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일조각의 책들 > 분야별 도서목록
고려사 병지 역주
이기백, 김용선 지음 |
가격: 35,000원
쪽수: 496
발행년/월/일: 2011.06.30
크기: 152*224
ISBN: 978-89-337-0610-7
 머리말    
 
『고려사 병지 역주 1』  머리말 
 
Ⅰ  해설
 1.  『고려사』  병지의 검토-이기백
 
  2.  『고려사』  병지의 특성과 역주의 방향-김용선 
 
Ⅱ  역주
 
 1.  『고려사』  권81 병지 1
  병제兵制 
 
2.  『고려사』  권82 병지 2   
  숙위宿衛
  진수鎭戍
  참역站驛
  마정馬政
  성보城堡   
  둔전屯田(부附 병량兵糧) 
 
 3.  『고려사』  권83 병지 3  
 간수군看守軍  
 위숙군圍宿軍 
 검점군點軍   
 주현군州縣軍 
 선군船軍   
 공역군工役軍 
 
찾아보기    
고려시대 군사제도에 관한『고려사』'병지'전3권의 본격적인 역주본!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 사학자 이기백이 심혈을 쏟은 『고려사』연구 중 그가 남긴 '병지 권1'에 대한 역주와 그의 제자 김용선(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이 완성한 '병지 권2'와 '병지 권3'에 대한 역주를 모은 것이다. 이로써 1969년 『고려사 병지 역주 1』이 첫 출간된 이후 4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고려사』병지 전3권에 대한 역주가 완성된 것이다.
 
기존에 출간되었던 북한의 『고려사 역본』(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 편, 1963)과 동아대학교의 『역주 고려사』(동아대학교 고전연구실 편, 1971년)는 『고려사』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반해 이 책은 '병지'에 대한 역주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두 저자는 철저한 직역주의를 원칙으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사료가 빈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려사』내의 다른 기사나 『고려사절요』 등 다른 역사서와의 치밀한 대조를 통해 고려시대 군사제도를 추적해나가고 있다. 원문에 충실한 직역을 위주로 했지만 현대문으로 번역했고, 주해는 사실事實의 역사적 설명을 주로 하되 과거의 학설과 더불어 본인들의 견해도 밝히고 있다.
 
평소 이기백은 자신의 연구 역정에 있어서 제도사적인 면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고려사』연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그가 1969년 출간한 『고려사 병지 역주1』은 제도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주요한 업적으로 평가받았지만 그는 생전 병지 권1의 서문과 병제만을 역주하였다. 따라서 병지 전체에 대한 역주는 40여 년의 세월 동안 미완인 채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기백의 별세 후 『고려사』제지諸志의 역주 작업을 연구 과제로 선정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이기백의 제자 김용선에게 병지의 역주 작업을 제의했고, 학문적 중요성은 물론 스승의 유업을 잇는 의미에서 김용선은 병지 권2와 권3에 대한 역주를 완성하였다. 김용선은 역주의 작업에 있어서 '특히 (선생의) 수업을 들으며 직접 대화하는 심정으로 선생의 원뜻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은 두 저자의 공동 작업이라기보다는 각각의 독립적 연구물인 이기백의 역주와 김용선의 역주를 합한 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책의 전체적인 체제와 내용적인 통일성은 고려하였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40여 년의 세월 동안 국내에 축적된 고려사 연구의 현재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는 본격적인 역주에 앞서 『고려사』병지의 이해를 돕기 위한 두 저자의 짧은 논문을 실어 '해설'로 묶었다. 병지를 전반적으로 해설한 「고려사 병지의 검토」라는 글과 병지의 특성과 그동안의 역주 성과를 검토한 「고려사 병지의 특성과 역주의 방향」이라는 글은 『고려사 병지 역주』를 읽기 전, 독자들의 충실한 길잡이 노릇을 할 것이다.
고려시대 병제兵制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 한군데에 모여 있는 것으로는,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를 첫손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고려 병제의 대강을 파악하려고 하는 경우에, 우선 이  『고려사』  병지를 뒤적여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또 후대의 고려 병제에 대한 저술들-예컨대  『문헌비고文獻備考』  중 ‘병고兵考’의 고려에 해당하는 부분 같은 것-이 대체로  『고려사』  병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만큼 고려의 병제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이 병지에 대하여 대체적인 이해를 가져두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고려사』  병지에 대하여는 그 서문에 찬자撰者의 편찬 의도가 표명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선 서문을 여기에 인용하여 이 병지에 대한 검토의 실마리로 삼고자 한다.
A.   병兵이란 포악한 것을 막고 어지러운 자를 베는 것이니, 천하와 국가를 가진 자(帝王)가 진실로 폐할 수 없고, 병제兵制의 득실에 국가의 안위가 달려 있다.
B.(1) 고려 태조太祖는 삼한三韓을 통일하고 비로소 6위衛를 두었는데, 위衛에는 38영領이 있고, 영領은 각기 1,000명이었으며 위와 아래가 서로 연결되고 체통이 서로 속하니 당唐의 부위제府衛制에 거의 가까웠다.
(2) 숙종肅宗 때에 이르러 동여진東女眞이 말썽을 일으키자, 이에 더욱 단단하게 방위에 힘쓰고 날마다 군사 훈련을 일삼아 드디어 별무반別武班을 설치하였는데 산관散官·이서吏胥로부터 상인(商賈)·천예賤隸·승려(緇流)에 이르기까지 예속되지 않음이 없었다. 이는 비록 옛 제도와 합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한때 이를 써서 성과를 거두었음은 족히 일컬을 만한 것이 있었다.
(3) 의종毅宗·명종明宗 이후에 권신權臣이 정권을 쥐자 병권兵權은 밑으로 옮아가 용감한 장수와 강한 병졸이 모두 사가私家에 속하게 되고, 나라에 바야흐로 외적의 침략이 심해지는 일이 생겨도 공가公家에는 1여旅의 군사가 없게 되고, 갑자기 급한 지경에 이르면 기세를 떨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여러 방면으로 징발하였는데, 혹은 서울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고, 혹은 문무文武의 산직散職과 백정白丁·잡색雜色을 점고하고, 혹은 4품 이상 (관리의) 가동家을 뽑고, 혹은 가옥 칸수의 다소로써 차이를 두기도 하였다. 나라의 형세가 이에 이르면 비록 위태롭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되겠는가.
C.(1) 국가의 대사는 군사軍事에 있으니, 그 제도가 진실로 의당 자상히 갖추어졌을 것이로되, 이전의 사적史籍이 자세하지 못함을 애석해한다.
(2) 지금 특히 상고할 수 있는 것을 기록하니, 병제兵制, 숙위宿衛, 진수鎭戍, 간수군看守軍, 위숙군圍宿軍, 검점군檢點軍, 주현군州縣軍, 선군船軍, 공역군工役軍이다. 그밖에 참역站驛·마정馬政·둔전屯田·성보城堡도 역시 병兵의 부류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아울러 붙여서 병지兵志를 만든다.
- <머리말> 15~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