 부분적 일면을 규명하는 데 치우쳐 있음으로써, 고려 불교사의 전개 과정이라는 큰 맥락에서 이해되지 못하는 점은 그 한계점으로 지적할 만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연구 방향을 설정했다. 첫째, 사원 연구의 일반적 경향인 특정 사원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나 고려시대 전 시기에 걸친 사원의 일부분에 대한 연구 경향에서 탈피하여 우선 사원 연구의 시간적 범위를 고려 후기로 한정하고, 이 시기에 부각된 주요 사원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고려 후기 불교사의 흐름을 파악하도록 한다. 물론 원간섭기의 불교사가 갖는 각별한 의미 때문에 이 시기의 사원 연구에 집중하도록 한다. 둘째, 원간섭기와 고려 말의 주요 사원을 몇 개의 범주로 분류하여 각 사원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를 시도할 것이다. 개별 사원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특정 시기 사원의 성격과 기능을 규명할 수 없고, 특히 정치 변화에 따른 사원들의 동향을 추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원들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존재로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침浮沈을 거듭했기 때문에 그 변화의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원의 개별적인 분석과 검토가 요청되고 있다. 오늘날 학문의 세분화가 가져온 한계성을 극복하고, 종합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학제간學際間(interdisciplinary)의 연구에 있어서는 개별 사례의 연구에 따른 글의 전개는 매우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각 사례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충실해졌을 때 그것에 의해 도출된 이론이나 결론은 그만큼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셋째, 개별 사원의 연구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사원의 연혁, 성격, 기능, 예술, 의례 등 전반적인 사항이다. 특히 사원의 기능 연구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주의하고, 또 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기능적인 면을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한다. 사실, 보다 충실한 사원 연구를 위해서는 각 사원의 유물 연구가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본 연구의 대상이 된 대부분의 사원은 현재 폐사廢寺되었거나 유물도 거의 남기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 지역에 위치한 관계로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있다. 다만 현존하는 유물이 남아 있는 몇몇 경우에 대해서는 그것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넷째, 본 연구의 진행 과정에서는 무엇보다도 정치사에 유의할 것이다. 이것은 본 연구의 목적이 각 사원의 내용 파악에 머물지 않고 이것을 토대로 하여 고려 후기 불교사의 전개 과정을 밝히고자 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불교 교단은 제도적으로 국가의 통제 아래서 운영, 유지된 관계로 정치사와 유리된 불교사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불교 교단의 토대가 된 사원 역시 정치권의 변화와 더불어 성쇠를 거듭했으므로 본 연구는 이 시기 정치사에 주목해 진행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연구 방향을 설정한 상태에서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성하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무인정권기의 사원 동향을 개괄적으로 검토한다. 이것은 본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원간섭기의 사원 연구에 대한 예비적 검토의 성격을 갖는 장이다. 원간섭기의 사원이 당대의 고립된 실체로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무인정권기의 사원들과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동태파악이 필요한 것이다. 이 장에서는 각 사원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는 피하고, 무인정권의 추이에 따른 각 사원의 전반적인 동향을 파악하여 원간섭기 사원 연구의 한 배경으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먼저, 원간섭기의 시대적 특수성을 반영하며 이 시기에 두각을 나타낸 사원들로서 ‘원황실元皇室의 원당願堂이 된 사원’과 ‘원황실의 보시를 통해 중흥된 사원’을 살펴본다. 이들은 고려 국내에 소재한 사원이었지만 당시 원황실과 연계되어 성장, 발전했기 때문에 모두 원황실과 관련된 고려 사원이었다. 그리고 원간섭기에 가장 유력한 종파로 꼽히고 있는 천태종天台宗, 선종禪宗(조계종曹溪宗), 법상종法相宗에 소속된 사원들의 동향과 실상을 살펴보도록 한다. 전형적인 종파불교宗派佛敎의 성격을 띠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고려 불교계는 원간섭기에도 종파 간의 대립과 경쟁관계를 통해서 발전했는데, 여기서는 해당 사원들의 개별 연구를 통해 그것의 전개 과정과 배경 및 그에 따른 불교계의 판도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제4장에서는 원간섭기라는 시대적 특수성과 고려인의 활약상을 반영한 사원인 ‘원간섭기의 재원고려인在元高麗人 관련의 대도大都 사원’을 살펴보도록 한다. 이들 사원은 비록 원의 국도國都 대도에 소재했지만, 그곳에 거주한 고려인에 의해서 창건, 중창 또는 주재된 관계로 고려 불교사의 한 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다. 고려 불교의 원나라 진출과 그 주도 세력 등을 규명함으로써 고려 불교사의 연구 영역이 보다 확장되리라고 본다. 제5장에서는 원간섭기에 이어 고려 말에도 유력한 종파로 꼽히고 있는 선종과 천태종에 소속된 주요 사원들의 동향과 실상을 살펴보도록 한다. 여기서도 해당 사원들의 개별 연구를 통해 여말 고려 불교계의 판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리고 본다. 본 연구에서 다루어지는 사원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고려 후기 불교사 속에서 간단히 언급되는 정도였고, 또 몇 개의 특정 사원에 대한 개별 연구가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소략한 사료史料가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들 사원에 대한 체계적이고 엄밀한 규명 없이는 고려 후기 불교사는 중요한 일면을 간과한 채 불완전한 상태로 머물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이 연구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각종 문집文集에서 전하고 있는 사원의 기문記文과 비문碑文, 그리고 고승들의 전기傳記, 역사서歷史書 등을 토대로 하여 이들 사원을 몇 개의 범주로 분류하고, 또 이것을 세부적으로 분석하여 이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찾을 것이다. 여기서 부딪히는 불완전한 사료상의 한계는 이 시기 불교와 정치권의 교류를 참작하여 보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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