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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민강좌 48집
한국사 시민강좌 편집위원회 |
가격: 10,000원
쪽수: 252
발행년/월/일: 2011.02.20
크기: 152*224
ISBN: 978-89-337-0605-3 03900
■특집|한국 실학연구 80년
실학연구의 어제와 오늘|김태영
실학개념 논쟁과 그 귀결|조성산
실학의 계보와 학풍|유봉학
조선후기 지식세계의 확대와 실학|고동환
‘海外’를 바라보는 北學|이태진
실학자들의 ‘한국사’ 탐구|정재훈
실학시대의 언어연구|이병근
실학과 개화사상|김명호

■나의 책을 말한다
『고려귀족사회와 노비』|홍승기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규장각 소장 고지도 연구|양보경
 
■한국사학에 바란다
사회과학자의 즐거운 외출|송호근
 
■역사학 산책
청대 중국의 실학과 고증학|조병한
조선후기에 성리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에 치우치자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연구하는 새로운 학풍이 일었다. 이러한 ‘조선후기의 신학풍 또는 신사조’는 1930년대에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국학(조선학) 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실학이라 불리게 되었는바, 학계는 통상 이를 실학연구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연륜을 쌓아왔다. 실학은 한국사학에서 매우 활발히 연구된 분야 중 하나로, 이제 그 연구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성과와 의미를 정리해보았다.
■특집|한국 실학연구 80년
 
실학연구의 어제와 오늘|김태영
반계, 성호, 연암, 다산 등 실학 발흥 당시의 학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학문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구한말 근대화의 필요성을 느낄 때 실학은 ‘경제정치학’으로 추구되며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1930년대에는 ‘조선학운동’이 전개되며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학술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종래의 연구를 계승하면서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1950년대 이후 실학연구가 심화, 체계화되어왔다. 1991년에는 ‘한국실학학회’가 창립되고 국제실학대회를 개최하는 등 연구가 확대되었다.
 
실학개념 논쟁과 그 귀결|조성산
학자들 간에 실학개념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그 이유는 실학개념이 발흥 당시가 아닌 후대에 만들어졌고 말 자체가 추상성을 가진 데다 실학연구가 다양한 목적과 방향 속에서 이루어지며 실학개념이 유동적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의 과정에서 등장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은 실학개념을 보완하는 바탕이 되었다. 근대성과 관련하여 실학이 실체로서 존재했는가의 여부, 실학자의 범위, 성리학과 실학의 관계성, 실학의 학술용어로서의 적합성 등의 논점은 근대와 민족, 실증과 같은 한국 현대사학사의 문제의식을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실학의 계보와 학풍|유봉학
앞서 본 실학개념 논쟁과 마찬가지로 실학의 계보를 놓고도 학계에서는 혼란이 계속되었다. 실학 연구자들은 실학을 실증적․실용적 학문으로 규정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자학에서 벗어나 있거나 다르다고 생각하는 학풍을 찾아 실학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실학을 반주자학적인 학풍으로 이해하는 것은 주자학을 의리지학에 국한한 학문으로 본 데 기인했다. 그러나 주자학은 의리지학 외에도 경제지학, 명물지학의 분과도 있는바, 조선후기에 등장한 경제지학과 명물도수지학, 국학의 연구성과를 가리키는 실학을 주자학에 대립하는 학풍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 이에 실학의 계보와 학풍을 재정립하여 오랜 혼란을 마감할 필요가 있다.
 
조선후기 지식세계의 확대와 실학|고동환
17세기 이후 조선은 농업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농민층의 분화가 이루어졌으며 잉여생산물의 교환장인 농촌장시가 확대되었다. 또한 상평통보의 보급으로 상품화폐경제가 성장하고, 중개무역의 이윤이 집적되면서 도시경제도 성장하였다. 도시경제의 세례를 받으며 도시민들의 학문 풍토도 변모되어 인간본성을 긍정하고 부의 축적을 옹호하는 등 새로운 도시문화가 발흥하였다. 학문과 문화 예술에도 시장경제 원리가 적용되며 지식의 상품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향촌사회로까지 파급되었다. 즉 농민적 지식인층도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훈장, 복술, 의업, 소장 대서 등을 통해 지식을 상품화함으로써 생계를 이어갔다.
 
‘海外’를 바라보는 北學|이태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해외로 향하는 북학자들의 관심을 살펴보았다. 이 책이 이용후생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가 국익을 위하여 외교적으로 상상도 못할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였다. 박지원은 건륭제의 외교적 행위에 충격을 받고 귀국길에 ‘허생전’을 지어 북벌 명분에 사로잡힌 조선 사대부를 질타하였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사행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여건에서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큰 담론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며, 고종의 개화정책이 박지원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실학자들의‘한국사’탐구|정재훈
조선전기의 역사서인 『동국통감』은 조선 이전의 역사를 모두 모아 하나의 역사, ‘한국사’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전체적으로 한국사의 계통과 범위를 제시하고, 조선의 건국이념으로 작동한 성리학의 이념을 보편주의로 전제하여 역사를 해석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변화를 겪게 되었다. 중원대륙이 오랑캐의 차지가 된 현실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등장하여 중화문화의 정통성을 조선이 계승하고 있다는 의식이 싹트고, 고구려 역사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고대사의 시․공간에 대한 탐구가 일어나게 되어, 고대사가 한백겸, 이익, 신경준, 이종휘 등 실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실학시대의 언어연구|이병근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조선초기에 이미 음운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조선후기 실학의 차원에서 더욱 발달된 양상으로 음운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문자와 음운에 대한 연구는 진일보하였으며, 어원의 정확한 의미를 밝히려 노력하는 가운데 정약용의 연구서『아언각비』가 간행되었다. 또한 어휘를 일정한 기준으로 분류하여 어휘집을 편찬하려 노력하였다. 실학시대의 언어연구는 근대적 형식에 가까운 추세를 보이며 중국어와 한자에 빠져 있던 시대에서 벗어나 단일어로서의 한국어 사용이 강조되는 시대로의 전환을 예비하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실학과 개화사상|김명호
개화사상은 실학을 계승하고 있는가. 실학 연구자들의 오랜 숙제인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논평을 하고 있다. 또 종래 개화파의 스승을 오경석으로 본 데 대해 이는 사료를 오독한 결과이므로 오경석이 아닌 박규수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이다. 박규수는 박지원의 손자로 개화파의 주요인물인 김윤식, 김옥균, 김홍집, 박영효 등과 가까운 인적 계보에 있으며 ‘개화군주’ 고종의 사상적, 정치적 스승이라 할 정도로 영향을 주었음을 지적하였다.