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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과 도솔천의 도상학: 『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에 근거하여
고혜련 |
가격: 38,000원
쪽수: 374
발행년/월/일: 2011.09.20
크기: 167*234
ISBN: 978-89-337-0616-9 93600
지은이의 글 

1. 들어가며  
2. 미륵신앙과 북위 불교의 전개 
  2-① 미륵신앙의 전개  
  2-② 북위의 불교 유입과 전개  
(1) 북위 불교와 전륜성왕 사상|(2) 운강석굴 축조와 불교사상|(3) 북위의 법란과 미륵 친견 시기
3. 미륵신앙과 교각상 도상 
  3-① 도상학적 방법론에 따른 불상 분석 
  3-② 교각상의 기원  
  3-③ 교각상의 복식과 북위 양식 
(1) 교각보살상의 복식형|(2) 교각부처상의 복식형|(3) 교각상과 북위 양식
  3-④ 미륵상생신앙과 교각보살상 도상
    (1) 조상 명문에 나타난 미륵상생신앙|(2) 미륵상생보살의 도상
  3-⑤ 미륵하생신앙과 교각불상 도상
    (1) 조상 명문에 나타난 미륵하생신앙|(2) 미륵하생불의 도상
4. 『상생경』과 사유상 도상
  4-① 『상생경』에 기반한 새로운 사유상 도상의 정립
  4-② 『상생경』과 사유관
    (1) 관법수행: 관자와 피관자|(2) 사유관법
  4-③ 사유관과 반가사유상 도상
  4-④ 사유관과 교각사유상 도상
5. 『상생경』과 도솔천 도상
  5-① 『상생경』과 문수산 만불동 벽화
  5-② 도솔천의 도상
    (1) 천자|(2) 보궁|(3) 천신 뇌도발제|(4) 선법당|(5) 오대신|(6) 정원
6. 나오며
 
부록
표 1  운강석굴의 미륵불감 위치
표 2  운강석굴에서 교각본존불과 좌우 협시 반가상 구조를 가진 미륵불감의 위치
표 3  천개에 표현된 내영상 도상: 시무외인의 교각본존불과 천인상 및 선정불
표 4  설법상: 전법륜인의 교각본존불과 연화좌
표 5  협시상 불감이 독립된 삼존불 구조
약자 설명
참고문헌 
도판 출처 
찾아보기 
2012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한국 주류 불교미술사학계에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하는 책
 
약 2세기경 페르시아 문화와 함께 중국에 들어온 미륵신앙은 5∼6세기 북위시대에 매우 중요한 정치적·종교적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5세기 초 중국에 소개된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은 미륵신앙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북위의 불교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필자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적 방법론에 근거하여 북위시대 운강석굴의 불상과 문수산 만불동 벽화 <미륵상생경변>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먼저 유물이 조성될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고, 다음으로 유물 조성의 바탕이 되었을 경전 내용과 연관하여 유물을 분석함으로써 유물 구성요소 하나하나의 의미를 밝혀내었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 불교문화와 우리나라 불상의 연관성을 검토하였다. 이는 양식 변천사에 치중한 우리 불교미술사 연구 흐름에 진지한 질문과 함께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한다.
 반가사유상 하면 우리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국보 78호 불상처럼 좌대에 앉아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올린 자세에서 한 손은 얼굴에, 다른 한 손은 발목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자세의 불상을 미륵반가사유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턱을 한 손으로 받치는 사유(思惟) 수인(手印)을 하고 반가 자세를 하여 반가사유상이라 부른다는 사실 외에, 도상학적으로 이러한 불상과 미륵신앙의 연관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혹시 반가사유 자세를 하고 있으면 미륵이라고 볼 수 있을까?
중국의 불상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운강석굴 제6굴의 불상은 걸터앉아 두 다리를 교차한 교각상(交脚像)으로, 여러 면을 종합하여 검토한 결과, 미륵상으로 인정되고 있다. 운강석굴에서는 보통 교각상이 미륵상이며, 반가상은 교각상 좌우에서 미륵불을 보좌하거나 경배하는 협시상(脇侍像)으로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특정 불상이 미륵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까? 운강석굴에서는 왜 교각상이 미륵상이고 반가상이 협시상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반가사유상이 미륵상일까? 이 책은 이처럼 단순하게 시작했지만 폭넓은 연구로써만 답을 찾을 수 있는 물음에서 비롯하였다.
 
韓-獨-中, 동서양을 오가며 시작된 질문과 새로운 도전, 그 첫 결과물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건너가 동양미술사학을 공부하던 저자는 1993년 중국 항주대학에 교환장학생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 운강석굴을 처음 본 저자는 석굴 42개가 동서로 약 1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어마어마한 규모에 크나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무엇이 이렇게 장대하면서도 세밀함이 살아 있는 불상석굴군을 만들게 했는가? 각각의 불상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곳의 본존불들은 대부분 교각상인데, 중국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는 왜 교각상이 없는가?
이 같은 의문점을 안은 채 독일로 돌아온 저자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자연스럽게 도상해석학과 중국 불교문화사의 결합을 시도하게 되었다. 미국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가 제창한 도상해석학은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들의 구성요소와 양식을 일일이 수집하여 분류한 후 이를 바탕으로 같은 주제를 표현한 여러 유형들의 상관관계와 이러한 주제 유형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시대성과 종교, 사상 등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특정 작품의 양식적인 면뿐만 아니라 그 작품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외부적 요인들이 작품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파악함으로써 총체적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미술사학의 주류는 양식사 연구였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저자가 가졌던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책은 이 같은 문제의식하에 저자가 도상학적 방법론으로써 중국 북위시대 불상과 문수산 만불동 벽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다. 그 안에서 중국 불교문화와 우리나라 불상의 연관성도 검토하여 양식 변천사에 치중한 우리 불교미술사 연구 흐름에 진지한 질문과 함께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총 174컷의 컬러 도판을 수록하여 운강석굴과 돈황석굴, 용문석굴의 불상들과 문수산 만불동 벽화의 아름다움도 감상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저자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북위 시대에 불교, 특히 미륵신앙이 유입되어 운강석굴 조성의 배경이 된 전개과정을 살펴본 후 북위 탁발선비족 정권의 정치적 의도와 미륵신앙이 결합해 어떤 불상 형식으로 구현되었는가를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미륵신앙 중에서도 상생신앙과 하생신앙에 따라 미륵불상이 만들어졌음을 도상학적 방법론으로써 밝혀내었다. 세 번째로,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미륵상생경』의 정확한 명칭. 이 책에서는 『상생경』이라 부른다.)에 의거하여 새로운 사유상 도상을 정립하였다. 마지막으로, 『상생경』의 내용에 의거하여 문수산 만불동의 벽화 <미륵상생경변>을 분석하고, 이 도솔천 도상을 기반으로 운강석굴, 용문석굴, 돈황석굴에 표현된 도솔천 도상을 비교분석하였다.
4세기에 이민족 왕조로서 화북지방을 차지한 북위왕조는 한민족(漢民族) 문화의 대체문화로서 불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미륵신앙은 약 2세기경 페르시아 문화와 함께 이미 중국에 들어온 바 있으나, 5∼6세기에 매우 중요한 정치적․종교적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5세기 초 중국에 소개된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은 미륵신앙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북위의 불교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위왕조는 460년경 운강석굴을 축조하기 시작했으며, 불교 신앙 차원을 넘어 정치적 의도를 담고 거대한 석굴군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운강석굴 담요오굴의 15미터가 넘는 다섯 거불巨佛이다. 이것은 북위의 다섯 황제를 부처와 동일시한 불상으로서,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 사상과 ‘부처가 다스리는 나라’인 불국토 사상을 실현한 것이다. 두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불상인 이불병좌상은 『법화경』의 석가모니불과 다보불의 형상화인 동시에, 북위 효문제와 그를 수렴청정한 풍태후의 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다수의 이불병좌상이 있는데, 이들도 정치권력 관계의 이왕二王 도상으로 해석해볼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편, 5∼6세기에 들어서면서 한인동화 정책과 한족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법란(法亂)과 민란(民亂)이 일어나 사회적 혼란이 커져 갔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음 세상에 미래세의 부처를 만나는 미륵신앙은 사람들에게 큰 신앙적․사상적 영향을 미쳐 수많은 미륵상이 만들어졌다.
미륵신앙은 크게 상생신앙과 하생신앙으로 나누어진다. 상생신앙은 미륵보살이 주재하는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신앙이며, 하생신앙은 미륵보살이 부처로서 지상에 강림하기를 기원하는 신앙이다. 저자는 미륵상이 각 신앙에 따라 상이하게 조상(造像)되었다는 가설에 근거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먼저 비명문을 분석하여 상생신앙과 하생신앙의 문헌적 근거를 찾고, 『상생경』의 내용에 따라 운강석굴 미륵 교각상 140여 구와 동시대 교각상들의 복식 및 미륵불감 구성요소를 도상학적으로 분석하여 이 불상들이 ‘미륵상생보살상’과 ‘미륵하생부처상’으로 나뉘며, 각각의 불상들은 천주상(미륵이 도솔천의 주인임을 표현하는 상), 내영상(세상을 떠난 후 도솔천에 다시 태어난 이들을 미륵과 천자가 마중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상), 설법상(미륵이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한 상) 등의 역할을 갖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미륵상생보살상은 천의(天衣)를 입고 보관(寶冠)을 쓰고 영락(瓔珞) 장식을 한 교각상으로서, 상의를 어깨에 살짝 걸치고 하의를 입거나 상의를 양쪽 어깨에 걸친 후 복부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는 천의를 입고 있다. 미륵하생불상은 성불(成佛)의 상징으로 머리에 육계가 있고 승려 가사를 입고 있다. 염부제에 하생하였으므로 천주상은 없고 내영상과 설법상만 있으며, 그 수가 많지는 않다.
운강석굴의 교각상들은 대개 불감(佛龕) 안에 있으며, 본존불인 미륵불상 양쪽에는 본존불을 모시는 협시상이 조상되었다. 어떤 상황의 미륵불상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협시상으로 반가사유상 또는 승려상, 천인 공양상 등을 조상하였다. 『상생경』에서는 미륵보살의 도솔천 수행을 상세히 묘사하는 동시에, 미륵신앙 수행자가 도솔천에 상생하기 위한 방법으로 ‘관법수행(觀法修行)’을 제시하고 있다. 관법수행이란 부처의 상호와 공덕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선禪을 행하거나 염불을 하는 수행방법을 말한다. 『상생경』에 따르면 미륵신앙 수행자는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상생하는 모습을 관(觀)하고, 도솔천의 상세한 광경을 관해야 한다. 그렇다면 운강석굴에서 협시상으로 조상된 반가사유상, 승려상, 천인상 등은 본존불인 미륵을 대상으로 관 수행을 하는 수행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반가 자세와 사유 수인을 하지 않더라도 사유상 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 북위시대 초기에는 교각본존불과 좌우 협시 반가사유상이 관 수행의 대상인 피관자(被觀者)와 관 수행을 하는 관자(觀者)였으나, 북위 말에 가면서 사유 수인을 하고 교각 자세를 한 독존상이 나타났고, 이후 교각 자세가 점차 소멸하면서 사유 수인과 반가 자세를 한 독존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양식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처럼 도솔천의 모습을 관하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북위시대에 유행한 교각상 양식이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일부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문수산 만불동 벽화인 <미륵상생경변>을 도상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불교미술 도상은 불교 경전에 근거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한다. 도솔천에 상생한 미륵과 그를 경배하는 천인들과 수행자들의 모습을 그린 만불동 <미륵상생경변>은 『상생경』에 묘사된 도솔천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한 벽화이다. 저자는 『상생경』의 내용과 벽화의 세부묘사를 하나하나 대조하여 이를 밝혀내고, 이 도솔천 도상을 기반으로 운강석굴과 용문석굴, 돈황석굴에 표현된 도솔천 도상을 비교분석하였다.
저자의 연구는 단순히 중국 불교미술을 도상학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 연구를 통해 저자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교문화의 특색인 왕즉불 사상과 호국불교가 북위시대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운강석굴 담요오굴의 다섯 거불이 북위 황제의 화신이듯이 석굴암 본존불도 호국불교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왕즉불 사상의 측면에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상생경』과 원효의 『미륵상생경종요』에 근거하여 사유 수인과 반가상만이 미륵 도상과 사유상 도상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반가상이 반드시 미륵 도상이지는 않으며, 사유관을 수행하는 수행자상 도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여 불상 연구자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는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