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두 영웅, 롬멜과 패튼. 지금까지 이 두 영웅을 다룬 책은 많았지만, 이처럼 두 사람을 비교하며 함께 다룬 책은 없었다. 전쟁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이 두 군인은 사후에 상대 국가에서 더 찬사를 받은 장군들이다. 롬멜은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침공에서 제7기갑사단을 이끌며 현대 기동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는 이후 북아프리카의 사막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숱한 승리를 이끌며 세계 전사에 이름을 남겼다. 패튼은 웨스트포인트 6년 후배인 아이젠하워 밑에서 제3군을 맡아 그 특유의 추진력으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기동전을 전개해 나치 독일을 패망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전쟁 영웅이다.
이 책은 이 두 장군의 일대기와 그들이 치른 전쟁의 양상을 실감 나게 그리고 있어 마치 그들이 지휘했던 전쟁의 속도처럼 빠르게 읽어갈 수 있다. 아울러 서구사회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과연 어떻게 사회, 군사적으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왔는지, 나아가 전쟁에 임하는 참된 군인정신이란 무엇인지까지 함께 반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훌륭한 교양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전쟁 천재 롬멜 VS 기동전의 명수 패튼
그렇다면 과연 전쟁 상대국은 롬멜과 패튼을 각각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저자인 데니스 쇼월터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북아프리카 전투 중에, 그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였던 윈스턴 처칠은 영국 하원 연설 도중 롬멜에게 찬사를 보냈다. 영국 병사들뿐 아니라 장교들 사이에서도 ‘사막의 여우’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롬멜답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완벽하고 멋지게 처리했다는 칭찬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기 한참 전부터 롬멜은 영국군뿐 아니라 미군 사이에서도 일선에서 지휘하며 직접 상황을 파악하고 부하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장군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다. 미국의 사관생도들에게 롬멜은 가장 이상적인 지휘관으로 남아 있으며, 현대 군사평론가 데이비드 해크워스David Hackworth는 이 진흙투성이 전투화를 신은 작전의 천재를 ‘군인의 본보기’라 평했다. 롬멜은 또한 ‘선량한’ 독일인, 즉 나치즘에 물들지 않은 채 깨끗하고 명예로운 전쟁을 수행한 인물상을 간직하고 있다. 1944년에 강요당한 그의 자살은 그에게 패배자가 아닌, 히틀러를 타도하고자 한 독일 내 저항세력이자 히틀러의 희생양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이로써 롬멜은 뒤이어 건립된 신생 독일연방공화국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의 신화는 육군 장성의 이름을 해군 구축함에 붙일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한편, 롬멜을 특별히 유능한 장군으로 여기지 않는 독일 군인들과 군사 전문가들도 많다. 이들은 지난 40여 년 동안 이어진 토론에서 그를 그저 ‘유능한 사단장’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카를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와 헬무트 몰트게Helmut Von Moltke의 사상을 따르는 이들은 롬멜이 오히려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치밀한 계획보다는 즉흥적인 것을 선호하며 군수보급은 운에 맡기려 했다고 비판한다. 독일 직업군인들은 패튼이야말로 현대적 전쟁을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이 필요한 무기체계를 활용할 줄 아는 장군이라고 평한다. 패튼은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전술을 이해했고, 또 최소한의 손실로 적을 굴복시키는 전차전의 명수였다는 것이다. 옛 독일 국방군과 그 후예인 현재의 연방군은 ‘패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패튼은 진정한 기동전의 명수였다. 그가 아이젠하워와 브래들리로부터 지휘의 재량권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전쟁은 11월 즈음에 이미 끝났을 것이다. 셔먼 전차들은 소련군이 오데르 강을 건너기도 전에 베를린 중심가를 활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은 패튼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승리를 거머쥔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저속하고 허풍쟁이인 데다 병사를 구타하고 여차하면 자제력을 잃고 상관에게 대들어 구설수에 오르며 언론에 뭇매를 맞는 말썽꾸러기 장군일 뿐이다. 전쟁이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국인에게 패튼이 보여주었던 맹수 같은 호전적인 성격은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즉, 그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본받고 싶은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군복을 입은 베리 본즈나 데니스 로드맨처럼.
두 영웅에게 참 군인의 길을 묻다
옮긴이는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민족의 비극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전장에서 전투임무를 수행하던 중 선진 군사시스템을 배우러 미국으로 떠난 그는 웨스트포인트에서 패튼 장군의 동상과 조우했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 롬멜의 저서를 번역하며 롬멜 장군과도 만났다. 20세기의 두 전쟁 영웅이 사후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오늘날까지 옮긴이 그리고 모든 군인들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옮긴이는 이 책을 번역하며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 곧 롬멜 묘소가 있는 헤를링엔으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약 5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헤를링엔은 롬멜이 죽기 전 자택이 있던 곳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강요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유서 깊은 곳에 도착한 나는 우선 롬멜기념관에 들러 방명록에 서명하고 각국에서 번역한 롬멜의 『보병전술』 책들이 놓인 진열장 안에 내가 번역한 한국어판 책을 펼쳐놓았다. 『롬멜 전사록』도 기증했다. 그리고 관리인과 함께 묘소를 찾았다. 묘는 시골 교회의 공원묘지 제일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패전국이라지만 역사에 남을 명장이 이런 곳에 누워 있다니,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수천만의 사람을 고통에 몰아넣고 수백만의 사람을 가스실에서 죽인 히틀러는 결국 권총으로 자살해 생을 마감했다. 제3제국도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초라한 롬멜 묘소의 비목 위에 새겨진 십자훈장을 바라보며 많은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전쟁은 절대 해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명분이 있는 전쟁이라면 그 전쟁에선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손자병법』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신중히 살펴야 한다(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때마침 우리 군에서 ‘전투형 간부 육성을 위한 교육개혁’을 추진 중이고 각 교육기관에서는 담임 교관제도를 도입해 보다 철저한 교육의 내실을 기하고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롬멜과 패튼, 이 두 명장은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체력, 그리고 연구하는 지적인 자세로 현대 기동전을 창출한 영웅들이다. 이 책을 모든 간부가 읽고 틀에 박힌 기존 전술 개념에서 탈피해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전술 사상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장차 한국 고유의 산악지형과 우리 군의 편제에 적합한 전술 전기를 발전시켜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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