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노그라피는 실험실 안이 아니라 실험실 밖에서, 즉 사람들이 생활하고, 먹고, 쇼핑하고, 일하고, 노는 장소인 가정, 사무실, 매장,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리서치이다. 에스노그라피는 소비자들의 만족, 좌절, 그리고 한계에 대하여 어떤 연구방법보다도 총체적이며 정교한 시각을 갖게 해준다. 에스노그라피는 소비자들의 언어, 신화, 열망, 통찰 등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갖게 하므로 전략가와 브랜드 기획자들이 제기하는 가장 어려운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마케팅 전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 국내적 수준에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은 시시각각 바뀌어 가고, 소비자들의 니즈와 감수성, 소비 양태는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이제 기업 경영자와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소비자의 구체적 현실을 파악하고 그 안에 숨은 소비자들의 세분화된 니즈, 그리고 새로운 상품 개발과 연관된 틈새시장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를 성취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행위의 역학관계와 그 안에 숨은 사람들의 욕구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많은 마케팅 학자들이 좀 더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을 사용해 가장 논리적이고 효과적인 조사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예를 들어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구매할 소비자 집단을 알아내기 위해 사회적 지위, 연령, 성별, 개인의 환상, 자녀 수, 통근 시간, 주차 공간 등 여러 요소들을 조합해 설문조사를 하거나 집중면담을 하는 방법 등으로 결과를 산출했다. 또는 다중회귀분석 같은 통계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가능한 변수들 간의 관계를 추정했다. 하지만 이 ‘과학적’인 결과가 실제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이 상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의미와 감정의 진화는 ‘과학적’ 조사방법이라는 그물망에 걸리기에는 너무나 세밀하고 투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명료해 보이는 분석 결과와 통계를 넘어 깊이 있는 통찰력과 소비자에 대한 이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앞의 방법들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마케팅 리서치 분야의 총아로 부상한 에스노그라피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는 현장조사field research, 관찰조사observational research, 또는 참여관찰participant observation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조사방법으로서, 오늘날 질적 조사라는 범주로 분류되는 조사 전통의 원형이다. 20세기 초 서구 문화인류학자들이 다른 문화의 사회적 삶과 사회제도를 연구하면서 시작된 이 방법은 인간의 본성, 사회적 협력, 일상생활의 영위 등에 관한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제 에스노그라피는 현대사회의 문화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인류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경영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기술, 경제구조, 정치제도의 발전에 지속적으로 적응해 나감과 동시에 건강, 가족 구성, 공동체에서의 역할, 일과 여가의 관계 등 새롭게 바뀌어 가는 삶의 변화에 대응하며 살아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에스노그라피는 생산성과 라이프스타일을 향상시키는 수많은 기회를 어떤 계층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포착하여 자신의 삶에 활용하는가를 파악하는 데에 매우 적합한 방법이다. 즉 에스노그라피는 소비자가 상품을 실제 사용하고, 서비스를 제공받고, 이익을 얻게 되는 구체적 이유와 상황을 탐색하는 방법이다. 에스노그라피는 현실세계를 직접 다루는 것을 규범으로 삼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하는 시장분석, 전화 설문조사, 쇼핑몰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는 인터뷰 등에 의존하는 확률적 및 통계학적 시장 분석과 구별된다. 에스노그라피 조사자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현장―도심의 쇼핑센터, 부엌, 샤워실 등―으로 찾아가 그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관찰한다. 이는 인위적으로 응답자 집단을 구성해 집중적으로 질문하는 포커스 그룹 조사 같은 질적 조사 방법과도 다르다. 그러나 에스노그라피적 방법론이 계량화를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으며, 필요에 따라 통계적 측정법이나 집단 면담법 등을 사용하는 등 융통성을 발휘한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에스노그라피는 최근 마케팅 리서치 분야의 총아로 부상했다. 실제로 2006년에 인텔은 24명, 마이크로소프트는 20여 명의 에스노그라퍼를 임용했고, 서구 기업체에서는 에스노그라피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서구와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일부 대기업 마케팅 부서와 리서치 회사가 문화인류학 전공자를 고용하여 참여관찰을 포함한 마케팅 조사를 맡기고 있다. 또한 관련 논문들이 학계와 기업 연구소 등에서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이처럼 에스노그라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지고 있지만 우리말로 된 참고서적은 많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케팅 에스노그라피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다섯 명의 문화인류학자와 경영학자들이 한 권의 책을 스터디 교재로 사용한 후 그 유용함에 감탄하여 번역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책이 바로 <마케터를 위한 에스노그라피Marketers for Ethnography>이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 사회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후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저자는 1980년대에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고 학계를 떠나 본격적으로 마케팅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에스노그라피라는 나침반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굴지의 기업들을 진정한 소비자의 세계로 이끌었고, 이들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도록 도왔다. 또한 베를린, 부다페스트, 시드니, 상하이 등 전 세계에서 에스노그라피 워크숍을 열어 새로운 마케팅 방법의 전도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 책에는 그가 30여 년간 실행하고 가르치며 쌓아온 노하우가 다양한 사례와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총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에스노그라피의 배경에 대해 기술한다. 에스노그라피의 기원과 정의, 질적 조사 방법으로서의 장점과 특성, 적용 사례 등을 소개한다. 제2부에서는 에스노그라피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에스노그라피를 적용하기에 적합한 연구의 종류, 프로젝트의 개관 및 설계 방법, 연구참여자를 모집하고 안내교육을 할 때 필요한 점, 연구의뢰인과 함께 조사할 때 주의할 점 등을 알려 준다. 제3부에서는 가정, 쇼핑센터, 캠핑장 등 사람들이 실제 소비활동을 하는 장소로 찾아가 그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관찰하는 현장방문의 수행 방법을 설명한다. 현장방문을 해야 하는 목적, 연구참여자와 상호작용을 하는 방법과 마음가짐, 관찰자로서 가져야 하는 시각, 연구참여자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 구체적인 자료 수집 방법 등 현장방문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할 점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연구참여자와 관계를 맺고, 적절하게 질문하고, 방문을 마무리하고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각 장별로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제4부에서는 에스노그라피적 자료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발표하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마케터가 아무리 열심히 조사를 했더라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타당하고 신뢰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여 연구를 의뢰한 사람 또는 회사에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에서는 보고서의 유형, 에스노그라피 자료를 편집하고 분석하기 위해 조사팀 회의에서 점검할 사항, 구체적인 보고서 작성 방법, 에스노그라피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연구의뢰자에게 유용한 해석과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알아 두어야 할 점 등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훌륭한 에스노그라피를 위한 십계명’과 실제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문서들의 보기를 실었다. 국내에 마케팅 에스노그라피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은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 리서치 회사의 조사자 등의 실무자, 학술연구자와 학생 등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자를 만나고 통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업무규칙 안내서이자 교과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